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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이자 한국 정치사에서 독보적인 궤적을 남긴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1월 25일 별세한 가운데, 1970년대 유신 반대 민주화운동의 본산이었던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동지회가 공식 추도사를 발표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민청학련동지회(상임대표 강창일)는 26일 발표한 추도사를 통해 "베트남에서 들려온 이해찬 동지의 비보에 무엇이라고 할 말도 나오지 않는 황망한 심정"이라며 "동지는 사실상 공무 수행 중 과로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청학련동지회 민청학련동지회 전현직 대표들
민청학련동지회민청학련동지회 전현직 대표들 ⓒ 강창일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제공

이어 "우리는 동지를 지치지 않고 꺾이지 않는 불사조라고 믿어왔다"며 "그 믿음 속에 동지의 고단함을 살피지 못한 우리의 타성을 통렬하게 뉘우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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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동지회에 따르면, 이해찬 전 총리는 1974년 4월 3일 서울대 문리대 교정이 사복경찰로 가득 찬 상황에서도 단신으로 유신체제 타도를 외치며 선언문을 살포하다 체포됐다. 동지회는 "그날의 자기희생적 실천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1975년 석방 이후에도 동지는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감시 속에서 번역, 서점, 출판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그의 실천은 유신정권 붕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고인은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광주항쟁과 관련된 내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1982년 말 석방된 뒤에는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나서며,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청학련동지회는 이해찬 전 총리에 대해 "정치를 통한 민주화의 길을 선택해,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난제를 회피하지 않은 지사적 정치인의 전범"이라며 "당대 최고의 책사이자 냉철한 판단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7선 국회의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서울시 부시장, 민주평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청렴하고 유능한 공직자의 상을 제시했다는 점 역시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지회는 추도사 말미에서 "윤리의식과 실행 능력을 갖추고 민주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평생을 바친 동지의 삶은 그 자체로 민주화운동사이며, 의회민주주의의 역사였다"며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이후 단 한숨도 쉬지 않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동지에게 이제 '편히 쉬시오'라는 말씀만 드린다"고 추모했다.

이어 "남은 동지들과 후진을 믿고, 이제는 진짜 평안한 휴식을 누리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운동회 민청학련동지회 회원들이 운동회를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운동회민청학련동지회 회원들이 운동회를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 강창일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제공

이번 추도사는 강창일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와 최철·임상우 공동대표의 공동명의로 발표됐다.

한편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박정희 유신정권이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대표적인 공안 사건으로,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해 강창일·장영달·이철 전 의원, 정동영 통일부장관, 이학영 국회부의장 등 다수의 민주화 인사들이 연루됐다.

강창일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강창일 전 주일대사
강창일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강창일 전 주일대사 ⓒ 강창일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제공

다음은 민청학련동지회의 이해찬 전 총리에 대한 추도사 전문이다.

추도사

"이해찬 동지, 이제 편히 쉬시오"

민청학련동지회 회원 일동은 베트남에서 들려온 이해찬 동지의 비보를 듣고 무엇이라고 할 말도 나오지 않는 황망한 심정에 빠졌습니다. 이동지는 사실상 공무 수행 중에 과로사한 것입니다. 동지를 지치지 않고 꺾이지 않는 불사조라고 믿고 있었던 우리의 타성을 통렬하게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동지는 언제나 부지런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몸 사리지 않고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내는 선봉장이었습니다. 1974년 4월 3일, 이미 사복 경찰이 서울대 문리대 교정을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단신으로 선언문을 살포하며 유신 타도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던 동지의 자기희생적 실천을 민청학련 동지회 회원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1975년 2월 15일에 석방된 다음에도 동지는 밤낮없는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감시에도 위축되지 않고 번역, 서점, 출판 등의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여 유신정권 붕괴에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지 본인은 1980년 5월에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광주항쟁과 관련된 내란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습니다. 1982년 연말에 석방된 동지는 청년 민주인사들과 같이 민통련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1987년 6월의 시민항쟁을 이끌어 내고 군부 정권을 퇴진시키는 과업을 선도하였습니다. 정치를 통한 민주화의 길을 선택한 동지는 현재까지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난제를 피하지 않고 해법을 찾아내는 지사적 정치인의 전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현실 정치의 기준으로 보아도 동지는 당대의 죄고의 책사이자, 탁월하고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습니다. 특히 7선 의원, 국무총리, 교육부장관, 서울시 부시장, 민주평통 부의장 등의 요직을 지내며 동지는 청렴하고 능력있는 공직자의 상을 제시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윤리의식과 실행 능력을 갖추고 민주화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전념한 동지의 삶은 그 자체가 민주화운동사이며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민청학련동지회는 1972년 10월 17일, 유신이 선포된 이래 지금까지 한숨도 쉬지않고 심신을 바쳐 조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동지에게 "이제 편히 쉬시오"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남은 동지들과 후진을 믿고 진짜 평안하게 휴식하시기 바랍니다.

2026년 1월 26일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강창일
공동대표 최철, 임상우


#강창일#민청학련동지회#상임대표#이해찬#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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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남 (kcn0822) 내방

저는 철도청 및 국가철도공단, UNESCAP 등에서 약 34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시간 나는대로 제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온 고창남이라 힙니다. 2022년 12월 정년퇴직후 시간이 남게 되니까 좀더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좀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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