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전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천 신청에 따른 여파가 국민의힘에 밀어 닥쳤다.
재선에 도전하는 김태흠 충남지사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감출 길 없다"며 탈당 가능성까지 내비치자, 박덕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이야기하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사실상 맞받았다.
정 전 실장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의회주의를, 우리 진영을 바로 세우겠다"면서 충남 공주·부여·청양 보궐선거 공천 신청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정 전 실장의 공천과 복당 신청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던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회의는 2일 돌연 취소됐다. 당 일각에서는 "불 꺼진 집에 다시 불을 지르는 격"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고, 지역 시민단체들은 "몰염치한 행보"라고 개탄하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국민의힘에 밀어닥친 '억장 쇼크'

▲2025년 2월 6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날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새처럼 지냈습니다. 불비불명(不飛不鳴), 몰아치는 시련 속에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중략) 오늘 다시 시작합니다. 한 발 한 발 폭풍우 속을 걸어가겠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국회에 들어가면 의회주의를, 그리고 우리 진영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지난 1일 정 전 비서실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계엄 선포는 제게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제게 도의적 정치적 책임이 있다면 빗겨 서지 않겠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비상 상황에서 당과 보수의 재건을 위한 제 마지막 책무를 외면할 수 없었다"는 글로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다음 날 국민의힘이 중앙당 윤리위원회를 열어 정 전 비서실장의 복당 문제를 심사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충남 공주·부여·청양 보궐선거 공천은 앞서 보류된 상태였다. 정 전 실장을 포함해 7명이 공천을 신청한 상태로 1일 박덕흠 공관위원장은 "정 전 실장에 대한 윤리위원회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정 전 실장 면접도 7일 최종 결정 전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상태였다.
이에 대해 김태흠 충남지사가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지사는 "작금에 진행되고 있는 정진석 전 비서실장의 공천 과정을 지켜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감출 길 없다"며 "국민의힘 지도부는 보편성과 상식선에서 판단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지사는 "자숙과 반성 없이 국민적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면 떠날 수밖에 없다"면서 "부디 불행한 사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조은희 의원 "불 꺼진 집에 다시 불 지르는 격"

▲목 축이는 국민의힘 박덕흠 공관위원장지난 4월 3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인 박덕흠 의원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관위 첫 회의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는 '절윤'을 선언했습니다. 전 의원의 이름으로, 국민께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 맹세했습니다. 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번 공천 결과는 무엇입니까? 출마 의사 표명조차 자제해야 할 인물들이 공천 심사 테이블에 오르고 공천되었습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의 비판도 강도가 높았다. 전날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공천된 상황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정 전 실장에 대한 공천 반대 의사도 공개적으로 밝힌 글이었다. 2일 조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제목은 "불 꺼진 집에 다시 불을 지르는 격, 윤어게인 공천은 재고해야 합니다"였다.
이처럼 당내에서 정 전 실장 공천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자 박덕흠 공관위원장이 3일 수습에 나섰다. 박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과 당원들의 생각에 역행하는 행위는 지도부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김 지사의 전날 글에 있던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두 차례나 자신도 쓰면서 강하게 반박했다.
"서로 생각이 다를지라도 조금 시간을 갖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보듬으면서 해결하는 것이 정당 정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이야기하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혹시라도 공천 결과가 국민과 우리 당의 기대와 다르게 나온다면, 그때 이야기를 하십시오. 미리 예단하여 왈가왈부하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국민들 억장은 이미 무너졌다"

▲추경호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4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계엄 해제 표결 방해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하며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국민들 억장은 이미 무너졌다."
이와 같은 소식을 알리는 보도에 한 네이버 독자가 쓴 댓글이다. 이를 대변하듯 충남 지역 시민단체들은 정 전 실장 출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상태다.
지난 달 28일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는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내란 사태와 그에 따른 국정 혼란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라며 "그럼에도 자숙과 반성은커녕 최근 공주·부여·청양에서 공개 행보를 재개하며 이재명 정부 비난에 앞장서고,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이는 민주주의 회복과 대한민국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몰염치한 행보"라면서 "정 전 실장의 출마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다음 날인 4월 29일에는 충남 공주·부여·청양 시민들로 구성된 '(가칭)미래정치개혁시민연대'가 정 전 실장 출마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공주시 공산성 앞 광장에서 집회를 통해 특히 "온 가족이 국회에서 누린 세월만 무려 15선으로 반세기가 넘는 기간 특정 가문이 지역의 정치적 기회를 독점해왔다"고 비판했다. 정 전 실장 부친은 잘 알려진 대로 6선 국회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정석모씨다. 이들은 "국회는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는 출입처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송언석 "윤리위는 독립기구"
이같은 당내·외 여론에 대해 당 지도부는 아직 명확히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날 윤리위 연기가 '윤 어게인'에 대한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냐는 질문에 "미안하다. 윤리위는 독립기구로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릴게 없다"면서 "확인되면 별도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현재 정 전 실장은 2024년 4월 이완규 전 법제처장과 함상훈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될 당시 허위보고서를 만들었다는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당·내외 비판 여론까지 비등한 상태에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