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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분위기에서 맞이한 새해도 보름 정도 지나고 있다. 시간적 흐름으로 따진다면 새해라고 해서 달라질 게 없는 일상의 연속일 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힘겹고 애달픈 과거보다는 뭔가 새롭고 희망찬 미래를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는 게 새해의 의미기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작년부터 준수와 아버지의 투병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해의 기분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원주 기독교 병원으로 오가며 생활하는 상황이 보름 정도 지난 새해에도 달라진 게 없다.

돌아보면 어려운 날들이지만 지금까지 버티고 견뎌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가족들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치병 척수 종양에 주눅들지 않고 다부지게 맞서 재활 운동에 열심인 준수. 그 고통스럽다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시는 아버지. 4개월의 긴 시간을 병실의 보조 침대에 의지해서 준수의 손발이 되어 간병을 한 아내. 항상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주시는 허리 굽은 어머니. 엄마도 형도 아빠도 없는 집에 혼자 남아 결석 한 번 없이 학교 잘 다녀준 광수. 모두 사랑의 힘으로 어려움을 함께 나눈 가족들이다.

가족의 사랑과 함께 또 하나의 힘이 바로 글쓰기였다. 힘에 부쳐 주저앉고 싶을 때면 늦은 밤도 마다 앉고 컴퓨터 앞에 앉아 준수의 투병일지를 쓰고 아버지의 병상 일지를 써나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긴 호흡으로 숨고르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오마이뉴스 기사로 등록하면서 삶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어엿하게 등단한 글쟁이가 아닌 자신의 감정 조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설픈 풋내기에 불과하지만 글을 쓰면서 행복을 느낀 지는 꽤나 오래된 중증 환자였다.

그런 풋내기에게 등단이란 까다로운 절차 없이 글을 쓸 기회를 준 인터넷 매체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그게 바로 오마이뉴스였다. 글에 대한 열정을 제외하면 사진에 대한 안목도 기사에 대한 식견도 전혀 없는 사람이 그나마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사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나무에서 메인 면 머리기사까지 두루두루 경험했다. 생나무가 되면 속이 상하고 메인 기사로 채택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썼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잉걸 기사에 머무를 때는 은근히 약이 오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얄팍한 생각이 일거에 뒤집히는 경험을 새해 벽두에 하게 되었다. 힘겨운 날들이지만 아들 녀석 준수가 새해가 되어 힘차게 일어서서 야물게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수야, 새해에는 힘차게 서서 옹골차게 살아주렴'이란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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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심정을 담아 쓴 글이었는데 나름의 생각과는 달리 잉걸 기사에 머물러 있었다. 새해의 소망과 부푼 희망을 담은 더 좋은 기사가 많았던 탓이리라. 그래도 아쉽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런데 잉걸에 머무른 그 기사의 조회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올라가더니 급기야는 '사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로 3일간이나 머무를 정도가 되었다. 정말 뜻밖의 결과였다. 개인적으로 70여 편의 글이 등록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물론 메인 면에 등록되었던 그 어떤 글보다 월등하게 많은 조회수였다.

ⓒ 이기원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재주도 없는 미련한 주제에 턱도 없는 욕심만 부린 지난 날이 부끄러웠다. 중요한 건 글의 등급과 원고료의 액수가 아니라 글의 내용과 독자들의 반응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나무에 불이 붙어 이글이글거리고 있는 상태를 잉걸이라고 했던가. 잉걸은 그래서 밑불이 될 수 있다. 잘 마른 나무나 잘게 쪼개진 장작을 넣으면 아궁이를 꽉 채우고도 남을 힘찬 불을 만들 수 있는 게 잉걸불이다.

채 마르지도 않은 청솔가지를 넣어도 힘겹게 힘겹게 연기를 내뿜다가 그 청솔가지에도 불을 붙여 함께 타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불이 바로 잉걸불인 것이다.

새해에는 작지만 꺼지지 않는 잉걸을 간직하기로 했다. 준수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잉걸이 되어 힘찬 걸음과 뜀박질이란 거대한 불꽃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 암세포와 싸우고 있는 아버지의 힘겨운 몸짓이 잉걸이 되어 가족들을 넉넉히 품어줄 수 있는 다부진 불꽃으로 되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을 간직하며 살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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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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