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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은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가하여 기념사를 통해 기념비적인 발언을 남겼다.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북한 주민과 군인들에게 직접 한국으로 오라고 한 것이다.

"북한 군인과 주민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처한 참혹한 실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제사회 역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는 여러분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입니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건군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기념비적인 대통령의 연설이 있었던 자리
▲ 건군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기념비적인 대통령의 연설이 있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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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발언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미묘하게 갈라졌다. 어떤 언론은 이를 박 대통령이 북한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던진 정치적인 선언에 가깝다고 평가한 반면, 또 다른 언론은 대통령이 사실상 북한 주민과 군인들에게 탈북을 권유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위 발언을 전자는 정치적으로, 후자는 실질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과연 대통령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국제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핵실험을 강행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경고였을까? 아니면 진짜로 김정은 치하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선량한 북한 주민들을 거두고 싶었던 것일까?

물론 정답은 없다. 우리가 대통령이 아닌 이상 그의 의중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우리는 그와 같은 발언을 통해 북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의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이 시대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 지배층과 주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북한 주민들에게 월남을 권유할 수 있는가. 이것은 결국 현 정부의 인식 수준이 북한 정부를 북괴, 즉 괴뢰정부로 규정하고 북한 주민들을 대상화했던 지난 80년대까지의 군사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90년대 이후 진행되어진 남북관계 개선이 그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요컨대 '북괴'라는 표현만 없었을 뿐, 북한 지도부는 탐욕스러운 '돼지'와 '늑대', 북한 주민들은 선량한 '백성'으로 묘사했던 '똘이장군'식 가치관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다시 공식화 된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정부의 대북인식

통일은 대박이다 2014년 1월 6일 기자회견 당시 박근혜 대통령
▲ 통일은 대박이다 2014년 1월 6일 기자회견 당시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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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만 하더라도 최소한 남북관계는 전보다 나아지리라 전망했다. MB 정권 때 워낙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던 지라 그보다 나빠질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과정 중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의지를 보였고, 정권 초에는 지금과 비교하여 북한에 유화적인 생각을 지녔던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득한 기억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한때 '통일은 대박'이라며 통일 전도사를 자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청와대야 그 모든 것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김정은과 햇볕정책을 폈던 야당 탓이라고 핑계 대지만, 현 정부는 정치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북한을 팔아 해묵은 레드컴플렉스를 불러일으키며 지지율을 견인했다. 외교적으로는 미국만을 바라보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북한과의 끈을 스스로 놓아 버렸다. 심지어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마저 날려버렸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뜨악했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와 같은 퇴보가 가능했던 것은 북한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 때문이다. 본디부터 북한을 북괴로 상정하고, 북한 주민들을 죄 없는 백성으로 가르쳤던 똘이장군식 사고방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비록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쳤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선언적이고 극단적인 경제논리일 뿐, 현 정권은 북한에 대한 이해가 손톱만큼도 없다.

문제는 북한에 대한 이런 시대착오적 인식이 비극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올바른 대북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한데, 북한을 단순하게 독재 세력과 선량한 주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다 보니 북한과 관련하여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 장려한 탈북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정부는 그들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탈북자들을 북한의 독재 체제에 항거하거나 최소한 이데올로기적으로 견디지 못해 탈출한 이들이라고 선전하지만 실제로 남한에 와 있는 탈북자들의 일부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단지 먹고 살기 어려워서 국경을 건넜다가 타의에 의해 남한으로 들어온 경우도 있고, 남한의 온갖 차별과 살벌한 경쟁 체제에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북한에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 같은 탈북자들의 의견을 모두 묵살한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그들의 존엄을 존중하고 그들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지만, 그것은 말뿐이다. 북한 주민들을 북한 독재체제의 폭정에 신음하는 선량한 백성들로만 상정하다 보니,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똘이장군> 포스터  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똘이
▲ <똘이장군> 포스터 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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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정부의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북한을 단순히 독재국가로서 인식하다 보니 남북한 분단 체제의 특수성과 그동안 근대국가 북한이 수립해온 정당성, 그리고 북한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경험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제대로 된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야 동구권이 붕괴 후 북한이 세계적으로 고립되고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만큼 남한이 통일의 주도성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으며, 친일파 척결과 혁신적인 토지 개혁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여기에다 전 국토가 파괴된 한국전쟁의 기억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국민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것을 바탕으로 북한은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맥락을 모두 무시하고 똘이장군식으로 북한을 바라본다? 북한 지도부만 제거하면 북한의 선량한 주민들은 남한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다? 이는 망상이다. 북한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듯이 굉장히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국가이다.

만약 수백만 명의 탈북자가 쏟아져 들어온다면?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서 느꼈던 또 하나의 충격은 탈북에 관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였다. 대통령은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거라며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고 했지만 과연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 내 탈북자 수는 약 3만 명이고 월평균 임금은 약 160만 원, 실업률은 약 5.5%로 추정된다고 한다. 남한 전체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300만 원을 넘고, 실업률이 3.7%(5월 기준)임을 감안한다면 탈북자들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혹자들은 그런 탈북자들의 생활도 북한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라고 지적하지만, 어느 사회나 그렇듯 문제는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빈부 격차가 격심하고, 무한 경쟁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과연 경쟁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탈북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희망과 삶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터전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비록 같은 생김새에 거의 비슷한 언어를 쓰지만, 탈북자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조선족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들이 자라온 북한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그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왠지 음험하고 무섭고 믿을 수 없는 그들. 현재 탈북자들은 분단체제의 경계인으로서 양 체제로부터 백안시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한다. 만약 그 바람대로 북한이 붕괴되고 수백만 명의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쏟아져 내려온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 사회는 버틸 수 있을까? 혹자의 장밋빛 예측대로 북한 출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말 그대로 아노미를 맞을 것이며, 많은 이들이 다시 북쪽으로 그들을 내쫓으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내부적으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으며, 그만큼 갑작스러운 통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독도 동독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수십 년이 걸렸는데 하물며 남한이 북한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보다는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한다.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북한을 남한이 쉽사리 흡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역시나 공상일 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그들이 정상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된다. 그것이 공멸을 막는 길이다.

정부는 부디 철 지난 똘이장군 놀이를 그만두기를 바란다. 



#국군의날#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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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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