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씨영금 아이들이 바깥놀이를 나갔다. 놀이에 물이 올라 한참 신나는데 선생님이 부른다.
"얘들아, 우리 이제 영어선생님 오실 시간이다. 정리하고 들어가자."
열심히 불러보지만 아이들은 대답도 없다. 계속 재촉하자 자기들끼리 하는 말.
"우리 집에 가서 엄마한테 영어 끊어 달라 하자."
"그래 그러자."
시간은 다 되어 가고 다시 선생님이 "얘들아, 그래도 안 돼. 그만하고 교실에 들어 가자"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말.
"우리는 놀고 싶으니까 선생님이 영어 배우세요".
"그러면 되겠다. 선생님 영어 잘 하고 좋겠다".
담임교사는 난데없이 영어 단독 과외를 받을 뻔했다.
우리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들과 산에서 자란다. 교실에 있으면 놀잇감을 누가 먼저 차지할지를 다투지만, 자연 속에선 그런 걱정이 없다. 천지가 놀잇감이고, 어디를 가든 궁금한 것들로 가득하다. 뛰어다녀도 책상에 부딪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안전을 위해 억지로 줄을 설 필요도 없다.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당당하다. 작은 일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한다. 자연이 그렇게 키워 준 것이다.
생태유아교육을 하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놀이 중심 교육을 부모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어린 반은 '잘 먹이고 잘 논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를 설득할 수 있다지만 네 살, 다섯 살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학교 가기 전에 한글도 수학도 제대로 못 배우고 간다고요?"
남들처럼 매일 영어 특강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한자 급수 시험도 치르지 않는다. 날마다 산책하고 바깥놀이를 하며 땟국물이 졸졸 흐르고, 가르마까지 햇볕에 탄 촌스러운 아이들의 외양을 어떻게 부모들에게 설득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기로 했고 때와 결을 존중하는 교육을 하기로 한 우리는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처음 몇 해는 영아반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고 상당수의 아이들은 세 살 혹은 네 살이 되면 일반기관으로 옮겨갔다. 포기하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언어는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의 순서로 학습한다. 상대의 말을 잘 듣게 되면, 자기 생각을 잘 말할 수 있고, 흥미가 생길 때쯤(보통 네 살 후반에서 다섯 살 때쯤) 읽기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대소 근육이 어느 정도 발달해서 바른 자세로 연필을 잡고 쓸 수 있을 때 쓰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린이집은 한글수업 대신 선생님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고 스스로 책장에 있는 그림책을 보고 또 교구장 한쪽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글 관련 교재나 교구를 배치한다. 아이가 한 말을 글로 옮겨, 교사와 부모가 주고 받는 마주이야기 노트를 통해 자신의 말이 글이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교실의 게시판이나 자유놀이 시간에 사용하는 메뉴판, 각종 안내판을 만들고 그리고 글씨를 쓰며 그 상황에 필요한 글자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은 때는 정음한글이라는 프로그램과 교재를 사용한다. 정음한글은 훈민정음 제작원리를 기반으로 한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들이 한글 홀소리(모음), 닿소리(자음)를, '음운인식'부터 '낱말찾기'까지 차근차근 배우고 익히도록 만든 교재로 아동발달단계에 맞춘 감성적 활동으로 어린이들이 한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한글 자음세 살 물오름 아이들의 한글 자음 몸으로 표현하기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우리 까막눈들은 글자를 몰라서 그림을 먼저 보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줄 안다. 정해진 대로 하지 않아도 길을 잘 찾는다. 게임을 하면 규칙을 새로 만든다. 줄넘기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천 개는 거뜬히 뛴다. 시장놀이를 할 때 천 원을 받고 만 원을 내 주기는 하지만 줄넘기 숫자를 세야 하는 관계로 1에서 1000까지 세는 아이도 있다. 망치로 못을 박을 수도 있고 톱질도 한다. 바느질로 놀잇감 가방을 만들고 이름을 수 놓을 수도 있다.
이 과정을 참여수업이나 전문 강사의 부모교육, 그림책 책놀이터, 온 가족 노는 날 등의 다양한 형태로 부모를 원으로 들어오게 하여 눈으로 보고 느끼도록 해 왔다. 부모들 중 상당수는 우리 원이 그런 기관인 걸 알고 입학을 했기 때문에 설득은 효과가 있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함께 해 왔다.

▲봄네 살 꽃피움 한줄 쓰기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달라졌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었을 때 이런 시련으로 생태교육의 필요성이 강화되리라는 기대를 했지만 오히려 퇴보하고 디지털 교육은 더욱 강화되었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고 자연은 그저 체험장의 역할이 되어버렸다. TV에서는 아이들이 원어민처럼 영어를 사용하고 수학과외, 과학과외에 온갖 예체능을 섭렵하고 있다.
우리 원도 예전 같을 수는 없다. 사회적 분위기와 출생률의 저하와 젊은 세대가 줄어든 지역 환경의 영향과 2024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교육부로 통합되며 어린이집은 영아가 다닌다는 편견들이 생기고 그 외 아마도 내가 모르지만 놓치고 있는 여러가지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애를 써도 제자리라면 정말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미세먼지, 황사, 눈, 비, 감기, 부모의 불안 등을 핑계로 줄어든 나들이는 예전보다 더 늘어나서 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나들이 다니며 자연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교실 안에서는 사소한 규칙의 테두리는 넓히고, 생각하고 창의적인 활동으로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놀이가 중심이 되도록 하였다. 제대로 놀며 배우기로 한 것이다.
한편으로 부모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한글, 수 수업을 할 수 있는 한 우리답게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한글, 수를 가르친다고 내일 갑자기 원아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영어를 강화하고 발레를 한다고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생태어린이집을 시작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 부모들의 요구 사이에서 흔들리는 일도 있지만 지혜로운 판단을 하려 항상 고민하고 있다. 사립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함께 갈 방법을 찾아볼 뿐이다. 우리는 계속 해 나갈 것이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고민이 생길 때 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싸는' 진짜 아이로 키우겠다는 본질로 늘 돌아간다.

▲움사랑에서 한글을 익히는 법아이들이 만드는 게시판 ⓒ 움사랑생태어린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