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신태영, 이응준이 잠든 제2장군 묘역에서 바라본 애국지사 묘역.
김종훈
신태영은 1959년 4월 8일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74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돼, 현재 국가공인 친일파 이응준과 함께 장군2묘역에 잠들어 있다. 장군2묘역은 국립서울현충원 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장소 중 하나다. 그 아래쪽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당한 애국지사 및 순국선열들의 묘역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묘역 사이의 거리는 직선거리 40m 이내다.
1993년 운명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비서장 조경한 지사가 "내가 죽거든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 지사의 유언은 실현되지 못했다. 조 지사가 사망했을 당시 효창공원은 용산구에서 관리하는 근린시설이었다. 김구, 윤봉길, 이봉창, 차리석 등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묻혀있지만 더는 무덤을 조성할 공간이 없었다. 조경한 지사는 국립묘지법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의 무덤과 친일파 묘역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75m에 불과하다.
묘비에 새겨진 극찬... 친일이력은 어디에?
국립서울현충원 신태영의 묘비에는 "개화의 선구자로 호국의 간성(干城/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시었다, 강직과 청렴으로 시대의 등불이었다"라고 새겨졌다.
"개화의 선구자로 호국의 간성이었고, 강직과 청렴으로 시대의 등불이었으며, 덕과 지용으로 국군을 세워 기르셨으니 뜻의 굳으심이 눈바람에 푸르른 청송이시오. 덕의 굳으심이 뭇 봉우리 우뚝한 태산이시라. 높은 뜻 해와 함께 이 땅 위에 머무르시고 빛난 달과 함께 어둠 속의 등불 되시어 조국을 길이길이 비치오소서. 비치오소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를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하면서 그 사유로 "신태영이 일본 육사 졸업 이래 30여 년간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시베리아 간섭전쟁에 참여하고, 중등학교 군사교육을 담당한 군사교관으로 재직했으며, 전시 후방 병참을 위한 용산정차장 사령관을 역임했고, 병력동원과 군사훈련을 주도한 해주 육군병사부 과장으로 복무했다"고 발표했다. 또 "신태영이 강연회 등에 참석해 조선인 병력동원 등 선전·선동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