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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가장 특별한 여행지였다. 하얀 빙원, 눈 폭풍 블리자드, 혹독한 환경에 살아가는 펭귄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극에서 살아보기' 수첩 한켠에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다.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남극탐사, 극지의 일상으로 초대한다. - 기자 말
남극 운석 블루 아이스 빙원에서 발견한 운석, 지구 생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 사료가 된다 ⓒ 김진홍
'별을 보며 꿈을 꾼다. 수많은 행성의 파편들이 지구의 대기를 뚫고 떨어진다. 빛을 내며 타가가 마지막까지 버틴 잔해는 지표면에 이르게 된다. 남극의 강한 바람이 하얀 설원을 쓸어내면 억겁의 시간이 드러난다. 푸른 빙원의 검은 그림자. 순수를 보았다.'

2014년 3월 하늘에서 섬광이 관측됐다. 71년 만에 한반도에 떨어진 운석이다. 진주에서 4개나 발견되었고 제일 큰 것은 20kg이나 나갔다. 희소성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이 되었다. 파편이라도 찾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늘의 별은 빛을 낸다. 빛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다른다. 누군가 지친 삶을 위로하고, 황량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길벗이 된다. 별이 떨어지면 사람들의 탐욕이 된다.
운석 남극에선 다양한 형태와 성분의 운석이 발견되고 있다 ⓒ 김진홍
10여 년의 탐사, 세계 5위 운석 보유국

지구에서 발견된 운석의 2/3는 남극에서 찾았다. 대부분 바다 밑으로 가라 않거나 지표면에 묻혀 버린다. 남극의 빙하는 수 억 만년을 버텨왔다. 빙하가 움직이면서 갇혀있던 돌이 드러난다.

단단한 얼음은 푸른색을 띠는 블루 아이스(Blue ice)가 된다. 보통의 얼음보다 밀도가 높고 공기가 층층이 압축되어 있다. 음료에 넣으면 탄산수처럼 '치지직' 기포 소리가 크게 난다. 깨끗한 무공해 얼음을 '우걱우걱' 깨물면 청량감이 크다.
탐사 대원들 내륙 탐사를 위해 출동하는 대원들, 헬기 탑승 전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 김진홍
푸른 빙원에 노출된 돌들은 모두 운석이다. 손톱만큼 작은 크기에서부터 다양한 형태의 돌조각들이 남극 냉장고에 꽁꽁 숨어 있다. 2007년 운석 탐사단이 처음 5개를 발견한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보유국이 되었다. 36kg의 가장 큰 것을 포함해 500여 개를 발견했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다'는 말처럼 쉽지는 않다. 헬기를 이용해 내륙 빙원지대로 날아간다. 장보고기지로부터 300km 떨어진 엘러펀트 모레인 지역은 남극운석의 저장고다. 150여개 이상을 이곳에서 발견했다.

항상 강풍이 부는 곳이다. 시시각각 바뀌는 바람은 눈을 청소라도 하듯 깨끗이 날려버린다. 민낯으로 드러난 얼음 표면은 햇빛에 반짝인다. 사람이 직접 걸으면서 탐사를 해야 한다.
중간 급유지 기지로부터 300KM 이상 비행해야하는 내륙탐사를 위해 중간 급유를 하고 이동한다 ⓒ 김진홍
운석 탐사 대원들을 수송하기 위해 빙원에 헬기가 안착하고 있다 ⓒ 김진홍
순수를 찾아서

현장에 도착하면 헬기 안에서 모든 준비를 마쳐야한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샌드위치를 먹는다. 탐사 중에는 모든 움직임이 불편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몸이 휘청한다. 얼음 표면이라 미끄러워 그냥 걸을 수 없다.

방한화 밑에 아이젠(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용구)을 착용한다. 바람을 등에 지고 걸어 가야한다. 추위 때문에 몸의 움직임과 뇌의 활동이 둔해진다. 장갑이라도 잠시 벗을 때 '훅' 하고 날아가면 큰일이다. 한번 놓친 장비는 영영 못 찾고 남극의 미아가 된다. 민감한 피부노출은 바로 동상이다.

처음 탐사를 갔을 때, 찾기 어렵다던 운석이 설원에 널려 있었다. 여기저기 어느 것부터 주워야하나 고민을 했다. 흥분감에 달려가 확인한다. '이게 웬일인가' 사막의 신기루였다. 바람의 영향으로 눈 블록이 빛을 받아 생긴 '그림자'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실체는 아니었다.

탐사구역이 정해지면 대원들이 일렬로 선다. 50여 미터 간격을 유지해 지그재그로 촘촘히 확인한다. 모든 대원들은 서로의 시야 안에 있어야한다. 순식간에 날씨가 변한다. 무언가를 찾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방향감각을 잃기 십상이다.

기지 복귀시간을 고려하면 시간이 없다. 보이는 것은 얼음뿐이니 조급해진다. 헬기를 타고 마지막 포인트로 향한다. '마음을 비우고 걷자' 지나왔던 길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주먹 만한 크기의 운석이 눈에 묻혀 일부만 드러나 있다.
  
운석 강한 바람에 날린 얼음위에 드러났다. 햇빛의 반사빛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가 힘들다 ⓒ 김진홍
"야, 운석이다!" 이런 느낌이구나. 어릴 적 소풍에서 보물찾기를 성공한 것처럼 기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기록과 보관을 잘 해야 한다. 우선 GPS로 위치를 확인하고 일련번호를 입력한다. 어느 정도 크기인지 가늠하기위해 무전기를 옆에 놓는다.

배터리 방전 때문에 가슴에 품었던 사진기를 꺼낸다. 연구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오염되지 않게 회수해야 한다. 깨끗한 비닐에 넣어 밀봉을 한다. 운석은 지구 생성 비밀을 푸는 연구 사료다. 학명이 부여될 것이고 발견자는 나의 이름이 붙는다. 우주의 시간을 잇는 인연이다.
  
연구 샘플을 옮기는 대원들 설원의 눈과 얼음, 운석 샘플을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옮기고 있다 ⓒ 김진홍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나요?
   
단순한 돌처럼 보이지만 특별하다. 철성분 때문에 무게감이 있고 자석에 반응을 한다. 지구의 중력으로 대기권을 뚫고 떨어지며 열에 그을려 새카맣다. 화성과 목성 사이 우주를 떠도는 소행성들, 때론 달의 표면에서 온 것들도 발견된다.

별과 별이 부딪혀 별똥별이 되고, 빛을 내며 마지막 생명을 다한다.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했다. 유심이 보아야겠다. 너의 생김 구석구석 그리고 마음속에 담고 있는 소원을 말해야지.
  
'똑똑똑' "당신은 누구신가요?"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새록하다. 삶의 답답함이 밀려들 때 떠났던 여행이었다. 황량한 들녘을 걸을 때 길 위에 눕게 하고, 히말라야 고원 봉우리에 닿을 듯 내려왔다. 꿈을 꾸고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주었던, 밤하늘 나만의 행성이다.
운석 채취 발견한 운석은 기록과 보관이 중요하다. 오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비닐에 밀봉을 한다 ⓒ 김진홍
"무엇이든 마음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여우가 말했다. 어린왕자가 다시 지구를 방문한다면 남극에 와주었으면 좋겠다. 깨끗한 순수가 남아있는 곳이다.

천천히 가야겠다. 그리고 마음의 길을 따라 가야지. 세상은 내게 울타리 안의 삶을 원하지만 낯선 모험을 즐긴다. 긴 여행을 마치고 나면 작은 그리움들이 남았다. 인도의 바라나시 새벽기차에서 일어나 마시던 짜이(인도차)의 단맛, 차창 밖의 시골풍경과 해맑은 꼬맹이들의 미소를 기억한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여행자의 마음으로 다가가야지. 진솔함은 아름다운 인연이 될 것이다.

'네가 내게로 와주어서 고마워!' 나의 꿈 소혹성 B612.

진주에 떨어진 별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주의 소행성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연구가치가 높아 나라에서 매입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사람들의 열망만큼 가격이 올라갔다. 안타까운 것은 운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산화하여 연구 가치가 떨어진다.

45억년의 시공간에 인간의 시간은 티끌과 같다. 이 찰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네비게이션의 빠른 길도 좋지만 한적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면 느린 길이어도 좋다. 한 철 지나면 끝나는 유행이 아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이야기 있는 삶을 따라야겠다.

몇 번의 운석탐사를 나갔다. 장거리 비행과 극한추위에 견뎌야 하지만 의미가 크다. 하늘에서 온 손님을 만나는 시간여행자가 된다. 오롯이 자연 안에서 집중하고, 마음을 단순하게 한다. 주변을 살피니 또 하나가 보인다. 멈춰진 지구의 시간은 미래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남극에는 여행 바이러스가 있다. 다시 떠나게 하는 마력이다. 마음에 머물며 어디서고 치유될 수 없다. 1년 마다 월동대원들이 고립된 생활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 한결같아진다. 다시 남극으로 가는 꿈을 꾼다. 하늘에서 누군가의 꿈이었을 별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다. 운석탐사는 잃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찾는 일이다. 남극에서 운석이 발견되어 다행이다.
남극 내륙 산군 산과 눈 바람이 어울어져 신비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김진홍

덧붙이는 글 |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탐사경험, 남극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태그:#남극, #남극여행, #운석, #남극탐사,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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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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