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닷새째인 4월 8일 일부 지지자들이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여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재출마'를 촉구했다. 자유대학 등 탄핵 반대 단체가 이날 저녁 이태원역 앞에서 '윤 어게인'(Yoon Again) 집회를 열고 관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1월 29일 오후, '윤 어게인'을 자칭하는 중학교 1학년 A가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DM(쪽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12.3 계엄이 왜 내란인지 설명 가능하냐' '내란이 아닌데, (내란이라고 주장하는) 토끼풀은 가짜뉴스니까 학교에서 막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시비 아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황보현님의 시민기고 글을 보여주면서 "계엄이 헌정 유린이라는데, (토끼풀이) 그 의견에 동의해서 글을 올려준 것 아닌가요"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황보현님 개인의 생각인 거지, 토끼풀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라면서 "개인적으로는 내란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끼풀은 이 사안에 '내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계엄이 왜 내란인지부터 토론해달라"고 하더군요. DM으로 대화하면 말이 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을 요청하고, 10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본인이 밀리는 것 같으면 잠수를 타는 경우가 '애국보수' 사이에서 꽤나 자주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나서 대화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밥이나 한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A는 은평구의 한 쇼핑몰 쪽이 좋겠다며 수락했습니다.
일단 '윤 어게인' 사상을 가진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지난해 이후 상당히 많은 극우 청소년들을 만났고, 인터넷으로도 조우했는데, 그 중에 실제로 만나서 심도 있게 이야기한 친구는 없습니다.
보통 레퍼토리는 이렇습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먼저 상대 쪽에서 시비를 걸어옵니다. <토끼풀>이 '좌파 언론'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겠죠. "계엄이 왜 내란이냐" "왜 이재명을 지지하냐"며 토론을 요구합니다. 몇 차례 대화가 오간 뒤 저는 "온라인은 한계가 있으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라고 제안하거나, "본인 주변에 그런 친구가 많은 것 같은데, 단톡방을 만들어 함께 토론해보자"라고 합니다.
만나는 건 꺼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경우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비슷한 사상을 가진 친구 두세 명을 불러오더니, 저희 쪽에서 합리적 논리를 내세우면 한 명씩 줄행랑을 칩니다.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에 몰려와 "좌파 신문 꺼져라" "518"등의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도 "비판 의견을 환영한다. <토끼풀>이 좌파신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글로 써 봐라. 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원고료도 준다고 했는데도, 그러한 요청을 보낸 3명 중 응한 사람이 없습니다.
"계엄으로 피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느냐"

▲중학교 1학년 A와 나눈 대화. ⓒ 문성호
사족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극우들과의 대화에 목말라있던 차에, A가 나타난 겁니다. 먼저 시비를 걸어왔지만, 솔직히 많이 반가웠습니다. '윤 어게인'과 현실에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11월 30일 A를 만났습니다. 저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이서찬 기자도 함께했습니다.
일단 "본인을 정치 스펙트럼상에서 어떻게 정의하는가"부터 물었습니다. '윤 어게인'이라고 했습니다. '윤 어게인' 청소년은 대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국민의힘인지, 자유통일당인지, 개혁신당인지도 궁금했습니다. A는 "딱히 아무 정당도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며 "그냥 윤석열이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래집단에 많은지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물었습니다. "대체로 둘 다 싫어하는 '중립'"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은 '인스타그램'이라고 했습니다.
A는 친구들이 꽤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인스타그램 단체 DM 채팅방을 슬쩍 보여줬습니다. 역시나, '이재명 때문에 나라 망했다' '중국인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식의 콘텐츠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를 주고받는 이들을 '중립'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미 중립의 기준선 자체가 많이 치우친 것으로 보입니다.
식사 자리로 이동해 본격적인 토론에 돌입했습니다. '계엄이 왜 내란인가'로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A는 "계엄으로 피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느냐"며 "군 투입도 '질서 유지용'이었고, 조국 전 의원 등 국회의원들도 자유롭게 출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일단 "군대를 동원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국회의원들도 출입이 제한됐다. 조국 등 먼저 들어간 의원들은 초기 경찰이 우왕좌왕할 때 들어간 것이다. 출입이 자유로웠다면 왜 이재명 대통령이나 우원식 국회의장은 담을 넘었겠느냐"고 반박했습니다. '서울경찰청, 국회 관계자에 한해 출입 조치'라고 적혀 있는 타임라인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A는 군 투입에 대해 "아무도 죽지 않았고, 총 한 발 쏘지 않았다"고 재차 언급했습니다. 저는 "'질서 유지용'이었다면 유리창은 왜 깼나"라며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잡으려 했다는 것 자체가 내란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윤 어게인' 청소년도 인정한 헌재 결정문
이야기의 주제는 '윤석열이 정말 권력을 잡으려 했는가'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그때 현장에 갔던 군인들이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등 관련자들이 전부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며 "윤석열의 측근(노상원)의 수첩에는 '윤석열 3선'과 '후계자' 얘기가 적혔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영상과 사진도 보여줬습니다.
A는 "비상계엄이면 군인을 투입해도 되는 것 아닌가" "비상계엄 상황에서 군을 사용하는 건 대통령 권한이지, 내란이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갑자기 주제가 '비상계엄이 위법했는가'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나 행정 및 사법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만 선포할 수 있다. 2024년 12월이 이 중에 해당되는 게 있나"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이 정부 관료들을 다 탄핵했고, 간첩법 개정안에도 반대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문을 보여줬습니다. A는 다행히 헌법재판소의 재판 효력은 인정하는, 그나마 민주적인 '윤 어게인'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는 정부 관료 탄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전략) 이 사건 계엄 선포 전 위 22건의 탄핵소추안 중 6건은 철회됐고, 3건은 폐기됐다. 5건은 본회의에서 가결돼 탄핵소추가 이뤄졌으나, 그 중 3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이미 기각결정을 선고한 상태였다. 이처럼 탄핵소추안이 이미 철회 또는 폐기됐거나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이 선고된 경우, 당초의 탄핵소추안 발의 또는 탄핵소추의결이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의 국가의 존립이나 헌법질서, 사회질서,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탄핵소추를 추진하거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더라도 실제로 탄핵소추가 이루어지는지 여부는 국회의 심의·의결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탄핵소추를 추진하고 있다거나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국회에서 심사 중이라는 이유로 중대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탄핵소추가 의결돼 피소추자의 권한행사가 정지됨으로써 권한대행자 등이 피소추자의 권한을 탄핵소추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행사할 것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하게 됐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에는 검사 1인 및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절차만이 진행 중이었는데, 검사 1인 및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권한행사가 정지된 상황을 두고 국가의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후략)
간첩법 개정안 등의 법률 반대와 입법권 남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략) 그러나 법률안은 국회에서의 심의·의결, 대통령의 법률안 공포 등의 절차를 거쳐 법률로서 확정돼야 그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므로(헌법 제53조),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어떠한 법률안을 발의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거나, 발의해 국회에서 심사 중이라는 이유로 중대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피청구인이 언급하고 있는 법률안 중에는 이미 제21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인하여 폐기된 법률안도 포함돼 있는데, 이미 폐기된 법률안이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의 국가의 존립이나 헌법질서, 사회질서,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중략) 피청구인은 더불어민주당이 간첩죄의 처벌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과 민생 및 경제활성화 등을 위한 정부 추진 법안에 대해 반대했다는 점도 이 사건 계엄 선포의 사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외국 등을 위하여 간첩한 자도 처벌하는 등으로 간첩죄의 처벌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들을 발의했고, 2024. 11. 13.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는 간첩죄의 처벌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여당 및 야당 소속 국회의원 발의 형법 개정안들을 반영한 대안을 제안하기로 심사됐으므로, 더불어민주당이 위와 같은 형법 개정안에 반대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후략)
A는 본인의 주장이 전부 반박되자 "민주당이 예산도 없애서 나라를 망하게 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는데, 헌법재판소는 예산안 관련한 내용까지 결정문에 담아 줬습니다. 역시 대단합니다.
2025년도 예산안은 정부가 2025년에 지출할 예산에 관한 것이므로, 2024년 예산을 집행하고 있었던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에는 국가의 존립이나 헌법질서, 사회질서,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에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비상계엄은 불법입니다. 이제 A는 '계엄은 내란'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장족의 발전입니다.
"뉴스는 인스타그램으로... 네이버는 차단돼 못 봐"

▲인스타그램 '자유대학' 게시물들. 왜곡된 이재명 대통령 발언이나, 중국인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 자유대학 인스타그램
왜 그러한 사상에 빠지게 됐는지도 궁금했는데, A는 주로 뉴스를 인스타그램에서 접한다고 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레거시 미디어는 안 본다는 거죠. 부모님께서 네이버 애플리케이션 접근을 막아 놓아서, 그 정보가 옳은지 검색하는 것도 어렵다고 합니다. 악순환입니다. 앞으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한 혐오나 극단적 게시물은 팩트체크 해 보겠다고 하는데, 인스타그램 뉴스의 홍수 속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래집단 사이에서 가짜뉴스들이 확산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A가 잠시 보여준 인스타그램 단체 채팅방을 훑어보니 얼핏 봐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게시물이나 이재명 대통령의 말들을 짜깁기해서 혐중이나 '윤 어게인' 사상을 부추기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것 중 하나가 기억 납니다. 올해
한 양궁선수가 SNS에 "중국이 대선을 조작했다"는 게시글을 올렸다가 징계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 발언과 사진을 짜깁기해 "양궁선수가 '멸공'이라고만 올렸는데 이재명이 구속시켰다"는 가짜뉴스로 둔갑시킨 콘텐츠를 A와 친구들이 실제로 믿고 있었습니다. '양궁선수 멸공'이라는 키워드로만 뉴스를 검색해봐도 사실관계를 알 수 있는데, 인스타그램 안에서 극우 세력이 만들어낸 정보들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인 가짜뉴스들은 국가에서 제재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청소년들에게 가짜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AI 시대가 더 가속화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짜뉴스들은 더 정교해지고 양적으로도 늘어날 텐데, 걱정입니다. 이러다 정말 우리 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빠질 수 있습니다.
걱정은 뒤로 하고, 결국 아무리 '윤 어게인'이라도 소통의 장에 나와서 대화한다면 극우 사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게 증명됐습니다. 논점을 이리저리 바꿔서 대화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략 3시간 정도 떠든 것 같네요.
합리적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일단 극우 청소년들이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할 것이고, 경청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이 바뀐 청소년들이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다시 가짜 극우 정보를 믿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무작정 막기보다는 '헷갈리는 정보는 주변 믿을 만한 어른들께 확인하기'나 '사실이 아닌 정보라고 판단되면 공유하지 않기' 정도를 알려야 하겠습니다.
'윤 어게인'은 단순히 '일베'를 넘어선 문제입니다. 일부 청소년들만 추종하는 '일베'와 달리, 인스타그램 등 보편적인 SNS를 통해 일반적인 청소년들에게도 또래집단 사이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가짜뉴스를 실효성 있게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기초적인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학교는 그런 교육을 무작정 '정치'라며, 학부모 민원을 걱정하며 미뤄 왔습니다. 지금까지 미룬 것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러다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3시간의 대화에서 엿본 희망
윤석열은 단순히 몇 시간 동안 혼란을 일으킨 게 아닙니다. 1년 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분열과 극단화를 일으켰습니다. 복구에는 1년이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지난해 12월 3일의 내란 아닙니까. 애꿏은 시민들이, 청소년들이, 교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절망하기는 이릅니다. A와의 3시간에서 희망이 보였습니다. 극우의 벽은 '키보드 배틀'이 아니라 마주앉아 나누는 밥 한 끼와 차분한 대화로 깨졌습니다. A가 스스로 모순을 깨닫고 '계엄은 내란'임을 인정했던 그때, 우리 사회의 면역 체계가 작동했습니다.
회복은 더딜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서로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니까요.
문성호 <토끼풀> 편집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토끼풀에도 실립니다. 토끼풀은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