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장건재 감독과 배우 김주령, 문호진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장건재 감독과 배우 김주령, 문호진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오징어 게임> 속 '크레이지 걸' 하면 레이디 가가도 산드라 오도 환호하며 알아본다. 최근 2년간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 배우 김주령을 두고 넷플릭스 드라마로만 기억하기엔 너무 아쉽다. 20년이 넘는 연기 경력에서 그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드라마, 그리고 무대 연기 가릴 것 없이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왔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 초청작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김주령의 진면목을 가늠케 하는 작품이다. 9년 전 참여한 <잠 못 드는 밤>에 이어 장건재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소재는 서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두 영화 속 캐릭터 이름이 모두 주희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암 진단을 앞둔 연극과 교수 주희가 신변을 정리하며 만나는 몇 사람들, 그리고 그의 남편이 연출하는 연극 작품을 교차시키며 인생의 어떤 묘미를 탐지하는 작품이다. 흑백의 이 영화에선 <오징어 게임> 한미녀의 강렬함 대신 김주령의 담백함이 깊게 묻어있었다. 영화제가 한창인 6일 오후 배우 김주령을 부산 해운대 모처에서 직접 만났다.
 
오랜 인연
 
장건재 감독과 김주령 배우의 인연은 <잠 못 드는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영화 이후 서로 사는 얘길 하며 많이 가까워졌다"며 김주령은 "마침 그때 제가 아이를 낳았고 장 감독도 그즈음 아이가 태어났다. 서로 육아 이야기, 사는 이야길 하다가 40대 중반의 부부 이야길 하면 어떨까 하던 차였다"고 운을 뗐다.
 
"<잠 못 드는 밤> 주희가 30대 신혼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40대 주희 이야기다. 장 감독님과는 뭔가 인생과 영화 함께 가는 느낌이랄까. <오징어 게임>을 다 찍고 2020년 11월 초에 촬영을 시작했다. 쭈욱 이어서 한 게 아니라 감독님과 제 스케줄이 맞을 때마다 조금씩 찍어갔다. 마지막 촬영이 올 4월이었으니 약 2년이 걸린 셈이다(웃음)."
 
죽음을 코앞에 둔 것 같지만 주희는 차분하고 꼼꼼하다. 성적을 문의하러 온 학생에게는 하나하나 증거를 대가며 왜 상향 조정이 안 되는지 설명하고, 자신의 강의를 기억하며 그림 선물을 주는 학생과는 따뜻한 포옹과 함께 감정을 나눈다. 전도유망했던 한 배우가 결혼 후 교단에 섰고, 가장 역할을 하다가 병을 얻게 됐지만, 꿋꿋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위안을 얻게 된다. 소소한 작품에 특별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김주령은 자신의 삶 일부를 예로 들며 말을 이었다.
 
"(강의를 맡으며 더 이상 연기하지 못하게 됐지만) 전 주희가 꿈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을 것 같다. 이게 버려지지 않는다. 저도 사실 그러던 때가 있었거든. 남편이 미국 유학 갈 때 따라 나갔고, 아이를 낳았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남편의 자리가 없더라. 4년 만에 다행스럽게 남편이 미국 (텍사스 주립) 대학교수가 되면서 저도 모든 걸 그만두고 미국 가야겠다 결심했었다. 한국에서 배우 생활하는 것에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남편이 정말 괜찮겠냐고 묻더라.
 
그때 경제적 문제도 있었고, 육아에서 오는 힘듦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온 것 같다. 열심히 역할 가리지 않고 연기했는데, 현장에서도 여긴 어디고 난 누구? 이런 마음이 들던 때였다. 근데 마음 깊은 곳에선 연기를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더라. 그때 황동혁 감독님에게 연락이 온 거였다. 내년에 뭐하세요 묻는데, 차마 미국에 간다는 얘긴 안 했다. 왠지 역할을 부탁하실 것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구체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준비하는 게 있다고 연락준다고 하셨다."

  
 배우 김주령.

배우 김주령. ⓒ 저스트엔터테인먼트

 
<오징어 게임>이 준 변화들
 
모든 걸 뒤로 하고 한국을 떠나려 했을 당시 다가온 <오징어 게임>은 김주령의 삶을 바꿔놓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대본 받았을 때 분명 잘 될 거라 느꼈다"며 "결과가 어떻든 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일종의 하늘의 계시같았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사실 그때도 이 작품만 찍고 미국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웃음). 주변에선 찍을 때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시는데 정말 몸이나 정신적으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결과와 별개로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감독님이 한미녀는 무조건 김주령 것이니까 건들지 말라고 하셨다더라. <오징어 게임>에서 한미녀가 가장 주체적인 캐릭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미국 시상식도 다녀왔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미국 배우조합, Screen Actors Guild, SAG) 시상식 분위기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더라. 포토월에 서고 바로 행사장에 들어가는 우리와 다르게 거기선 여러 지점을 옮겨가며 사진 찍고, 들어가기 전에 각 언론사 부스 앞에서 인터뷰도 하더라. 시상식도 중간에 15분씩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때 레이디 가가와 산드라 오를 만났다. 너무도 환영해주시더라. 이미 절 알고 계셨다. 참고로 산드라 오와 찍은 사진은 사실 화장실 앞이었다(웃음)."

 
이 대목에서 김주령은 과거 데뷔 초기 때 기억을 언급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알고 보니 역사교육학과 전공생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과에서 1등 성적이었다고. "중학생 때 연극반도 하면서 막연히 연기를 전공할까 싶었는데 주변에서 취업이 중요하다. 연영과 안 가도 연기할 기회가 있다는 말에 역사교육학과를 지원한 것"이라며 그는 "1년을 다녔는데 제 안에서 다시 연기를 하고픈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와 전과하게 됐다"고 말했다.
 
"과톱이 전과한다고 하니 지도교수님이 말리셨지. 연영과에서 떨어지면 여기서도 안받아줄 거라 하시더라. 안되면 재수하겠다는 마음으로 부탁드렸다. 근데 연영과에서도 타과생이 온다고 하니 좀 부정적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안민수 교수님이 절 불러서 뭘 할 줄 아냐며 이것저것 시켰고, 다했다. 그분이 안 받아주셨으면 정말 재수를 했을 것이다."
 
이 말과 함께 김주령은 살짝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과거의 여러 기억이 떠오른 듯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징징거리면서도 지금껏 연기를 해왔다. 배우를 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 어떤 운명이 있는 걸까 계속 생각하는 요즘이었다"고 속생각을 털어놨다.

"운명, 숙명을 넘어서는 내가 해야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개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어떤 사명과도 같은 걸 느낀다. 저와 남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러 도움을 받았고, 저도 이런저런 일 겪으면서 분명 세상에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될 것이다. 경제적 풍족함이 생긴다면 더 좋은 곳에 쓰고 싶고, 돈을 떠나서 해외시장에 더 도전해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보다 분명 책임감이 많이 느껴진다. 그만큼 사랑과 관심을 주시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촬영 당시 김주령(아래)과 정호연(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촬영 당시 김주령(아래)과 정호연(위). ⓒ 김주령 SNS

 
풍성한 김주령의 세계
 
'설레고 가슴 떨리는 거면 내가 원하는 거야!'

최근 미국에서 남편과 화상 통화하며 자주 하는 대화 주제가 설렘이라고 한다. "삶에 도움되고, 영감이 되는 말들을 주고 받는다"며 김주령은 웃어 보였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또한 김주령에겐 설레는 작품이었다. 그는 "상업영화나 드라마에선 저를 강하고 센 모습으로 비추곤 했다. 그것도 물론 좋지만 자연스러운 김주령의 모습을 장건재 감독님이 쓰고 싶어한다. 제가 하고 싶은 연기도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 랜드> 같은 작품에 있다"고 강조했다.
 
50대의 주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참에 김주령의 여러 전작부터 볼 일이다. 출연작 중 어떤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지 묻는 말에 "잠깐 나온 작품들이 많은데"라고 짐짓 겸손한 반응을 보이는 그는 영화 <해빙>, <잠 못 드는 밤>, <도가니>를 언급했다. 풍성한 김주령의 연기 세계를 하나씩 확인해 볼 차례다.
김주령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장건재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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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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