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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하루 따스한 기운이 퍼지면서 어느새 좀 덥다 싶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물어요. "여름이야? 왜 이렇게 더워?" 달력 숫자로는 여름이 아니라고 할 만하지만, 아침이 밝은 뒤부터 낮을 지나는 동안 여름이라고 느낄 만한 볕입니다. 다만 한여름에 대면 아직 그리 무덥지는 않습니다.

 볕이 뜨거운 낮, 아이하고 자전거 나들이를 갑니다. 고갯길을 씩씩하게 오릅니다.
 볕이 뜨거운 낮, 아이하고 자전거 나들이를 갑니다. 고갯길을 씩씩하게 오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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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도, 바다가 보이는 계단논을 보면서 땀을 식힙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도, 바다가 보이는 계단논을 보면서 땀을 식힙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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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아홉 시만 되어도 볕이 따갑구나 싶고, 아침 열 시 즈음이면 밭에 앉아서 풀을 만질 적에 살그마니 숨이 막히는구나 싶습니다. 마을이 아닌 숲에서 우리 식구만 산다면, 낮에는 옷을 몽땅 벗고서 밭에서 풀이랑 흙을 조물락거리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들하고 거의 날마다 물가나 그늘을 찾아서 놀도록 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좀 멀리 자전거를 달려 보기로 합니다. 틀림없이 곳곳에 들딸기나 멧딸기가 익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밭 귀퉁이에서도 들딸기가 빨갛게 익거든요.

 숲과 들은 찔레꽃이 한창
 숲과 들은 찔레꽃이 한창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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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곁에는 국수꽃도 나란히.
 찔레꽃 곁에는 국수꽃도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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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첫 '딸기마실'을 가기로 합니다.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가자면 살짝 벅찰 듯해서 작은아이는 집에 두고 큰아이하고만 자전거를 달립니다. "보라야, 다음에 함께 갈 테니까, 오늘은 집에서 낮잠을 자 두렴."

마을을 벗어나서 면소재지를 가로지릅니다. 얕지만 땀이 흐르는 언덕배기를 하나 넘고서 구암마을 쪽으로 꺾는 제법 높은 고갯길을 달립니다. 숨이 턱에 닿지만 큰아이가 샛자전거를 힘차게 밟아 주니 두 사람 힘으로 씩씩하게 오릅니다.

어느 만큼 오르는데 찔레꽃 냄새하고는 좀 다른 달콤한 냄새가 온몸을 휩쌉니다. 뭘까? 뭐지?

 큰아이와 자전거 나들이
 큰아이와 자전거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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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손에 얹은 들딸기. 자 한 입에 털어넣을 수 있겠니?
 아이 손에 얹은 들딸기. 자 한 입에 털어넣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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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살피니, 노랗고 조그마한 꽃잔치가 곳곳에 벌어집니다. 자전거를 오르막에서 세우며 다가섭니다. 아, 국수나무로구나! 국수꽃이 피었네! 국수꽃을 둘러싸고 벌이 엄청나게 모였어요.

고갯마루를 넘으면서 찔레나무 곁에서 들딸기를 만납니다. 자전거를 길에 눕히고 큰아이하고 들딸기를 훑습니다. 나는 물크러진 것만 먹고, 큰아이 입에는 소담스러운 것을 넣습니다. 미리 챙긴 유리그릇에 들딸기를 한 줌씩 훑어서 담습니다.

이렇게 더디더디 고갯마루를 넘다가,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지나고, 바다를 바라보는 계단논 옆도 지난 뒤에, 사람 발길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샛길로 접어듭니다. 자동차도 경운기도 사람도 거의 안 지나다니는 오솔길 같은 길가에는 크고작은 들딸기가 몽글몽글 빨갛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이레쯤 더 있어야 훨씬 굵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늘 우리가 한 번 훑어 주면 이 딸기넝쿨도 더욱 굵은 알을 맺어 주리라 느껴요.

 고갯마루에 자전거를 눕히고 함께 들딸기도 훑고 숲꽃도 바라본다.
 고갯마루에 자전거를 눕히고 함께 들딸기도 훑고 숲꽃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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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막이 끝나면 만나는 내리막. 숲만 바라보는 이 길이 좋구나.
 오르막이 끝나면 만나는 내리막. 숲만 바라보는 이 길이 좋구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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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에 이른다.
 바닷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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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빨간 열매와 새하얀 꽃(찔레꽃)
 새빨간 열매와 새하얀 꽃(찔레꽃)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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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딸기 한 줌을 훑고 찔레꽃 냄새를 큼큼 맡습니다. 예쁘장한 딸기알에 앉은 노린재를 한동안 지켜보면서 "너희도 이 단맛을 아는구나!" 하고 인사합니다. 벼랑길에 더 잘 맺히고 빨간 열매를 훑으려고 하다가 미끄러져서 다리가 긁히기도 합니다.

바닷가 소나무 곁에 자전거를 눕히고 나서 나도 나무 그늘에 눕습니다. 이동안 큰아이는 도시락에 들딸기를 배불리 먹습니다. 큰아이가 비운 만큼 다시 들딸기를 채우고는 집으로 천천히 돌아가기로 합니다. 바다를 끼고 가볍게 한 바퀴를 달립니다. 싱그러운 오월 바닷바람이 반갑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두 사람한테 저녁밥으로 이 빨갛고 달콤한 열매를 어서 건네주고 싶습니다.

 딸기알에 앉아 단물을 빠는 노린재
 딸기알에 앉아 단물을 빠는 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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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눕히고 쉬다.
 자전거를 눕히고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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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에서 놀기
 바닷가에서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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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를 훑는 시골아이 발.
 딸기를 훑는 시골아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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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보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바다를 보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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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기다리는 두 사람한테 먹일 들딸기 잔치.
 집에서 기다리는 두 사람한테 먹일 들딸기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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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시골노래#들딸기#오월#고흥#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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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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