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소고(故) 이해찬 전총리 빈소 ⓒ 고창남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늘 앞에 계실 분이었는데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검은 정장 차림의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영정 사진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분향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빈소에는 정계 인사뿐 아니라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정치인의 장례식이었지만, 현장은 '정치'보다 '삶'과 '기억'의 공간에 가까웠다.
고인은 베트남 출장 중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민주화운동 세대에게 이해찬은 단순한 전직 총리가 아니었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감옥과 거리, 교정과 국회를 넘나들며 민주주의를 몸으로 살아낸 '동지'이자 '선배'였다. 그래서인지 이날 빈소를 찾은 이들 중에는 단체 깃발이나 현수막 대신, 오래된 기억과 개인적 인연을 가슴에 품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오전부터 빈소를 찾은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동지회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동지회 회원들은 단체로 조문을 마친 뒤 장례식장 한켠에 모여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회색 머리가 성성한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짧은 인사만 나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그들 사이에 이미 충분히 흐르고 있는 듯했다. 민청련 동지회에서는 회원 33명이 단체로 조문하여 민주화 운동 단체들 중에는 가장 많이 조문에 참석했다.
민청련 동지회 백경진 회장은 "이해찬 선배는 늘 현실적이면서도 원칙을 놓치지 않았던 분"이라며 "투쟁의 최전선에서만이 아니라, 이후 제도 정치로 넘어가서도 민주화 세대가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는 한 정치인을 보내는 자리가 아니라, 한 시대를 함께 보낸 동지를 보내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민청학련 동지회에서는 이철 전 의원, 장영달 전 의원, 이학영 국회부의장, 임상우 공동대표 등이 조문에 참석했다. 또한 이창복 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의장, 한충목 진보연대 상임대표 등이 조문에 참석했다.
빈소 안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조화를 비롯해 각계에서 보낸 수많은 화환이 놓였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주로 나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유시민 작가 등은 하루 종일 빈소를 지키며 사실상 상주 역할을 했다. 유시민 작가는 붉어진 눈가를 감추지 못한 채 조문객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
공식 조문이 시작된 오후 12시 30분 이후에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늘었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자연스럽게 줄이 형성됐다. 검은 코트를 입은 노년의 시민, 손에 국화를 든 젊은 부부, 퇴근길에 들렀다는 직장인까지 조문객의 모습은 다양했다. 이들은 대부분 "뉴스를 보고 왔다", "그냥 와야 할 것 같았다"고 짧게 말하며 빈소로 향했다.
오전에 빈소를 찾은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해찬 전 총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산 증인이자, 민주정부를 만들어온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분"이라며 "힘들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그 고통을 치유하려 했던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라고 추모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빈소 안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빈소에 도착하자 장례식장 안팎의 공기는 한층 더 숙연해졌다. 문 전 대통령 내외는 약 45분간 빈소에 머물며 유가족과 상주들을 위로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문 전 대통령의 표정에서는 깊은 상실감이 읽혔다.
오후 6시가 넘어서는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빈소에 도착하여 조문을 했다. 이 대통령 부부는 헌화와 분향을 한 뒤 묵념했으며, 조문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잠시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해찬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무궁화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등 각 분야에서 국가와 국민에 현저한 공적을 세운 인물에게 수여되는 국민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이다. 이 대통령은 훈장을 직접 전달하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우상호 전 의원은 "생의 마지막까지 공적 역할을 하다 떠난 것이 이해찬답다"고 했고,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별 같은 분"이라며 "역대 민주정부를 창출하는 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조문을 마친 뒤 "정치적 멘토였다"며 "얼마 전 뵈었을 때 식사 한 번 하자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민청련 동지회조문을 끝내고 뒤풀이에서 기념촬영 하는 민청련 동지회 회원들 ⓒ 고창남
이날 조문 명단에는 수많은 정치인의 이름이 올랐지만, 빈소의 분위기를 채운 것은 숫자가 아니라 기억이었다. 누군가는 고인이 교사 시절 보여준 엄격함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국회의원 시절 밤샘 토론을 회상했다. 또 다른 이는 "늘 욕도 많이 먹었지만, 결국 책임지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고 이해찬 전 총리의 장례는 오는 31일까지 기관장·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상임 장례위원장은 김민석 국무총리가, 시민사회 및 정당 상임공동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맡았다. 장례 기간 동안 일반 시민들의 조문도 계속될 예정이다.
고 이해찬 전 총리의 영결식은 1월 31일 오전 9시에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거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