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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진료를 통해 약 처방만 받으면 그동안 앓았던 마음의 병이 다 해결될까요.
 정신과 진료를 통해 약 처방만 받으면 그동안 앓았던 마음의 병이 다 해결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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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보신 적이 있나요?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챙기게 되나요? 먼저 당일치기가 좋을지, 3박 4일이 좋을지, 아니면 내친김에 한 달 동안 지낼지 고민하겠죠. 여행의 경로도 구상하고 교통수단도 생각해볼 것입니다. 단 며칠 떠나는 여행도 이렇게 생각할 것들이 많네요. 그렇다면 보통 몇 달 이상의 시간을 들여 받는 정신과 치료는 어떨까요?

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정신약물학이 진보한 덕분에 더욱 효과적이고 독성이 덜하면서 부작용은 적은 정신과 약물이 점차 개발됐습니다.

대부분의 정신과 진료 현장에서는 약 처방을 빼고 의사와 얘기를 나누기 쉽지 않은 상황이죠. 그런데 정신과 진료를 통해 약 처방만 받으면 그동안 앓았던 마음의 병이 다 해결될까요?

소통 잘되는 진료실

2019년 10월 뉴잉글랜드 의학회지에 '정신의학 정체성 위기의 결과'라는 부제를 단 사설이 실렸습니다. 생물정신의학은 실패했다는 글인데요, 몸‧마음‧사회의 연결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는 거죠. 그래서 좀 더 관계 중심적이고 인간적인 치료가 우리에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정신과 진료에서 약은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 의사와 환자의 적절하고 효과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의 정신과 약물치료에 염려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약의 효과와 부작용, 치료 기간, 스스로 관리하는 마음 건강에 대해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경우들을 듣기 때문이죠.

때로는 진료실에서 의사가 "약에 부작용이 없다"라는 말도 한다더군요. 하지만 부작용이 없는 치료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에서 투명한 태도를 취해야 마음이 힘든 환자분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정신과 치료를 통한 회복의 여정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들이 있습니다.

먼저, 소통이 잘 되는 진료실을 찾으세요.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음입니다. 오해가 없는 소통이 과연 있을까 싶겠냐마는 그래도 오해를 최소화하는 소통을 진료실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10분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게 좋겠습니다.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대화로 답답한 마음의 창문을 열어 잠시나마 환기를 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정신과적 진단명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이하늬 작가가 쓴 <나의 F코드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진단명이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에서 '우울병 에피소드'와 '강박장애'로 바뀌었고 마지막으로는 '양극성 정동장애, 주요 우울삽화'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세 명의 의사가 각기 다른 진단을 한 것이지요.

정신과 교과서인 <신경정신의학(2판)>에서도 정신의학의 진단은 임상병리검사나 특수 검사보다 병력청취, 정신상태검사 등 임상 기술에 더 의존한다고 합니다. 정신과에서는 의사의 임상 경험과 지식 정도,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른 진단명이 붙을 수 있습니다.

헤이즈 등이 쓴 <수용전념치료(2판)>에서는 '정신질병분류가 있더라도 치료의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분류가 치료에 주는 유용성이 낮다'고 말합니다. 치료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진단명이 아니라면 진단명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의사의 설명 의무 
 
정신과 현명하게 이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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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모든 약은 효과와 부작용이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약물은 치료 용량 범위와 독성 용량 범위를 갖습니다. 약과 사람에 따라 치료 용량 범위와 독성 용량 범위는 달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약의 사용 목표, 효능을 벗어난 부작용 혹은 이상 반응도 모든 약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 약은 뇌에 작용하기에 마음뿐 아니라 몸에 대한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지요. 뇌는 마음과 닿은 기관이기도 하지만 온몸과 연결된 기관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정신과 약의 주요 부작용은 '의존성'입니다. 회복의 과정을 여정이 아닌 고인 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존성이 있을 수 있는 약인 벤조디아제핀 계열 항불안제와 수면유도제는 심리적·신체적 의존성이 있을 수 있기에 필요성을 신중히 따지고 좀 더 의존성 염려가 없는 다른 안전한 약을 우선해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의존성이 있는 약을 처방하는 경우 의사는 설명의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정신과 약을 사용하는 과정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여 항로를 유지하고 착륙하는 항공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정신과 약을 시작할 때는 낮은 용량에서 서서히 증량합니다.

항공 여행 이륙 전 기내 안내방송을 듣는 것처럼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과 약을 유지하는 것은 항로를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 주에서 몇 달, 재발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몇 년 동안 약을 유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아팠던 기간이 길다면 치료 기간이 길 수도 있습니다. 치료 종결은 비행기가 착륙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마음의 힘듦이 충분히 덜어졌을 때, 환자 스스로 원할 때, 약의 효과보다 부작용에 따른 어려움이 더 클 때 우리는 치료 종결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재발에 주의하면서 함께 상의해 약을 덜어가는 속도와 기간을 정합니다. 금단증상을 방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약, 보조적인 약부터 서서히 덜어가는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시대, 우리의 삶과 마음을 힘겹게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요즘 정신과 진료를 찾는 분들도 계속해서 늘고 있고요.

이 작은 글이 모쪼록 힘겨운 분들의 마음 회복 여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장창현 살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입니다.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정신과,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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