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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3일 만에 아버지 잃은 김소형씨,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 생후 3일 만에 아버지 잃은 김소형씨,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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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나오리라고 생각했던 책이 드디어 나왔다. <경기동부> 저자인 임미리가 박사학위논문을 다듬어 낸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이 바로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에서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4명의 열사를 호명한 것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대통령의 통치 기간 동안 배척당했다가 과거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금 호출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명이 의미하듯 '열사'는 한국저항운동의 상징이다. 책은 부제인 '한국저항운동과 열사 호명구조'가 말해주듯 열사 호명구조를 통해 한국저항운동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임미리의 책은 한국사회의 여러 열사 중에서도 자살한 열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1970년대 전태일과 김상진 두 명의 열사가 있었다면 1980년부터 2012년까지는 모두 133명의 열사가 출현했다. 책은 이들 열사를 통해 매 시기별 또는 부문운동에서 일어난 지배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운동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다.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표지. 임미리 박사가 최근에 출간한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은 70년대 이후 한국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열사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불려졌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표지. 임미리 박사가 최근에 출간한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은 70년대 이후 한국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열사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불려졌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 백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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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왜 특정한 죽음들만 열사로 호명됐는가, 열사로 호명된 죽음들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국의 저항운동은 왜 열사를 저항의 상징으로 추모하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우선 저항적 자살을 당위형과 실존형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전자는 '강한 염원'에 바탕을 둔 소명의 실천 행위이며, 후자는 '강한 분노'에 기초해 주체의 존엄성 회복을 목적으로 한 행위이다.

전체 기간은 열사의 기원, 의례화, 해체의 세 시기로 나누고 있다. 먼저, '열사의 기원' 시기(전두환 정권)에는 5·18 광주항쟁 이후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운동에서 열사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 그 자체로 하나의 투쟁이 됐다.

'열사의 의례화' 시기(노태우·김영삼 정권)에는 죽음에 대한 애도가 저항운동세력의 집합적 정체성을 형성·강화하는 수단이 되면서 열사 수도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때이다. 끝으로 '열사의 해체기'(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는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균열에 기초한 전선운동이 붕괴되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열사도 본래의 의미를 잃고 해체됐다.

저자에 따르면 열사는 그 자체로 부문운동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직업별 열사 수의 증감은 각 부문운동의 성장과 쇠퇴를 반영할 뿐 아니라 지역별 출현 빈도는 부문운동의 중심 이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전체 32명인 학생열사는 서울대, 서울지역 대학, 비서울지역 대학, 성남-용인지역 대학 순으로 출현하는데 이것을 NL계 학생운동의 중심이동과 관련해 분석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열사는 그 자체로 한국저항운동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제목인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이 말해주듯 한국저항운동은 분노와 슬픔의 집합체이고 그것을 대변하는 단어가 바로 '열사'이다. 죽음을 투쟁의 상징으로 삼아 추모했다는 사실은 한국저항운동의 비극성을 말해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단식농성장을 찾아다녔고 <오월가>, <임을 위한 행진곡>, <열사가 전사에게> 같은 노래를 수없이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전태일의 유서를 읽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아 연구를 포기했다가 세월호 사건을 목격하고 재개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300여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지켜본 뒤 아무려면 그만큼이나 마음이 무너질까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 같은 심상과는 달리 문체는 매우 건조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같다. 표도 20개 가까이 된다. 자살자의 직업, 연령, 출생지역, 자살지역, 자살장소, 자살방법 등을 표로 정리했는데 표 하나하나에 큰 의미가 담겨 있다. 노동열사의 자살 장소가 개방된 공간에서 점차 고립된 공간으로 바뀐 것을 보여주는 표는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의 외면을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저자는 133명 열사가 죽음으로써 드러낸 분노와 슬픔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그 의미를 밝히고자 했지만 열사 호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아래는 저자의 그 같은 시각을 나타내는 문장이다.

"1995년 산화한 노점상 최정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복수해 달라'였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최정환을 열사로 호명해 해체된 열사와 무너진 전선을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해 달라'는 바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전선을 만들어내면서 적과의 대치에 매몰되기보다 우리 내부와 주변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고통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대가 필요하다."

이 책은 반드시 서문부터 읽기를 권한다. '어느 신문팔이 소년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서문에는 저자가 책을 쓴 과정과 소회가 간략히 나와 있다. 서문을 읽으며 열사와 그 죽음에 잠시 침잠했다가 본문부터는 무거움을 떨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읽기를 바란다. 저항적 자살의 유형 분류처럼 매우 학술적인 부분도 제법 되지만 어려운 외국 이론을 전혀 적용하지 않은 채 저자만의 쉬운 언어로 논리를 풀어가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 한국저항운동과 열사 호명구조

임미리 지음, 오월의봄(2017)


#문재인#열사#민주화#광주항쟁#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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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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