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7 13:37최종 업데이트 23.07.1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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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16일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 등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해상 미사일 방어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율곡이이함,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존핀함,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마야함. ⓒ 해군


독도 인근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 3국이 또다시 연합군사훈련을 벌였다. 해군에 따르면 16일 우리의 율곡이이함과 미국 존핀함, 일본 마야함 등 3국의 이지스 구축함이 동해 공해상에서 미사일 방어훈련을 했다.

작년 9월 30일에는 독도 인근 150km 지점에서 자위대가 참여하는 대잠수함 훈련이 있었고, 작년 10월 6일과 올해 2월 22일에는 185km 지점에서 자위대가 참가하는 미사일 방어훈련이 있었다.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로 기념하는 2월 22일의 연합훈련은 일본 입장에서는 다케시마 수호를 위한 훈련이나 다름없었다.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 독도 인근에서 일본군와 함께 훈련 한다고 하지만, 지난 4월 사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오로지 대북 방어 때문에 이런 훈련에 참가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4월 초 우리 해군은 북한군의 해안 상륙에 대비한 해상 방어훈련을 위해 동해안과 울릉도 사이,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항행경보구역을 각각 설정했다. 이것이 대북 방어를 위한 훈련인데도, 일본은 의심을 품었다. 일본 방위성은 '독도 방어 훈련을 하는 것이냐'고 질의했고, 한국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항행경보구역 설정을 취소했다. 독도 주변이 훈련 구역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일본에 표시한 것이다.

일본이 정말로 독도를 대북 방어 기지로 생각한다면, 이의 제기로 비칠 수 있는 그런 문의를 해서 훈련에 지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우려하는 것은 독도를 훈련 구역에서 제외함으로써 대북 방어 훈련에 차질이 생기는 것보다는, 한국군이 단독으로 독도 주변을 훈련 구역으로 설정해 일본을 따돌리는 것임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독도 주변이 한국군의 단독 훈련장이 되지 않고 일본군과 미군을 위한 국제적 훈련장의 기능까지 갖게 되는 것은 독도 안보에 위태롭다. 이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독도를 그런 훈련장으로 만드는 것이 애초부터 일본의 독도 재침탈 시나리오에 있었기 때문이다.

1952년 9월의 독도 폭격

1945년 패망 뒤에도 정부 형태를 유지한 일본은 미군정 하에서도 독도 재침탈을 기도했다. 1947년 7월 23일 자 <동아일보>는 "일인들이 조선으로부터 물러간 뒤 온갖 발악을 하고 있던 중, 가증하게도 우리의 판도에까지 야욕의 마수를 뻐치고 있다"며 일본인들이 독도를 자국 땅으로 주장하고 한국인들의 어업을 방해하는 실태를 소개했다.

그해 4월에는 일본 어민이 독도에 상륙해 "이곳은 내 구역"이라며 한국 어민에게 총격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패전 때문에 안 그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일본 어민이 무기까지 들고 와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공권력의 배후 지원 없이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이 그런 우려를 품었다는 점은 미군정청 내 한국인 책임자인 안재홍 민정장관의 대처에서도 드러난다. 안재홍 민정장관이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해 8월 4일부터 대책 논의에 들어간다는 그해 8월 3일 자 <동아일보> 기사는 공권력을 사용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본의 독도 침탈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인들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독도를 국제적인 훈련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영남대 독도연구소가 발행한 <독도 연구> 제20호에 실린 이태우 연구교수의 논문 '1948년 독도 폭격 사건의 경과와 발생'은 한국전쟁 중에 일본 중의원에서 논의된 내용을 이렇게 소개한다.
 
"제13회 중의원 외무위원회(1952.5.23)에서 야마모토 도시나가 의원은 '이번 일본 주둔군 연습지 설정에서 다케시마 주변이 연습지로 지정되면 이를 일본의 영토로 확인받기 쉽다는 발상에서 외무성이 연습지 지정을 오히려 바란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냐'라고 질문했고, 이시하라 간이치로 외무성 정무차관은 '대체로 그런 발상에서 다양하게 추진'한다고 답변했다."
 
1952년 7월 26일 일본은 독도를 미군 훈련장으로 제공하는 '군용시설과 구역에 관한 협정'을 미국과 체결했다. 일본은 권한도 없이 독도를 훈련장으로 제공했고, 미국은 권한도 없는 나라로부터 훈련장을 제공받았던 것이다.

그런 직후에 발생한 사건이 그해 9월 15일과 22일의 독도 폭격이다. 미군이 독도와 그 주변을 훈련장처럼 활용하면서 폭격하는 사태가 이때 벌어졌다. 미군의 폭격을 이용해 한국인들의 독도 접근을 막으려는 일본의 의중이 반영된 사건이었다.

일본과의 교감 속에 미군이 독도를 폭격하는 일은 4년 전인 1948년 6월 8일에도 있었다. 평소에 자주 보이던 일본 어민들이 일절 나타나지 않은 이날, 미군 B-29 폭격기가 저공비행을 하면서 한국 어민들을 폭격해 최대 200명의 사망자(2015.2.6 대구일보)가 발생했다. 위 논문은 그날 일본 어민들은 미군의 폭격 훈련을 사전에 통보받았다고 기술한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섬이 미군 훈련장이 되면 일본이 영유권을 인정받기 유리하다는 판단은 일본과 대만·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열도(조어도)와 관련해서도 나타났다. 일본은 센카쿠열도가 미군 사격훈련장이 된 사실을 그렇게 활용했다. 센카쿠열도 분쟁을 조명한 1996년 9월 23일 자 <조선일보>는 "일부 섬은 미군의 사격 훈련장으로 사용됐다"라며 "일본 측은 이것이 미국도 센카쿠제도가 일본 땅임을 인정한 증거라고 내세우고 있다"라고 전했다.

독도를 국제적 훈련장으로?

미국을 이용해 외국 섬의 영유권을 차지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대해 특히 분노한 인물이 백범 김구였다. 그는 1948년 독도 폭격 사건 8일 뒤인 그해 6월 16일 개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 담화에는 미군의 책임만 언급됐지만, 김구가 이끄는 한국독립당(한독당)이 19일에 발표한 담화에는 일본과 미국의 연계가 선명하게 적시됐다. 그달 20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한독당 담화 제2항은 아래와 같다.
 
"독도 참사는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미국이 일제를 재무장시키기 위하여 소위 특공대를 훈련시키고 있다 하므로, 그 왜적들의 소위가 아닐까 심히 우려되고 격분되는 바이다."
 
사흘 전 담화에 언급되지 않았던 일본과 미국의 연계 가능성이 19일 담화에 언급됐다. 독도에 폭격을 가한 미군 폭격기에 일본인 특공대원들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 제기였다. 16일 담화 이후에 한독당과 김구가 새롭게 입수한 사실관계가 19일 담화에 영향을 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힘든 미군정 시절이었다. 그런 시기에 그 정도로 의혹을 제기했다면, 상당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이 독도 폭격의 실제 주역이라는 한독당과 김구의 의혹 제기는 미국의 책임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지만, 전범국가인 일본을 은밀히 재무장시켜 독도 폭격을 허용했다는 의혹 제기는 미국의 도덕성과 리더십에 상처를 줄 만한 일이었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과 일본의 연계를 주장했다면, 최소한의 근거가 있었으리라고 판단하는 게 이치적이다.

해방 뒤에 일본이 권한도 없이 독도를 미군 훈련장으로 제공하고, 그렇게 미·일이 공조하는 속에서 독도 폭격이 연이어 발생했다. 위의 중의원 회의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일본의 독도 재침탈 시나리오에는 독도를 국제적 훈련장으로 만드는 방안이 들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을 독도에서 쫓아내기 위한 미군의 군사행동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는 지금 우리 눈앞에서 연달아 벌어지는 독도 주변의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만든다. 이것이 북한을 겨냥한 훈련인 측면도 물론 없지 않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대북 방어가 유일한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군 훈련장이어야 할 독도와 그 주변이 지금처럼 한·미·일 공동 훈련장이 되는 것은 독도에 대한 한국의 권리를 소유권에서 공유권으로, 더 나아가 '무소유'로 격하시킬 수도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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