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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10 18:17 수정 2020.07.10 18:17
 

일본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 ⓒ 연합/EPA

 
지난 5일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 후보가 재선됐다. 고이케 후보는 유효투표 수의 59.7%를 얻으며 2위보다 무려 45.9%포인트 앞섰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득표수를 합한 수보다 많은 표를 얻으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일본 지방선거는 4년에 한 번씩 열리지만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지자체장들에게도 4년의 임기가 주어지기 때문에 모든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지지 않는다. 이번에 도쿄도에서만 선거가 열린 것도 그 때문이다. 도쿄도는 2011년 4월 23일 선거 이후 연이은 도지사 중도 사퇴로 세 번의 보궐선거를 치렀다. 2016년 8월 2일 취임한 고이케 지사가 만기를 채운 후 9년 4개월 만에 예정된 일정에 선거를 치른 셈이다.

일본의 수도 도쿄의 위상은 독특하다. 엄밀히 말하면 도시라고 할 수 없고 우리나라의 특별시 위상에 해당하는 도(都)라는 독특한 행정구역이다. 일본의 지방광역단체는 그 외에 하나의 도(道:홋카이도), 두 개의 부(府:오사카, 교토)가 있고 나머지 43개의 현(県)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를 모두 합쳐 도도부현이라 부른다.

과거에는 내륙쪽의 도쿄부(府)와 해안의 도쿄시(市)가 맞닿아 따로 있던 것이 1943년 통합되면서 도쿄도(都)로 불리게 됐으며, 관습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도쿄는 과거 도쿄시에 해당하는 동쪽 지역을 말한다. 통합 후 4년 동안 도쿄도는 총리가 지명하는 관선 도장관이 관할하다 1947년 연합군 군정 하에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민선 도지사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극우 고이케 유리코 재선의 비결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이번에 연임에 성공함으로써 민선 21대 도지사가 됐다. 그에 앞서 8명의 민선 도지사 대부분은 3선 또는 4선까지 거치며 도정 업무를 수행했다. 최근 중도 사퇴한 3명을 제외하면 단임으로 임기를 마친 도쿄도지사는 13대 아오시마 유키오 단 한 명뿐이다. 3명의 중도 사임한 지사 가운데에도 이시하라 신타로는 4선까지 당선된 후 사퇴한 경우라서 결국 4년 임기를 마치지 못한 지사는 두 명뿐이다.

이렇듯 도쿄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인식이 강한 일본 정치문화와 함께 현직 지사가 재당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늘 유리한 입장에서 선거를 치렀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 결과를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현직에 있는 본인이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한 어지간한 대항 인물과 이슈로는 넘어뜨리기 어려운 것이 도쿄도지사고 이것은 일본의 일반 정치문화와 상통한다. 일본 국민 또는 도쿄 도민들 대부분이 극우 성향을 띠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베 총리나 자민당, 또는 고이케 지사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실제 고이케 지사의 4년 임기 성적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민당의 사실상 일당 지배,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과 함께, 초극우 인물 고이케의 도쿄도지사 재선은 변화의 절심함에 민감하지 않은 일본 국민들 특유의 관성적 정치 관념에서 기인한다. 정치에 대해 근본적으로 무관심하고 체제 순응적이며 익숙한 환경에 안주하기 좋아하는 일본인 특유의 관성 정치문화, 이것이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도 다시 한 번 나타난 것이다.

물론 22명이 난립한 후보군 리스트, 주요 야권 후보의 단일화 실패,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사회 분위기 등 이번 선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키워드는 몇 가지가 더 있다. 하지만 이번 결과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처럼 돌산을 움직이기보다 어려운 일본인들의 정적인 문화로 설명해야 한다.

그러한 일본인의 정서를 이번 선거 켐페인 동안 누구보다 잘 활용한 것이 또한 고이케 후보다. 물론 긍정적 의미는 아니다. 심지어 고이케의 선거 전략은 야비하기까지 하다.
 

일본 도쿄도 지사 선거전 ⓒ 연합/EPA

 
유리한 게임, 고이케의 야심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 도쿄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사회가 잔뜩 움츠려져 있다. 정상적이었다면 지금쯤 도쿄올림픽 축제 분위기 속에 젖어 있을 도쿄 아닌가. 하지만 모든 경제 지표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사회는 침체돼 있으며 바이러스의 확산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열도 남부의 홍수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고이케 후보는 현직 지사라는 유리한 고지에서 이러한 상황을 철저히 활용했다.

코로나19 감염 확대 방지의 이유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가두연설 등을 일절 실시하지 않고 온라인 선거로만 일관했다. 물론 야권 후보들도 마찬가지. 바이러스 확산 방지라는 명분이 있으니 야권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선거 기간 동안 발로 뛰며 자신을 알리고 바람을 일으켜야 할 인지도가 낮은 후보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고이케 후보는 현직이라는 이점을 이렇게 이용했다.

일본 언론들도 문제제기보다는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코로나 맞춤형 선거 보도로 일관했다. 언론은 모든 후보자들에 대해 원론적으로 공정한 보도를 원칙으로 한다. 현직 도지사가 선거 유세를 하지 않고 조용히 있으니 다른 후보에 대해서도 물리적 공정성을 유지한 것이다. 게다가 22명이 난립하는 후보군을 화면이나 지면에 모두 소개하기도 어렵다.

주요 후보와 군소 후보를 나눠 주요 후보는 그나마 상세한 소개를 한 반면 군소 후보들에 대해서는 이름 정도만 소개하는데 그쳤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자신을 알리기 위한 군소후보들은 유튜브를 비롯한 개인 채널을 통해 자신의 몸을 노출하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선거는 희화화되고 관심은 점점 멀어지며 투표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현직 도지사인 고이케 후보는 선거유세 대신 매일 같이 언론에 등장해 아베 총리와 거리를 두며 코로나19 대책에 분주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상대책회의는 물론 매일 브리핑룸에 자신이 직접 등장해 신규 감염자 수를 발표했다. 그렇게 하면서 '선거보다 도민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도지사의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언론인 출신인 고이케 지사는 정계에 진출한 이후 수도 없이 정당 갈아타기와 탈당을 반복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왔다. 무엇이 자신을 한 걸음이라도 총리 집무실로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아는 동물적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올해 나이가 68세로 아베 총리보다 두 살이 많다. 아베가 한 때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던 (그리고 여전히 그래 보이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과 또 다른 유력한 차기주자 이시바 시게루 중의원 의원은 올해 63세로 동갑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이들보다 5살이 많다. 그만큼 시간이 더 부족하다. 물리적 나이뿐 아니라 기시다 정조회장과 이시바 의원은 자민당 내부에서 크고 작은 파벌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도쿄를 기반으로 하는 군소 지역정당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이번 도쿄도 선거 결과에서 범야권이 보여준 지리멸렬한 성적에 고무된 아베 총리는 올해 안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를 치를 정치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실제 현재의 야권을 상대로 올해 선거를 치르게 되면 자민당이 또 다시 압승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중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는 내년 10월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올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일본 도쿄도(東京都)에서 2일 107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새로 확인됨에 따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가 기자회견에서 '밤의 거리 요주의'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올렸다. ⓒ 연합뉴스

 
야권의 분열로 더 어두워진 한일관계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된 것 중 또 하나는 야권의 분열이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독주를 막아야 하는 야권은 무엇보다 이 점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인들의 다수가 극우 정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2위와 3위를 차지한 야권의 주요 두 후보가 만약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둘의 합산보다 훨씬 큰 시너지 효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과만 중요한 것이 선거라지만, 특히 한일관계의 미래를 볼 때 이번 야권 성향의 두 주요 후보의 단일화 실패엔 아쉬움이 남는다. 2위를 차지한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는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 출신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에 헌신한 인권 변호사다. 나이가 많은 이유도 있지만 우쓰노미야 후보는 '일본의 샌더스'라고 불릴 정도로 선택적 부부성 사용하기, 사형제 반대, 공공장소 기미가요 제창 반대 등 매우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변호사다.

한국과의 관계 문제로 국한하면 혐한 시위와 인종차별, 증오발언 등에 반대하고 있고, 한국인 강제노동자 배상 문제 해결에 한일 청구권 협정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위안부 소녀상과 강제 징용 노동자상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위를 차지한 야마모토 타로 후보는 배우 출신으로 한국 영화에도 출연한 바 있는데, 레이와 신센구미라는 군소정당 소속의 참의원이다. 우쓰노미야 변호사가 대부업체 피해 구제 전문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면 야마모토 참의원은 철저한 반핵주의자다. 2013년 왕궁에서 열린 가든파티에서 아키히토 당시 일왕에게 반핵 관련 건의서를 직접 손에 쥐어줘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한일관계 문제에서도 전향적이다 못해 파격적이다. '독도는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발언이 일본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며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의 강제 노동자 배상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일 양국 통틀어 가장 표준 답안이 될 입장을 가지고 있다. "국가 간의 협정인 한일청구권협약은 유효하지만 논란이 되는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으니 일본 기업이 사죄하거나 배상하는 것이 맞고, 일본 정부는 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쪽에서는 반일, 한쪽에서는 혐한이 폭주하고 있는 지금, 어느 때보다 이성적 목소리가 아쉬워지고 있다. 정의와 진실을 향한 목소리들의 국제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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