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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 견해를 쓴 것으로, 당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환영합니다.[편집자말]
3일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
 3일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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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아주 나빴던 시점에 비해서는 호전되는 모습이다. 35% 언저리 박스권에 갇힌 채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10%p 이상 벌어지기까지 했던 1월 중순에 비하면 나름 많이 따라붙었다.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 후보는 윤 후보와 3~5%p 박빙의 지지율 차이를 보이며 약간 열세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점에서 이재명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운 상황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바둑에서 우위에 있는 쪽이 끝내기에서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변수를 없애는 방향으로 상대를 몰아가는 양상과도 같다. 격차가 좁혀드는 것 같아도 이길 확률은 점점 희박해지는 상황 말이다.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첫 TV토론, 어떻게든 모멘텀을 만들어야 했던 사실상 마지막 기회에서조차 윤석열 후보는 선방했고 이재명 후보는 점수를 따지 못했다고 본다. 애초 기대치가 높지 않던 윤 후보의 무대 장악력과 공세 방어 능력은 돋보였던 반면, 능수능란한 화술로 이름 높은 이재명 후보는 토론을 쥐락펴락하는 데 실패했다. 한편 대선판을 요동치게 만들 것 같았던 '김건희 리스크'는 '김혜경 리스크'로 상쇄되고도 남는 모양새로 전개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연말연초에 있었던 국민의힘 내홍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고서는 이재명 후보가 단독으로 우위를 확보할 가망은 희박하다는 판단이 든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는 점차 윤석열 후보에게로 이전될 것이다. 

'아웃사이더' 이재명은 어디에

나는 왜 승패가 사실상 결정났다고 보는가? 이유는 바로 이 후보 자신에게 있다. 지금의 이재명은 이재명 자신을 잃은 모습이다. '이재명의 대한민국'이 무엇인지 그 요체가 흔들린 나머지, 지지자들조차도 헛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행정은 있는 길을 잘 가는 것이지만, 정치는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이제는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말을 수시로 반복한다. 이재명의 신념과 길은 흐릿해졌다. 억강부약과 기본소득의 선명한 기치로 '이재명은 합니다'라고 말했던 '아웃사이더' 이재명은 이제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 이유를 '공급부족'으로 단언하고 311만 호라는 비현실적인 물량을 공급해서 집값을 잡아보겠다고 선언하며, 부동산 정책에서만큼은 윤석열 후보와 사실상 단일화를 이뤘다. 가격상승에 따른 이익을 거둬 나누겠다는 토지보유세와 기본소득을 결합한 아이디어는 저 뒤로 물러나 이젠 보이지 않는다.

경제 정책의 맨 앞을 차지한 '전환적 공정성장'은 박근혜 '창조경제'와 문재인 '혁신성장'의 2022년 판이다. 신산업 투자하고 혜택 주고 인력 양성하고 규제 풀어 일자리 마련한다는 계획, 필요할 수 있지만 새롭지는 않다. 먹고사는 문제, 부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문제에 대한 이재명의 답변은 지금으로선 차별성이 없다.

탈모 건보 적용 같은 '소확행' 공약은 신선한 시도일 수는 있겠지만 비전의 영역, 방향성의 영역까지 담당할 수는 없다. 이재명이 당선되면 당신의 삶이 바뀔 것인가? 더 나아질 것인가? 혹은 더 정의로운 국가가 가능한 것인가? 이런 질문에 이재명은 확신을 줄 수 없는 후보가 돼 가고 있다. 딛고 선 발판과 기초가 무너져 있는 채로 응집력 있는 공세는 가능하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유튜브에 올라온 탈모 공약 관련 영상 갈무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유튜브에 올라온 탈모 공약 관련 영상 갈무리.
ⓒ 이재명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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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는 핵심 지지층에게 강한 결집 명분을 주는 쪽이 승리했다. 그리고 그 명분은 이른바 시대정신이라 불릴 만한 것에 부합하는 방향이었다. 밑바닥에서 출발해 차례로 민주당 중진을 누르고 정몽준의 단일화 지지철회마저도 극복한 노무현 당선의 힘은 낡은 정치, 지역구도와 엘리트 보스에 의존하는 정치를 타파하려고 했던 '노사모'를 위시한 열정적 지지층에서 나왔다.

이명박은 성장과 부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는 747 구호를 제시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후광과 결합한 경제민주화라는 의외성 있는 정책적 반전을 통해 정권 심판의 열기를 누를 수 있었다. 문재인 당선은 말할 나위 없이 당시 촛불시민이 바란 정상적 민주질서로의 복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지금의 이재명 후보에게 여기에 비견할 만한 명분이 존재하는가?

핵심지지층이 결집해야 지지층도 확장한다

최근 민주당의 선거나 통치 방식은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이해득실 판단에 기초해 이뤄진다. 여론이 나쁘다고 판단하는 일들은 결코 추진하지 않고 타이밍을 기다린다. 여론조사가 허용하는 것들만 공약과 선거전략이 되고 정책이 된다. 이는 재난지원금의 추진, 부동산과 기본소득 공약의 수위조절, 성평등 공약의 접근법 등에서 잘 드러난다. 설득과 협상, 큰 틀에서의 전략과 구상은 실종된 채, 어떤 지역이나 연령집단의 분위기에 맞추어 계산된 정치적 행보를 택한다. 통계와 데이터 중심의 철저한 선거공학에 의거한 정치다.

이런 방식의 선거전 운용은 언뜻 보기에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꼬리가 머리를 흔들어서는 곤란하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일반균형모형이나 극한으로 발달한 계량경제학이 정작 경제위기는 예측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큰 흐름에서 해야 하는 일들, 단기적 불이익을 감내하더라도 전선을 만들고 포지션을 취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놓친다. 부분적으로는 효과적인 움직임을 취하는 것처럼 보여도 전체적으로는 전혀 시너지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에 민감한 서울 유권자와 보수주의에 경도된 '이대남'을 달래려는 우파지향적 접근법은 이재명의 개혁적 색채를 완전히 바래게 만들었다.

이런 미시적 접근으로는 돌아선 과거 지지층들에게 미움을 덜 받을지는 몰라도, 핵심지지층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수는 없다. 미움받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셈부터 하는 후보는 유권자가 귀신같이 알아챈다. 정책적 일관성을 잃은 후보가 뜻을 펼 수 있을 리 만무하며, 지지자에게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락을 함께하며 싸워나가자고 호소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핵심지지층이 결집한다고 반드시 지지층이 확장되는 건 아니지만, 핵심지지층이 결집하지 않는 한 지지층은 결코 확장되지 않는다. 가치와 비전이 우선시되는 대선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핵심은, '이재명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다른가'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후보에게는 그런 비전이 있기는 하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없다. 그러나 윤 후보는 정권심판이라는 구도의 우위, 바로 50:35가 시종일관 유지되는 안정적인 구조적 우위에 올라타 있는 상황이다. 'anything but 문재인', 즉 문재인 정부의 것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다는 확실한 구호가 있다. 영남 보수·노령층·이대남·수도권 반문(反文)을 중심으로 결집된 지지세력이 존재하고, 이들의 마음의 열기는 민주당 지지층보다 훨씬 뜨겁다. 'anything but'만의 싸움이라면 절대적 우위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했던 만큼이나 이들은 문 대통령에게 실망했고, 그 기운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단어 아래 응집되고 있다. 담을 그릇에 하자가 꽤 커서 줄줄 새고는 있지만, 현 집권세력에게 이길 만큼은 모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층은 잘 인정하지 않겠지만, 윤 후보는 고건과 반기문과는 다르다. 그는 단점도 확실하지만 동시에 보스와 승부사 기질이 있는 거물 보수정치가의 자질도 갖췄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6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선대위 필승결의대회에서 발언한 뒤 인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6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선대위 필승결의대회에서 발언한 뒤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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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에게 주변인을 설득할 강력한 명분을 주지 못하는 대선후보는 반드시 패배한다. 아무리 후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이 뛰어나고 상대가 RE100도 EU택소노미도 모르는 정치 초보일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윤석열은 아니잖아" 같은 읍소에 의존하지 않고, 이재명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다를지 지지층이 주변에 당당하게 말하게 할 수 있는가?

태그:#이재명, #윤석열,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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