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양문화유산의 역사는 충남 태안군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고려와 조선의 바닷길을 품었던 태안 앞바다는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수중 문화유산이 대거 발견되며 국내 최대 해양유물 발굴지로 자리매김했다.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고선박과 청자, 목간(木簡), 생활유물들은 한국 해상교역사와 해양 물류체계를 새롭게 규명한 세계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에 위치한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노을이 드리워진 전경 ⓒ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태안유물전시관
하지만 정작 국내 해양문화유산의 핵심 거점인 태안에는 독립 연구기관조차 없는 현실이다.
현재 태안에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산하 서해문화유산과와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조직상으로는 목포 본소 소속의 '1개 과'에 불과하다. 발굴과 보존, 연구, 전시 기능을 모두 수행하면서도 독립적 행정권과 조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다.
태안신문은 창간 36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해양문화유산의 중심지인 태안에 왜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가 반드시 신설돼야 하는지, 그 당위성과 기대효과를 집중 조명했다.
대한민국 해양유물 발굴의 중심, 태안
태안은 이미 대한민국 수중문화유산 발굴의 핵심 지역이다.
2007년부터 본격 발굴이 시작된 태안 마도 해역에서는 고려시대 선박과 수만 점에 이르는 유물이 잇따라 발견됐다. 특히 마도 1·2·3·4호선 발굴은 고려시대 조운 체계와 해상교역 연구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목간과 청자, 곡물, 생활도구 등은 단순 유물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삶과 경제 활동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 평가된다.
최근에도 태안 해역에서는 추가 고선박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며 정밀 발굴조사가 예정돼 있다. 이는 태안 앞바다가 여전히 살아있는 해양문화유산 보고(寶庫)임을 보여준다.
실제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태안 서해문화유산과는 충청·경기권 해양문화유산 발굴과 보존, 연구, 전시 업무를 총괄 수행하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태안은 단순한 지역 전시관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고고학의 핵심 현장"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태안해양유물전시관 인근에서 공사에 돌입한 개방형 수장고 조감도 ⓒ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태안유물전시관
"발굴은 태안에서, 행정은 목포에서"
문제는 조직 체계다.
현재 태안 서해문화유산과는 목포 본소와 왕복 580km 떨어진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동시간만 7시간이 넘는다.
하지만 태안은 이미 본소 수준의 기능을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
태안해양유물전시관과 해양유산보존센터, 건조처리연구동 등 총 12개 동 시설을 운영 중이며 부지 규모와 건축 면적은 오히려 목포 본소보다 더 크다.
특히 태안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진공 동결 건조기와 국내 최초 고선박 조습건조시설 등이 구축돼 있다. 대형 수중유산 보존 처리 역량만 놓고 보면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다.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복원 전시 중인 마도선 ⓒ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태안유물전시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와 계약, 주요 행정 절차는 여전히 목포 본소를 거쳐야 한다.
유물 발굴과 보존, 긴급 대응은 태안에서 이뤄지는데 행정은 원거리에서 처리되는 비효율 구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현장성과 신속성이 중요한 수중문화유산 특성상 독립 연구기관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 태안 신설 요구가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한 문화행정 차원을 넘어 지역 경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국가급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현재 태안에 운영 중인 서해문화유산과와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조직 규모에 비해 이미 상당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 연구소로 승격될 경우 인력과 예산, 시설 규모가 대폭 확대되면서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 역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특히 서해 중부권은 고선박 발견 밀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발굴 수요와 보존 처리 수요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인력과 조직 체계로는 한계가 크다.
실제로 태안 전시관 방문객은 매년 8~10%씩 증가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약 6만 명에 육박했다.
또한 2025~2028년 추진되는 대형 수중유산 개방형 수장고 사업까지 진행되면 업무량은 더 급증하게 된다.

▲2026년 태안 마도 해역 수준유산 조사 예정도 ⓒ 신문웅
연구인력·전문직 상주… "지역 소비 구조 자체 달라진다"
현재 태안 서해문화유산과는 제한된 인력으로 충청·경기권 해양문화유산 발굴과 보존, 연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로 승격될 경우 조직은 최소 3개 과 체계로 확대되고 ▲수중고고학 연구원 ▲보존과학자 ▲학예연구사 ▲전시기획 인력 ▲행정직 ▲시설관리 인력 등 전문인력이 대거 증원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에서는 최소 수십 명에서 최대 100명 안팎의 직접 상주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 숫자가 아니다.
국책 연구기관 특성상 이들 상당수가 석·박사급 연구인력과 전문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안정적 급여와 장기 근무가 가능한 국가기관 인력이 태안에 정착하게 되면 주거와 교육, 소비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전국 주요 혁신도시와 국책기관 이전 사례를 보면 공공기관 상주 인력은 단순 인구 증가 이상의 경제 효과를 만들어낸다.
직원 가족 이주와 지역 정착이 이어지고 음식점·카페·학원·병원·주거시설 등 생활밀착형 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관광객은 계절 영향을 많이 받지만 국책기관 인력은 연중 소비가 이뤄진다"며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 기반을 만드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발굴·보존 예산 수십억 원 지역 집행 효과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가 신설되면 국가 예산 집행 규모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수중문화유산 발굴은 일반 문화사업과 달리 선박과 잠수 장비, 보존 처리 장비, 정밀 조사 시스템 등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특히 태안 앞바다는 아직 조사되지 않은 해역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어 향후 지속적 발굴 사업이 예상된다.
여기에 개방형 수장고와 보존처리센터, 전시관 확충 사업까지 추진될 경우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 규모의 국비 사업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 건설 효과를 넘어 지역 업체 참여와 유지관리 예산, 장비 운영비 등으로 이어진다. 실제 해양문화유산 보존에는 특수 설비 유지와 항온·항습 시스템 운영, 보존 처리 재료 구입 등 지속적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연구소가 독립 기관으로 승격되면 단년도 사업이 아니라 국가 중장기 사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태안 지역 내 안정적 국비 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2026년 태안마도 해역 수중 발굴의 안전을 기원하는 개수제가 지난 12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 마도 분교에서 열렸다. ⓒ 신문웅
관광객 증가 효과… "체류형 관광도시로 전환 가능"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이미 전국 유일 수준의 해양문화유산 특화 전시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시설 규모와 콘텐츠만으로는 증가하는 관람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가 신설되고 개방형 수장고와 체험시설, 어린이 해양문화교육관, 국제교류센터 등이 추가 조성될 경우 태안은 단순 해수욕 관광지를 넘어 사계절 문화관광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학생 단체와 역사문화 체험 관광 수요 확대가 기대된다.
현재 태안 관광은 여름철 해수욕장 중심의 계절 편중 현상이 크다. 그러나 해양유산 관광은 날씨와 계절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전문가들은 "해양문화유산 관광은 숙박과 음식업, 지역상권 소비를 함께 늘리는 체류형 관광 효과가 크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국제 규모 해양문화 전시와 학술행사가 활성화될 경우 국내외 연구자와 관광객 유입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청년 일자리와 교육 효과도 기대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 신설은 청년층 유출 문제 해결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재 태안은 전문직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층 상당수가 외부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소가 신설되면 ▲문화재 보존 ▲전시 기획 ▲관광 콘텐츠 ▲교육 프로그램 ▲디지털 기록화 ▲문화해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일자리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또 지역 대학 및 교육기관과 연계한 학술 프로그램과 현장 실습도 가능해진다.
장기적으로는 해양고고학과 문화유산 보존 분야 전문인력 양성 기반까지 구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책기관 유치 효과… 지역경제 판 바꾼다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 신설은 단순 문화사업이 아니다.
국책기관 유치는 지역경제와 도시 위상을 바꾸는 핵심 동력이다.
연구인력과 공무원, 학예사, 보존과학자, 연구원 등 전문인력이 지역에 상주하게 되며 관련 학술행사와 국제세미나, 공동연구도 활성화된다.
이는 숙박과 음식업, 관광, 교육, 콘텐츠 산업까지 연쇄 효과를 유발한다.
특히 태안이 해양문화유산 중심도시로 자리잡게 되면 향후 해양고고학 대학원과 전문인력 양성기관, 국제교류센터 유치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중국과 일본,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도 이미 국가 차원의 수중고고학 연구기관 확대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차원의 수중문화유산 기지를 전국적으로 확장하며 국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 역시 문화청 산하 전문 연구기관 설립을 추진 중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세계적 발굴 성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서해 핵심 현장인 태안에 독립 연구기관조차 없는 상황이다.
"태안 경제 체질 바꾸는 국가기관"
지역사회에서는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를 단순 문화기관이 아니라 태안 경제 체질을 바꾸는 전략기관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석탄화력발전 축소와 인구 감소, 관광산업 편중이라는 지역 구조 속에서 국가기관 유치는 가장 안정적 미래 투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관광·문화·교육·연구 기능이 함께 결합된 국책기관은 단순 공장형 산업보다 지속성과 파급력이 훨씬 크다는 평가다.
연구소 승격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한국 전 태안문화원장은 "태안은 대한민국 해양유산의 중심지인데 정작 국가기관 기능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며 "이제는 정부가 발굴 현장 보존 원칙에 따라 태안을 대한민국 해양문화 수도로 육성해야 한다."고 정치권의 관심도 촉구하고 있다.
지방선거 핵심 공약 돼야
지역사회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 태안 신설'을 핵심 공약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 지역 현안이 아니라 국가 해양문화 정책과 직결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태안군과 충남도, 정치권이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조직 승격과 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단순 건물 신설 수준이 아니라 ▲독립 연구기관 승격 ▲대형 개방형 수장고 확충 ▲국제교류 기능 강화 ▲교육·체험시설 확대 ▲전문인력 증원까지 포함한 종합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태안을 대한민국 해양문화 수도로"
태안은 이미 대한민국 해양문화유산의 중심지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결단이다.
발굴 현장은 태안인데 행정과 정책 중심은 다른 지역에 머무는 현재 구조로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립서해해양유산연구소 신설은 단순 조직 개편이 아니다.
대한민국 바닷속 역사를 가장 잘 간직한 도시 태안을 국가 해양문화유산의 중심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해양문화유산의 심장이 뛰는 곳이 태안이라면, 왜 국가 연구기관의 중심 역시 태안이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는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