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10일부터 총 열하루 동안 유로 2016에 대한 첫 번째 모험을 시작하려 합니다. 축구의 본토인 유럽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해보고 싶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기대해주세요! - 기자말

지난 경기의 흥분 때문인지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그게 아니라면, 오늘 아침 기차로 떠나야 하니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 니스의 해변을 보러 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오전 5시 반이 넘은 것을 확인하고, 잠옷 차림에 바이에른 뮌헨 트랙 탑을 걸치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는 어제 경기의 열기가 곳곳에 남아있고, 새벽을 시작하는 도시는 어제의 흔적을 지워내며 부지런히 청소차를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밤에는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를 찾느라 정신없어 지나쳤다. 미처 둘러보지 못한 거리를 찬찬히 음미하며 걷다 보니, 경기장 셔틀이 내려줬던 프렌치 리비에라 해변에 도착했다.

워낙에 방향감각이 없는 편이라, 지난 경기가 열린 경기장 뒤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인과관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그럼 오늘은 바다에서 해가 뜰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구글맵을 확인하니 니스의 바다는 거의 정남향, 일출이랑은 거리가 먼 지형이었다.

어쨌든, 새벽의 해변은 지난 날의 열광을 무한의 바다로 모두 식혀낸 느낌이었다. 멀리서 떠오르는 햇살이 그려내는 아침의 여명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눈에 익은 해변, '무민' 영화판에 나온 그곳

아침 여명과 함께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무민 더 무비>에서 무민네가 도착했을 법한 새하얀 선착장이 아침의 반짝이는 붉은 하늘과 함께 아름답네요.
▲ 아침 여명과 함께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무민 더 무비>에서 무민네가 도착했을 법한 새하얀 선착장이 아침의 반짝이는 붉은 하늘과 함께 아름답네요.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그러고 보니, '이 해변 어딘가 눈에 익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뿔싸! 지난해 개봉했던 <무민 더 무비>에서 본 장소였다! <무민 더 무비>에서 핀란드 어느 산골 무민 가족이 여름 휴가를 통해 찾아온 곳이 이 해변이었다.

멀리서 어딘가 무민네 가족이 내렸을 것만 같은 선착장 위로 유로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그랬더니, 현실과 이미지의 경계가 혼재된 느낌이라 무척 신기했다.

해가 떠오른 니스 해변에서 펄럭이는 유로깃발 유로2016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니스는 중앙 도심 전체가 유로의 축제와 함께 술렁이고 있더라구요.
▲ 해가 떠오른 니스 해변에서 펄럭이는 유로깃발 유로2016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니스는 중앙 도심 전체가 유로의 축제와 함께 술렁이고 있더라구요.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니스의 아침산책길에 발견한 EURO2016  아침의 산책길에 들른 공원에서 바닥분수가 나오고 있었는데, 분수가 잠시 멈춘 틈을 타, EURO2016 조형물의 반영을 찍어봅니다.
▲ 니스의 아침산책길에 발견한 EURO2016 아침의 산책길에 들른 공원에서 바닥분수가 나오고 있었는데, 분수가 잠시 멈춘 틈을 타, EURO2016 조형물의 반영을 찍어봅니다.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이른 아침이지만 차갑지 않은 지중해의 바다는 벌써부터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간 여유만 더 있다면 발이라도 담그고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옹에서 FIFA 랭킹 1위인 벨기에와 전통의 강호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의 '빅매치'가 있는 날이다. 경기를 보러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해변에서 즐기는 것은 언젠가 미래의 데이트를 위해 남겨두기로!

아침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니스를 떠날 준비를 한다. 숙소 앞에 노천카페가 일찍 문을 열었기에 현지인 역할놀이 겸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냥 '현지인처럼' 크루아상에 에스프레소 하나를 시키려고 했는데, 메뉴에서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샐러드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니스식 샐러드 (Salade Nocoise)'! 예전에 한 번 들렀던 프랑스식 식당에서 주인아줌마가 설명해주신 적이 있는 메뉴다. 워낙 주인의 인상이 좋았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던 모양이다.

'아~ 니스의 중심가 한가운데에서 니스식 샐러드라니. 포기할 수 없지!'

니스식 샐러드입니다.  각종 신선한 야채, 토마토, 삶은 감자, 계란에 참치랑 엔초비가 올라와 있습니다. 별도의 드레싱을 하지 않아도, 너무 맛있었어요!
▲ 니스식 샐러드입니다. 각종 신선한 야채, 토마토, 삶은 감자, 계란에 참치랑 엔초비가 올라와 있습니다. 별도의 드레싱을 하지 않아도, 너무 맛있었어요!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호기롭게 메뉴를 주문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누구도 거한 아침 식사를 주문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현지인 역할놀이를 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러운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먹지 않으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있겠느냐'며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기대한 만큼 '역시' 싶은 샐러드가 등장했다. 받아든 샐러드는 '이보다 더 신선할 수 있으면 나와봐!' 하는 자태로 테이블에 놓였다. 메뉴에 들어간 재료를 '잘 외워 두었다가 돌아가서도 해 봐야지' 다짐했다. 게으름이 실천을 허용할지는 모르겠다.

니스에서 리옹으로, 옆 좌석에 앉은 남자의 정체는

니스 중앙역에서 열차를 잡아타고 리옹으로 출발합니다.  파리처럼 큰 역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한 외관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역이었습니다. 이제, 리옹으로 떠날 시간이네요. 아자!
▲ 니스 중앙역에서 열차를 잡아타고 리옹으로 출발합니다. 파리처럼 큰 역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한 외관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역이었습니다. 이제, 리옹으로 떠날 시간이네요. 아자!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거하게 아침을 먹고 니스역에서 오전 10시 4분 기차를 타고 리옹으로 향한다. 도중에 아비뇽(피카소의 그 아비뇽이겠지?)에서 갈아타야 한다. 기차의 안내 방송을 '제발' 알아듣게 되기를!

오직 불어로만 방송하는 이들의 꿋꿋한 자부심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조금은 더 친절해 줘도 괜찮지 않나'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운이 좋게도 어제와는 달리 바다가 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멀리 반짝이는 지중해가 흘러간다.

기차의 창밖으로 지나가는 지중해의 풍경 너무도 새파란 바다와 새하얀 요트가 장관입니다. 니스에서 리옹으로 이동하는 중, 지나치던 깐느 부근의 지중해 풍경입니다.
▲ 기차의 창밖으로 지나가는 지중해의 풍경 너무도 새파란 바다와 새하얀 요트가 장관입니다. 니스에서 리옹으로 이동하는 중, 지나치던 깐느 부근의 지중해 풍경입니다.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예정대로 아비뇽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원래 시간표대로라면 낮 12시 57분에 역에 도착하고, 갈아타는 열차가 오후 1시 21분이니 넉넉한 환승 일정이다. 도중에 안전 문제로 잠시 정차하는 바람에 도착 시간이 늦어졌다.

표를 예약하면서 2등석보다 저렴한 1등석을 구매한 것은 운이 좋았다. 하지만 정해진 열차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는 표라서 조마조마하다.

드디어, '아비뇽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예정보다 약 10분 정도 늦어졌지만, 다음 열차를 타기에는 문제가 없다. 정말 다행이다.

도중에 환승한 아비뇽역입니다.  니스에서 아비뇽까지 온 후, 아비뇽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리옹까지 가는 일정인데, 니스에서 떠난 열차가 지연되는 통에 한참 걱정했습니다. 날씨는 너무 좋더라구요!
▲ 도중에 환승한 아비뇽역입니다. 니스에서 아비뇽까지 온 후, 아비뇽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리옹까지 가는 일정인데, 니스에서 떠난 열차가 지연되는 통에 한참 걱정했습니다. 날씨는 너무 좋더라구요!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니스에서부터 옆자리에 축구 전문 저널리스트로 보이는 영국인이 타고 있었다. 그는 처음 탈 때 인사한 후로는 계속 기사 마무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파리에 가니?"
"아니, 리옹으로 가. 오늘 (유로 2016) 경기가 있어."
"아, 알아. 벨지움(벨기에)와 이태리(이탈리아) 경기. 몇 경기나 관람하니?"
"세 경기야. 어제 한 경기 봤고."
"그 경기는 재밌었어?"
"응! 완전! 나 유로는 처음이거든. 월드컵은 몇 번 봤지만, 유로는 월드컵이랑 다르니까."

"어디서 왔어?"
"한국."
"서울? 부산?"
"아니. (넌 모르는) 작은 동네야. 넌 파리에 가니?"
"응."

"대회는 다 보니?"
"13일 동안 11경기."
"흐... 완전 멋진데, 피곤하겠다."
"응. 피곤해. 정확해!"
"ㅎㅎ 만나서 반가워. 대회 잘~ 보고!"
"응. 너두!"

열차가 아비뇽까지 도착하는 내내 기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도 신기했다. 그럴뿐더러, 인터뷰 파일까지 뒤져가며 기사를 확인하는 것도 신기했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관점을 지닌 수많은 기사가 그 나라 축구 문화의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며칠 전 잉글랜드와 러시아 경기 당시 관중의 폭력 사태로 인해 조금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축구에 대해서는 잉글랜드 팬들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 읽는 조지 오웰에 따르면 "잉글랜드는 백 만의 다른 개성을 가진 개개인이 매우 복잡하게 섞여있는 나라"라고 하지 않나. 그들의 다양한 '전문성을 지닌' 취미 생활 중 매우 중요한 하나가 '축구'인 것은 이런 저변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경기를 보는 중에도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 중 하나는 '저들은 왜 저리도 자국의 축구에 열광하는가'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팬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그들의 열정은 무엇에 기인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아마, 그들이 즐기게 하는 원동력에는 다양한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열광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경기가 '국가 대항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국가를 선택하여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포기하고 싶어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조국'에 대한 동질감 말이다. 그러니 제발, 국가 대표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도 팬들의 '열광'과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 응원하는 조국의 팬들 앞에서, '대강 뛰는 것'을 들킨다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드디어 리옹에 도착했다. 전날 먼저 도착해 있던 일행을 만나서, 저녁에는 조별 예선 최고의 빅매치 중 하나인 '벨기에와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러 갈 생각이다. 우선,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다. 이따 봐요!


#유로2016#니스에서 리옹으로#이동하며 생긴 일#프랑스#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