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닥은 보이지 않고 바위에 검은 이끼만이 자라고 있다. (2025/8/24) ⓒ 진재중
청정 자연의 상징이던 강원도 깊은 산속 바람불 계곡이 녹조와 악취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맑은 물과 토종 어종이 어우러지던 계곡은 여름철 무더위 속에 도암댐에서 흘러든 녹조가 뒤덮으며 생태계 붕괴 위기에 놓였다.
"쉬리와 토종 물고기가 살던 1급수 계곡"
강원도 깊은 산속 바람불 계곡은 한때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토종 어종들의 천국이었다. 영화로 이름을 알린 쉬리를 비롯해 납자루, 동자개, 퉁사리 등이 무리를 지어 헤엄쳤고, 맑은 물 위에는 원앙과 백조가 날아들어 터를 잡았다. 아이들은 돌 틈에서 고기를 잡으며 뛰놀던 자연 놀이터였다.
바람불 계곡을 품은 산골 마을은 한때 오지 중의 오지였다. 2012년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왔고, 그 전까지는 호롱불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지금도 단 몇 가구, 손에 꼽을 만큼의 주민들이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다. 그들에게 계곡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삶과 추억이 함께 흐르는 고향의 심장이었다.
한때 그곳에서 살았던 김아무개씨(현 강릉시 거주)는 "전기가 없어 불편하긴 했지만, 참 좋았습니다. 제게는 늘 마음의 고향이었지요"라고 회상했다.

▲바람불이 마을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언제나 바람이 분다’는 뜻을 가진 해발 700m 고지 마을. (2025/8/24) ⓒ 진재중
이끼가 대신한 자연의 기억
한때 산골계곡은 돌단풍과 도깨비부채, 바위떡풀 등 토종 식물들이 빼곡히 자라, 찾는 이들에게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틈에서 피어난 작은 꽃과 풀들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맑은 물소리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이런 맑은 물이 흐르던 산골 계곡이 이제는 생기를 잃었다. 바위 위에는 검게 그을린 이끼와 오염물질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 있는 생명의 흔적은 사라졌다. 자연의 오랜 역사를 품은 계곡이 공허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변화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한 주민은 "옛날에는 냇가에서 목욕하고 고기 잡으며 놀았던 삶의 터전이었는데, 지금은 생명도 사라져 우리도 마을을 떠나야 할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계곡의 암반 위, 한때 자라던 식물은 사라지고 이끼만이 남아 있다. (2025/8/24) ⓒ 진재중
"녹조에 갇힌 계곡, 죽은 물줄기로 변하다"
한때 맑고 투명해 바닥까지 훤히 보이던 바람불 계곡은 이제 녹조에 잠식된 죽은 물줄기로 전락했다. 계곡은 짙은 녹색 페인트를 부어놓은 듯 변했고, 낚시꾼들이 모이던 자리에는 썩은 오염물과 악취만 남았다.
마을 주민들은 "처음엔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는데 해마다 상황이 악화되고, 올해는 냄새까지 심해져 마을을 떠나야 할 지경"이라며 불편과 불안을 호소한다. 이미 토종 어종은 자취를 감췄고, 계곡의 생명력도 함께 사라졌다.
가끔 민물낚시를 즐기던 김기남(67)씨는 계곡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는데 이제는 낚시는커녕 썩은 냄새만 진동한다"며 "나의 휴식처가 잘려나가는 듯한 심정"이라고 씁쓸함을 전했다.

▲바람불이 현장드론을 조종하는 필자와 낚시를 즐기러 온 방문객의 모습. (2025/8/24) ⓒ 진재중

▲구멍다리사이로 흐르는 물이 녹색이다(2025/8/24) ⓒ 진재중
두 계곡의 불안한 만남
바람불이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약 3km를 지나 배나드리(도암댐에서 나오는 물과 대기리에서 나오는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른다. 이곳에서 대기리에서 내려오는 또 다른 물줄기와 합류하는데, 바람불이 물은 짙은 녹색을 띠고, 대기리 물은 바닥까지 비칠 만큼 맑아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두 물줄기는 하나가 되어 정선과 영월을 거쳐 동강으로 이어지고, 계곡과 숲을 적시며 생명을 품는다. 결국 이 물길은 한강으로 흘러들어 각 지류가 지닌 색과 특성이 합쳐지며 강의 풍경과 생태계에 독특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바람불이 계곡의 녹조가 낀 녹색 물과 대기리 계곡의 맑은 물, 선명한 색 대비를 이루다. (2025/8/24) ⓒ 진재중

▲바람불이 계곡에서 흐르는 녹색 물과, 왕산 대기리 방향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2025/8/24) ⓒ 진재중
바람불이 녹조, 도암댐 수질 관리 부재가 불러온 결과
전문가들은 바람불이 녹조현상은 "도암댐 수질 관리 부재와 고수온, 영양염류가 겹치면서 나타났다고 말한다.
도암댐의 역사는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역변경 수로식 댐으로 확정된 뒤 6년간의 공사를 거쳐 1990년 담수를 시작했다. 댐 건설 이후 한강수계 평창 송천의 오염된 물이 강릉 남대천으로 유입되면서 수질과 생태계가 급격히 훼손됐다. 특히 대관령 지역에 밀집한 축산단지, 고랭지 채소밭, 골프장 등 각종 오염원이 수질 악화를 가속화했다.
2001년에는 강릉시민들의 강력한 투쟁으로 발전방류가 중단되는 성과를 거뒀지만, 2002년 태풍 루사 이후에는 하류 지역인 평창·정선·영월에서 동강 오염과 홍수 피해가 이어지며 도암댐 해체 요구가 본격화돼 발전이 중단되었다.
도암댐은 건설 초기부터 환경오염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으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릉·영월·정선·평창 등 강원도 지역의 대표적 환경 문제로 남아 있다.

▲도암댐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도암댐. 물을 인위적으로 강릉 방향으로 돌려 발전을 위해 건설되었다. (2025/8/24) ⓒ 진재중
발전 멈춘 도암댐, 오염의 근원으로 남다
현재 도암댐은 발전 기능을 멈춘 채, 오염의 근원으로만 남아 있다. 녹조와 탁수가 반복되며 하류 계곡과 동강을 오염시키고, 생태계와 주민 생활을 위협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방치된다면 회복은 불가능할 수 있다"며 근본적 대책과 정부 차원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녹조로 뒤덮인 도암댐, 마치 도화지에 녹색 물감을 흩뿌린 모습이다. (2025/8/24) ⓒ 진재중

▲위에서 본 도암댐,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녹조로 뒤덮여 있다. (2025/8/24) ⓒ 진재중
"청정 계곡, 더 이상 방치 안 돼"
환경단체들은 바람불 계곡의 사례가 단순히 한 지역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기후위기와 수자원 관리 실패가 맞물리면서 청정 자연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은 "바람불이 계곡은 강원 산골 자연의 상징 같은 곳"이라며, "이대로 방치된다면 지역의 생태관광 자원과 소중한 생태계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바람불이 계곡은 단순한 산골물이 아니라 강원 생태의 상징"이라며, "근본적인 수질 관리와 복원 대책 없이는 청정 자연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녹음이 우거진 산간 계곡, 녹조가 낀 흐르는 물은 녹색 물감처럼 뒤덮여 구분이 어렵다. (2025/8/24) ⓒ 진재중
한때 '순수 자연의 보고'로 불리던 계곡이 녹조의 희생양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수질 관리와 생태 복원 대책이다.

▲정선과 영월 계곡을 따라 수도권으로 흘러가는 맑은 물길.그러나 지금은 녹조로 녹색물결을 이루고 있다. (2025/8/24)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