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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의 삼천사 전경 북한산 자락의 정기를 이어받아 불심이 깊다는 삼천사
'부처님 오신 날'의 삼천사 전경북한산 자락의 정기를 이어받아 불심이 깊다는 삼천사 ⓒ 윤태정

거리마다 오색 등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도심의 빌딩 숲에도, 전국 각지의 깊은 산속에도 저마다 다채로운 빛을 밝혔던 연등. '부처님 오신 날'을 한마음으로 기렸을 터이다.

며칠 전, 그 축제의 날을 위해 우리 가족도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삼천사'로 향했다. 이 절은 우리 가족이 해마다 찾아가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이면 우리는 늘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 엎드려 가족의 무병장수와 안녕을 기원하곤 했다.

특히 49재를 올리며 아버지와 긴 이별을 고했던 곳이 바로 삼천사다. 우리 가족의 가슴 한구석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징적인 의미로 남아 있는 절이다. 당시 우리는 일주일마다 절을 찾아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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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부디 극락왕생하시기를.'
'극락 세계에 당도하시거든 아무 시름 없이 잘 지내시기를.'

올 '부처님 오신 날'에도 어김없이 92세의 엄마를 앞장 세웠다. 엄마는 젊어서부터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 옛날에는 북한산 꼭대기에 있는 '승가사'라는 절에 다니셨다. 산 입구에서 봉고차로 절까지 신도들을 태워 나르고 데려다 주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토록 높고 가파른 곳에 있는 절을 어떻게 자주 다니셨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도 엄마는 천수경이나 반야심경, 영가문을 책도 없이 줄줄 외운다. 평생을 욕심 없이 살아온 엄마의 마음 씀씀이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문득 부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말에서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인간을 만드는 철학이자 깊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함께 간 삼천사

요즘 들어 천수경을 부쩍 자주 듣는 엄마는 눈을 뜨는 순간 유튜브부터 틀어놓는다. 천수경으로 하루를 열어 스님의 독송을 듣는다. 물처럼 흘러가 버리는 하루를 다시 천수경으로 마감하곤 한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그저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엄마. 가끔 우리에게 넌지시 부탁을 건넬 때도 있다.

"내가 가거든 눈물 흘리지 말고, 곁에서 천수경을 틀어다오."

죽음에 대한 말씀을 꺼내면서 걱정도 한결 더 늘었다.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 담긴 서글픔에 가슴이 아려오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잠자듯 조용히 눈을 감아야 할 텐데.'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요양원 신세는 지지 않아야 할 텐데.'

엄마는 살던 내 집에서 조용히 떠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늘 부처님께 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그 '죽음'이라는 단어를, 아예 멀찌감치 밀쳐버렸다.

오색 연등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연등
오색 연등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연등 ⓒ 윤태정

삼천사로 올라가는 길은 아침부터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우리는 절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뙤약볕 아래 서서 온종일 질서 유지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봉사자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저분들의 수고로움 위로 부처님의 자비가 눈부시게 비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이윽고 도량에 들어서니 웅장하게 장식된 탑이 우리를 반겼다. 아버지의 49재를 마치던 날, 우리 가족은 슬픔을 추스르며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탑 앞에는 '왼쪽으로 세 번 돌며 발원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 같은 소시민의 기도 제목이야 늘 소박하기 마련이다.

탑돌이를 마치고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부처님의 법구를 전시해 놓은 곳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씀들이 가슴을 쿵쿵 울렸다. 그중에서도 법구경에 나오는 한 대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작은 선행도 무시하지 말라. 작은 선행이 쌓여 큰 공덕이 된다.'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말씀이었다. 우리는 늘 거대하고 눈에 띄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겨,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들을 하찮게 여길 때가 많다. 나부터라도 작은 공덕이라며 은근슬쩍 가볍게 넘겨버릴 때가 있지 않던가. 아무리 위대한 여정일지라도 첫걸음부터 시작된다. 사소한 공덕부터 차근차근 쌓아야 비로소 큰 공덕에 이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부처님 말씀 전시장 '법구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을 전시해 놓아 중생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마음에 울림을 줌
부처님 말씀 전시장'법구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을 전시해 놓아 중생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마음에 울림을 줌 ⓒ 윤태정

대웅전으로 들어가 부처님 앞에 섰다. 늘 올리던 가족의 '건강'과 '화목'이라는 일상 소원에, 살기 팍팍해진 요즘의 세태를 반영한 기도 제목 하나를 얹었다. 이곳 도량을 찾은 모든 신도와, 몸은 오지 못했어도 마음으로 부처를 믿는 세상의 모든 이들한테 '평온'이 오기를 기도했다.

절에서 내가 빈 것

'더는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지 말고, 다 함께 뭉쳐 잘사는 사회가 되게 해주서.'
'제발 이 땅에 전쟁과 싸움이 사라지고, 모든 중생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공양간에는 점심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부처님 오신 날의 절 밥은 대개 소박한 비빔밥이다.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들의 분주한 손길이 없다면 식판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수많은 중생의 한 끼를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씻고 썰며 준비했을까. 밥과 국을 푸고 떡을 나누어주는 모습 자체가 거대한 공덕의 실천이었다. 자비로움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참으로 위대한 봉사로 보였다.

한쪽에서는 연꽃 만들기와 염주 만들기 체험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염주 만들기 코너를 지나, 어르신들이 진지하게 풀칠을 하는 연꽃 만들기 자리로 갔다. 오색 주름 종이를 꽃잎 모양으로 잘라 놓은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종이컵에 꽃잎을 한 장 한 장 붙이며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가슴에서 불심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잡념을 떨치고 오직 손끝에만 몰입하는 순간, 번뇌가 사라지고 마음이 정화되는 바로 그 느낌. 점점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면 고요한 시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장미꽃 속에 들어간 노란 연꽃 각양각색이라도 두루두루 세상과 잘 어울려 지내라는 마음으로 장미꽃 속에 노란 연꽃을 올려놓음
장미꽃 속에 들어간 노란 연꽃각양각색이라도 두루두루 세상과 잘 어울려 지내라는 마음으로 장미꽃 속에 노란 연꽃을 올려놓음 ⓒ 윤태정

그때 마침 옆자리에 아기를 안고 있던 한 할머니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품 안의 아이가 갑자기 재채기하며 콧물을 주르륵 흘린 것이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휴지를 찾았지만, 다들 연꽃을 만드느라 여념 없었다. 나 역시 손에 풀이 잔뜩 묻어 난감했다. 그때 방금 읽은 법구경 말씀이 머릿속을 스쳤다.

'작은 선행을 무시하지 말라.'

작업을 잠시 멈추고 얼른 가방 속에서 휴지와 손수건을 꺼내 아주머니께 건넸다. 아주머니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비록 티끌처럼 작은 선행일지라도, 오늘의 이 마음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금세 풍성한 노란 연꽃을 완성했다.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보여 주며 빙긋 웃었더니 남편이 엄지를 척 세웠다. 우리는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절을 나섰다. 내가 만든 노란색 연꽃 위로 햇살 한 줌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집으로 온 연꽃 우리 집으로 데려온 노란 연꽃이 집안을 환하게 밝혀준다
집으로 온 연꽃우리 집으로 데려온 노란 연꽃이 집안을 환하게 밝혀준다 ⓒ 윤태정

#부처님오신날#부처님#자비#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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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흐뭇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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