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21일 오후 주재한 제1차 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기존 치료법으로 손을 쓰기 어려웠던 중대·희귀 질환 환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 '원정 치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린다. 정부는 무릎골관절염, 만성통증, 혈액암 등 환자 수요가 높은 질환을 중심으로 직접 임상 연구를 추진하고, 이후 신속히 국내 치료로 전환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21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정은경 장관과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주재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정책위원회를 열고 '제2차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기본계획(2026~2030)'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첨단재생의료실시기관 사후관리 강화 방안과 규제 합리화 방안도 함께 논의됐지만, 정책의 중심은 앞으로 5년간 첨단재생바이오 분야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맞춰졌다.
이번 기본계획은 제도 기반 구축에 초점을 맞췄던 1차 계획과 달리 환자가 실제 치료 성과를 체감하고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환자 접근성 확대 ▲과학적 규제 합리화 및 안전관리 강화 ▲기술·산업 경쟁력 강화 등 3대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해외 원정 가던 '줄기세포·면역세포' 치료, 국내 공적 관리망 안으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21일 오후 주재한 제1차 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가장 큰 변화는 해외 원정 치료를 국내 치료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부 환자들은 줄기세포 치료 등을 받기 위해 일본이나 동남아 등 해외 의료기관을 찾았다. 하지만 치료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거나 안전관리 체계가 미흡해 고액의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정부는 앞으로 무릎골관절염과 난치성 만성통증, 혈액암, 재발성 교모세포종 등 해외 원정 치료 수요가 높은 4개 질환을 대상으로 국가 주도의 다기관 임상연구를 추진한다.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한 뒤 치료계획 심의를 거쳐 국내에서도 정식 치료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극희귀질환에 대해서는 플랫폼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치료 개발 모델도 검토하기로 했다.
연구개발 지원도 대폭 확대된다. 연구자들이 우수한 세포처리시설을 공동 활용해 임상 시료를 제작하고 세포처리 공정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양질의 원료세포 공급체계도 구축한다. 중대·희귀·난치질환 중심의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임상연구 및 치료 데이터를 표준화해 활용하는 기반도 마련한다.
환자 지원 역시 강화된다. 정부는 첨단재생의료 포털을 통해 승인된 치료와 의료기관, 치료비용 등을 공개해 환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인다. 또 표준 동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충분한 설명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 기존 지원제도를 적극 안내하고, 치료 대안이 없는 중증·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공적 지원과 성과연계형 치료비 환급 모델도 검토한다.
규제 문턱도 대폭 낮아진다. 안전성을 전제로 합리적으로 손질한다. 안전성이 충분히 축적된 기술은 위험도를 낮춰 별도의 선행 임상연구 없이 치료계획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한다. 대표적으로 배양된 자가유래 면역세포 활용 기술은 중위험에서 저위험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생체 내 유전자치료 등 신기술도 제도 적용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심의체계도 바뀐다. 심의위원회 안에 분과위원회를 설치해 심의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높이고, 축적된 심의 사례를 토대로 임상연구와 치료계획 심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연구 초기 단계부터 맞춤형 사전 컨설팅도 제공해 연구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방침이다.

▲세포처리시설 공동 활용을 통한 임상연구 지원 ⓒ 보건복지부
안전관리 체계는 더 촘촘해진다. 세포처리시설은 앞으로 제대혈은행이나 인체세포 관리기관 등으로부터 원료세포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대신 품질관리와 현장점검을 강화한다. 이상반응 보고체계를 고도화하고 장기추적조사와 건강보험 데이터를 연계해 장기 안전성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치료 기회는 넓히되, 의료 현장의 난립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사후 통제 장치는 엄격해진다. 정부는 현재 223개소까지 늘어난 첨단재생의료실시기관(재생의료기관) 중 일부가 실제 연구나 치료는 하지 않으면서 지정 사실 자체를 병원 홍보나 영업 수단으로만 악용하는 폐단을 뿌리 뽑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정 후 1년 이내에 임상연구나 치료계획을 제출하지 않는 기관은 지정을 즉시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고, 3년 주기의 '지정갱신제'를 도입한다. 갱신 심사 시에는 인력·시설 요건뿐만 아니라 실제 연구·치료 실적, 법령 위반 여부 등을 종합 평가해 함량 미달 기관을 솎아낸다는 방침이다. 법 개정은 올해 하반기 추진된다.

▲재생의료기관 지정갱신제(안) ⓒ 보건복지부
2030년까지 승인 150건·K-바이오신약 5개 이상 창출
산업 경쟁력 확보도 주요 과제다. 정부는 바이오프린팅과 세포 기반 인공조직, 항노화, 유전자 편집·전달 기술 등 차세대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AI와 바이오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를 확대하기로 했다. 인공혈액과 이종장기 등 공익적 연구도 강화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로봇 기반 제조공정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품질관리 체계를 구축해 생산성을 높이고 제조비용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국산 소재·부품·장비 개발과 핵심 원료 공급 안정화, 벤처기업 사업화 지원, 전문인력 양성, 국제협력 확대도 함께 추진한다.
정부는 이번 기본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해 오는 2030년까지 누적 임상연구·치료계획 승인 150건 이상을 달성하고, 국내 기술로 개발된 첨단바이오의약품 5개 이상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연구 성과가 논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치료와 제품 개발,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2차 기본계획을 통해 환자가 국내에서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중대·희귀·난치질환 극복에 기여하는 실질적인 성과가 창출되기를 기대한다"며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와 치료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규제 합리화를 지속하는 한편, 환자가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전주기 안전관리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21일 오후 주재한 제1차 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