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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를 비롯한 공공기관일수록 국민들이 아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언어 민주화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언어의 독점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는 말을 쓴다. 이는 국어기본법을 어긴 위법행위다."

임규홍 경상대 교수(국어문화원장)가 한 말이다. 공공기관의 공문서는 물론이고, 명칭과 슬로건 등에 있어 지나치게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지적한 것이다.

어떤 사례가 있을까. 부산경남지역에서 최근 눈에 띄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강서브라이트센터', '비치로드', '브라보경남', '문탠로드', '렛츠런파크', '테크노파크', '테크로드', '드림로드', '드림파크' 등.

 부산 강서구 공항로에 있는 '강서브라이트센터'.
 부산 강서구 공항로에 있는 '강서브라이트센터'.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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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브라이트센터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에 있고, 2013년 3월에 문을 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4층 규모인 이 건물 안에는 도서관, 보건소, 체육센터, 수영장, 헬스장, 스튜디오실 등이 있다.

강서구청은 이곳이 문화·복지·체육센터를 갖춘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복지체험공간'이라 했다. 강서구청은 개관하면서 공모를 거쳐 명칭을 정했다.

'브라이트(bright)'는 '밝게' 내지 '선명한'이란 뜻이다. 그런데 강서구 주민 가운데 '브라이트'라는 뜻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곳에 전화를 걸면 대개 "체육센터 입니다"는 안내를 하고 있다.

한 주민은 "브라이트센터라 표시가 되어 있길래, 무엇하는 곳인지 찾아보았다"며 "도서관과 보건소, 체육시설이 한 공간에 있다면 차라리 '강서문화복지체육센터' 정도로 불러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강서구청 관계자는 "강서를 밝게 만든다는 뜻으로 '브라이트'라는 말을 쓴다"며 "개관 당시 공모를 통해 이름을 정했고, 포괄적인 이름을 붙였다. 구민들은 브라이트센터가 무엇 하는 곳인지 다 안다"고 말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저도 산 둘레에 조성되어 있는 전망대다. 이곳 명칭은 '비치로드'로 지정되어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저도 산 둘레에 조성되어 있는 전망대다. 이곳 명칭은 '비치로드'로 지정되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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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로드'는 어떤가.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 산(저도) 등산로 이름이 '비치로드'다. 곳곳에 '비치로드 전망대' 등의 안내판이 붙어 있다. 2010년 3월, 옛 마산시가 이곳을 '비치로드'라 이름을 붙였다.

등산객 이경정(40)씨는 "등산도 할 수 있고 해안을 따라 걸을 수도 있어 가끔 온다. 풍경도 아름답고 다 좋은데, '비치로드'라는 이름을 붙여 놓아 안타깝다"며 "'둘레길'이나 '해안길' 등 좋은 우리말이 많을 것인데, 지금이라도 바꾸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창원 마산합포구청 관계자는 "담당자가 바뀌었고 그때는 무슨 연유로 비치로드라고 했는지 알 수 없다. 한글을 사용했으면 좋았겠지만, 당시에 알리기 위해 좋은 말을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며 "비치로드라는 이름을 사용해온지 오래 되어 지금 와서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에 있는 '문탠로드' 표지석.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에 있는 '문탠로드' 표지석.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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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마사회는 '경마공원'을 '렛츠런파크'로 바꾸었다. 사진은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안내표지판.
 한국마사회는 '경마공원'을 '렛츠런파크'로 바꾸었다. 사진은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안내표지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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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우리말 이름을 영어로 바꾼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문탠로드'와 '렛츠런파크'다. 부산시는 해운대 '달맞이길'을 '문탠로드'로 바꾸었다.

한국마사회는 2014년 '경마공원'을 '렛츠런파크'로 바꾸었다. 부산경남 경마공원 관계자는 "한국마사회 본사에서 렛츠런파크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경남도는 2015년 6월 브랜드 슬로건을 '필(feel) 경남'에서 '브라보(Bravo) 경남'으로 바꾸었다. 홍준표 지사 때 바꾼 것이다. 당시 경남도는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결정했다.

기업 지원과 창업 지원, 기술개발, 인력양성 등을 하는 기관의 명칭은 '테크노파크'다. 창원 의창구 팔용동에는 '경남테크노파크'가 있다.

또 창원에는 '안민테크로드', '진해 드림로드', '진해드림파크' 등이 있다.

 경상남도는 2015년 6월 슬로건을 '필경남'에서 '브라보 경남'으로 바꾸었다.
 경상남도는 2015년 6월 슬로건을 '필경남'에서 '브라보 경남'으로 바꾸었다.
ⓒ 경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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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국어 사용은 국어기본법을 어긴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임규홍 교수는 "국어기본법이 2005년에 만들어졌는데, 자치단체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이 더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공공언어'라 한다. 갈수록 공공언어에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가 엄청 늘어나고 있다"며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공문서뿐만 아니라 이름도 한글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임 교수는 "나라가 온통 외국인을 위한 언어 사용을 하고 있다. 영어를 모르면 살 수 없다고 할 정도다"며 "공공기관은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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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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