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와 각 삶의 필요를 지탱하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노동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일터는 일상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일터와 노동이 여러 매체를 통해 과잉 대표되는 동안, 비가시화된 다른 노동은 어린 시절 텔레비전 방송 시작 전 틀어줬던 애국가 화면에서 스쳐가는 것이 전부일 정도다. 평소 본 적 없고 떠올려 본 적도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는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내 일상과 거리가 먼 것에 무지하고 무심한 것은 때로 아무런 흠이 되지 않기도 한다.
노동법을 공부한다고 해서 노동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 사건을 수행하는 변호사가 되었다고 갑자기 노동과 일터를 이해하게 되지도 않았다. 법리와 현장은 엄연히 별개였다. 현장의 구체적 실태를 모른 채 법을 적용하여 엉뚱한 결론에 이른 사례들을 충분히 보고 들었다. 여전히 새로운 사안 앞에서 긴장하며 살피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법과 제도를 다루는 법조인과 정치인, 정부 관료라고 해서 노동의 구체적 맥락과 일터의 구조적 상황을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을 이미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무능과 부조리가 펼쳐진다.
모르는 것을 이미 안다고 착각하는 관료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고 할 수 있나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계속되는 죽음을 두고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이하 '협의체')' 회의 초창기에 어느 경제 부처 관료가 한 말이다. 위험의 외주화가 중대재해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듯 말이다.
당시 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사망한 고 김용균의 변호사로서 형사소송 변론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의체에 참가하고 있었다. 김용균은 입사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은 하청업체 소속 청년 노동자였기 때문에, 위험의 외주화의 야만적인 단면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우리가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서 책임이 없다"는 원청과 "모든 기계, 설비가 원청의 것이어서 우리가 안전조치를 할 수 없다"는 하청이 제각기 책임을 부인했고 수년간 이어진 재판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무리해서 하다가 혼자 죽은 사람처럼 고인을 취급하는 원·하청 피고인 측 변론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었다.
특히 원청은 공항에서 수하물 옮길 때도 사용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뭐가 위험하겠냐며, 발전소는 하나도 위험하지 않은 곳인데 우리 직원이 아닌 고인이 왜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방청석의 유족과 동료들을 무너뜨렸다. 그 이후로도 발전소에서는 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작년 6월에는 김용균과 매우 유사한 원인으로 2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김충현이 사망했다.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국무총리 산하에 정부, 노동계, 전문가 위원들로 협의체를 꾸렸지만, 언론 카메라가 집중되던 시기가 지나자 일부 정부 위원들의 무지하고 무심한 태도가 논의를 힘겹게 했다.

▲2026.4.23 한전KPS 비정규직 직접고용 노사전 협의체 구성 지연 규탄 - 이재명 정부 합의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충현대책위
통상 '위험의 외주화'란 위험한 업무가 외부로 이전된 것을 말하는데 현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청업체로 외부화된 노동조건에서 안전과 책임의 공백이 크게 발생하며, 그 결과 위험이 더 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위험한 업무를, 더 위험하게 수행하다가, 더 많이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다. 기업이 낮은 비용으로 위험하고 유해한 업무들을 외부에 전가하는 위험의 외주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같이 현저히 부족하지만 조금은 진전된 입법적 조치가 이어졌다.
간접고용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산재 경험률과 산재 인정률이 모두 높다는 등의 관련 연구들도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최근 법원은 고 김충현의 원청인 한전케이피에스가 비용을 절감하고 위험을 외주화하기 위하여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인 한전케이피에스가 불법적으로 위험을 외주화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는 점을 쉬이 수긍하지 못하던,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던 관료의 표정 없는 얼굴을 잊을 수 없다. 현장에 매달린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가 누군가에겐 얼마나 멀고 무관한 문제일 수 있는지 절감한 순간이었다.
국무회의 생중계가 쇼에 불과한 게 아니라면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공정 사회를 만들고 불법 하도급과 위험의 외주화 근절하겠다"고 약속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로도 위험의 외주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책임은 안 지고 이익은 보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의 해결 의지를 반복해서 밝혀 왔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지정 및 관리·감독하는 공공기관은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적으로 위험을 떠안아 발생한 사망사고의 대책으로 해당 공정 전체를 아예 눈에 띄지 않는 발전소 밖 외주화를 내놓았다.
정부가 꾸린 협의체에 참석한 부처 공무원은 '위험의 외주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급기야 "직접 고용하면 사고 안 난다고 보장할 수 있냐"면서 언성을 높인다. 생중계되는 국무회의 속 대통령의 모습이 한 편의 쇼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전혀 딴판의 현실이다.
지난 1월 협의체는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정부, 노동계, 전문가 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2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한전케이피에스 직접 고용을 합의하였다. 지난한 논의 끝에 하청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고용구조를 바꾸는 것이 공정한 사회라는 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해당 합의 이행을 위한 기구가 구성조차 되지 않고 있고,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공공부문에서조차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겠다고 정부가 직접 참여하여 만든 합의안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예방 중심의 정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말을 신뢰할 시장이 있을까.
사라지는 노동으로서 광산 노동에 대해 기록한 책 <쇳돌>에서 저자 이라영은 "그 자리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있지만 노동자들은 화자의 시선에서 사라진다"면서 역사 속에서 목소리를 묵살당하며 자본에 잡아먹히는 노동자들에 대해 말한다. 김용균이 사망한 2018년, 그리고 김충현이 사망한 2025년, 그때 잠시 떠들썩하게 여러 권력을 가진 이들이 해결 의지를 카메라 앞에서 표명했다. 그들의 시선이 거둬진 후 김용균과 김충현의 동료들은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죽은 동료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요구를 하며 그대로 일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다혜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법률사무소 고른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