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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8.09 14:08 수정 2020.08.10 10:20
    

'이사이아스' 접근으로 물에 잠긴 미국 도로 People walk on the flooded Sea Mountain Highway in North Myrtle Beach, S.C., as Isaias neared the Carolinas on Monday night, Aug. 3, 2020. (Jason Lee/The Sun News via AP) ⓒ 연합뉴스

  
"현정, 지금 전기가 들어온 것 같아. 확인해 봐." 

이웃 사는 딘의 메시지다. 노트북 가방을 들고 전기 콘센트를 찾다 지쳐있던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엇 정말? 세상에 이런 반가운 소식이. 고마워 지금 얼른 갈게."

노트북이며 이런저런 물건을 든 가방을 들쳐 메고 쏜살같이 달려오니 현관 복도가 환하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켜 놓았던 실링 팬이 신나게 돌고 있다. 평소엔 시끄럽던 냉장고 모터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야, 드디어 불이 들어왔다! 

전기 없던 무더위 속 사흘간의 악몽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2020.8월 미 동북부를 휩슬고 간 열대성 폭풍 이사이아스의 흔적. 뿌리째 쓰러진 나무들도 있다. ⓒ 최현정

 
전기 복구가 일주일 걸린다고??

지난 화요일 정오부터니까 72시간 넘게 정전이다. 모니터가 몇 번 깜빡거리다가 툭하고 맥없이 나갔다. 일기예보에서 열대성 폭풍 예보를 했다. 바람이 강할 거라고 했다. 예의 들뜬 목소리의 캐스터는 8년 전 미 동부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샌디와 비교했다. 요란스레 비가 쏟아졌지만 푹푹 찌던 올여름 내내 그랬으니 무더위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강력한 비바람이 동네 오래된 나무들을 흔들어 대며 뚝뚝 꺾어놓는다. 옆집 대문에 올려졌던 차양막이 맥없이 날아가 길가 주차된 차를 때린다. 쓰레기통이 바람에 굴러 다닌다. 멀리서 경찰차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리는데 거리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제일 먼저 냉장고가 걱정됐다. 팬데믹에 14일 치 식량을 준비해 두라 해서 두 대의 냉장고에 고기, 과일, 야채, 아이스크림과 이런저런 냉동식품들을 빼곡히 채워놨더랬다.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다. 설마 하루 넘어서까지 전기가 안 들어오려고. 바람이 심할 때 잠깐잠깐 정전된 적은 있었지만 금방 다시 들어왔었으니 말이다. 냉장고 문 여는 것을 최소화하며 버티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와이파이였다. 4G 데이터를 켜 뉴스를 검색하니 열대성 스톰 이사이아스는 카테고리 1급 태풍이란다. 지금 동부 해변가를 훑고 지나가는 중이라고. 뉴저지의 경우 1/3의 집에 전기 공급이 끊겼고 우리 지역 전기·가스 회사 사이트에선 지금 최선을 다해 복구 중이라고 뜬다. 배터리 알람이 15% 되어 핸드폰을 꺼 놓았다. 

저녁은 더 어두워지기 전에 먹기로 했다. 캠핑 때 쓰던 라이트를 찾아 놨다. 충전해 사용하는 거라 정말 필요할 때만 켜야 한다. 뉴스를 들어야 할 것 같아 먼지 쌓여 있던 건전지용 라디오를 꺼내 주파수를 맞춰봤다. 죄다 녹음 같은 음악과 광고 채널 사이에 실시간 방송을 하나 발견했다. 이 와중에도 스포츠 얘기뿐이다. 불이 없어 책도 못 읽고 TV도 못 보니 10시도 안 됐는데 잠자리에 든다.  

당연 잠자리가 편할리 없다. 8월 초, 습한 무더위에 에어컨 선풍기가 안 되니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 놓는다. 칠흑 같다는 말이 실감 난다. 여기저기서 발전기 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이렇게 많은 발전기가 있었나 싶다. 중간에 일어나 창문을 다 닫아 걸었다. 더위보다 소음이 더 괴로웠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진다. 여전히 제너레이터 소리가 요란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내다보니 가로등은 여전히 점멸. 조심스레 핸드폰을 켜 뉴스를 살펴보는데 우리 지역 가스·전기회사 PSE&G의 지역별 예상 복구 날짜 지도가 뜬다. 황급히 우리 동네를 찾아보니, 무려 다음 주 월요일 <8월 10일 복구 예정>이란 알람이 뜬다. 오늘은 수요일이거든!!! 

다행히 물은 나오지만 그래도 예비로 몇 통을 받아놓은 상태. 대충 씻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장기전에 대비해 얼음과 아이스박스를 사러 간다. 동네 24시간 여는 슈퍼에 가니 오전 출근하는 직원과 밤샘 근무하는 이들이 맞교대 중이다. 얼음고에서 얼음 다섯 봉지를 꺼냈다. 뒤 따라온 러닝셔츠 바람의 아저씨도 몇 개를 가져간다. 얼음고는 벌써 바닥이 보인다. 다행히 아이스박스도 있었다. 새로 구입한 것과 창고에서 꺼낸 아이스박스 두 개에 냉동식품을 나누어 넣었다. 소분해 놓은 고기 봉지들, 이런저런 냉동식품들, 아이스크림, 과일, 야채 순으로 얼음을 깐 아이스박스에 테트리스하듯 빼곡히 넣고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기존 냉장고와 냉동고에 얼음을 한 봉지씩 집어넣었다. 이걸로 며칠을 버텨야 한다.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Path 역 입구에 침수 방지용 모래벽을 쌓아놓았다. ⓒ 최현정

 
팬데믹 시대, 전기 찾아 삼만리

J.J. 에이브럼스가 제작한 미드 <레볼루션>은 전기가 끊겨 중세시대로 돌아간 미국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다. 그 첫 회엔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어린 딸에게 실컷 먹게 하는 젊은 부모가 나온다.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던 부모의 복잡한 얼굴이 떠오른다. 디시 워셔부터 냉난방까지 모든 게 전기로 해결되는 미국에서 전기 없는 설정이라니. 너무 말이 안 된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 부모처럼 모든 게 불안해진다. 

늘 내려 먹던 모닝커피도 안 된다. 오븐에 살짝 구워 먹던 냉동빵도 불가다. 시든 야채와 눅눅한 시리얼로 대충 아침을 때웠다. 더운 날씨에 상할 것 같은 것 위주로 빨리 먹어야 한다. 아침을 먹으며 보던 뉴스 때문인지 자꾸 뭔가 빠진 것 같다. 대신, 오늘 급선무는 전기 가능한 곳 찾기!! 평상시 같으면 와이파이나 충전은 별 문제가 아니다. 아무 커피숍에 가서 우아하게 브런치 먹으며 인터넷을 할 수 있다. 10분 거리의 고풍스러운 시립도서관은 멋진 마호가니 책상과 신문, 잡지, 초고속 인터넷을 넉넉히 제공했다. 그도 아니면 로컬 연주자들의 재즈나 전시회가 펼쳐지는 다운타운 건물 1층의 널찍한 플라자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불가. 

코로나 이후 모든 커피숖, 식당, 빵집들은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 어떤 실내 건물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예외적인 경우로 가게 바깥에 천막을 친 곳에서만 식사가 허가됐고 음료 서비스가 가능하다. 3월 초부터 모든 퍼블릭 도서관들도 문을 닫았다. 학교는 방학중엔 목요일만, 그것도 예약한 교직원에 한해 출입할 수 있다.

노트북을 들고 가 하루 종일 작업하고 도시락을 먹던 다운타운 빌딩에 갔다. 코로나 이후 약 다섯 달만의 방문이다. 전기 코드가 완비되어 있고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긴 탁자에 자리를 잡으려는데 잘 차려입은 경비원이 와 예의 바르게 주의를 준다. 감염 위험이 있으므로 아무도 의자에 앉거나 책상을 이용할 수 없단다. 이 넓은 공간에 아무도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아침부터 계속되는 퇴짜에 진이 빠져 잠시 충전만 하면 안 되겠냐고 사정해 보았지만 마스크 쓴 경비원은 고개를 젓는다. 
 

팬데믹으로 푸드코드의 모든 식탁들이 테이핑되어 있다. ⓒ 최현정

 
무겁게 들고 나온 노트북과 휴대폰 태블릿이 어깨를 짓누른다. 이 무더운 날씨에 갈 곳이 전혀 없다니. 혹시나 싶어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있는 쇼핑몰에 가보기로 했다. 쇼핑센터가 모여있는 이 곳도 팬더믹 이후 재개장한 지 몇 주되지 않은 곳. 몰은 많이 변해있었다. 쇼핑객들의 편의를 위해 곳곳에 마련해뒀던 소파들이 다 치워져 있다. 충전 단자가 놓여있던 벤치도 없애 버렸다. 1층에서 3층까지 올라가며 살펴봤지만 전기 콘센트는 보이지 않는다. 3층 푸드코트는 콘센트가 있던 식탁들을 모두 테이프로 꽁꽁 묶어 놨다. 이 곳도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단다.

<기생충>과 <조커>를 봤던 극장체인 AMC는 셧터 문이 굳게 내려져 있었다. 그 입구에 젊은 남자 하나가 철퍼덕 기대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도 나처럼 전기 충전을 위해 온 "전기 난민"이다. 선 굵은 멀티 코드까지 준비해 와 문 닫은 극장 입구에 있는 콘세트에 꽂고 노트북과 태블릿과 핸드폰 등등 대여섯 개의 전기기구를 한꺼번에 충전 중이다. 저렇게 준비성이 있어야 했어. 살짝 부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다행히 약간의 충전을 할 수 있었다. 화장실 이용을 위해 들어간 다운타운 빌딩 벽에 전기 콘센트가 있었다. 화장실 입구에 놓인 벤치에 앉아 가져온 노트북과 휴대폰을 충전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눈치 충전"을 하다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충전을 해도 되는지 물었다. 도로 옆 인도에 놓인 테이블엔 차가 뿜어내는 매연이 날아다녔지만 감지덕지했다. 그렇게 전기를 찾아 하루를 다 보냈다. 너무 피곤해 저녁거리로 피자라도 사가고 싶었지만 냉장고 속에서 맛이 가기 일보직전인 식재료 처치가 먼저라 입맛만 다셔야 했다. 

1977 뉴욕 대정전의 기억

이사이아스가 지나간 뉴욕 배터리 파크에선 시속 125km의 돌풍이 기록되었다. 많은 항공편이 지연되거나 취소됐고 뉴욕과 뉴저지의 열차 노선 일부가 폐쇄되었다. 알바니에서 홍수로 차들이 고립됐고 어린이 병원의 지붕이 뜯기기도 했다. 

AP 통신은 열대성 폭풍 이사이아스 여파로 미국 동부에서 적어도 12명이 사망했다고 전한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선 두 명이 번개에 맞아 목숨을 잃었고 필라델피아에선 불어난 집 뒤 개울에서 실종된 5세 소녀의 시신이 하류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코네티컷, 뉴햄프셔, 델라웨어, 메릴랜드 등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다.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뉴저지는 약 1/3 가정에 정전이 발생했단다. 

파워아우티지(poweroutage.us)에 따르면, 폭풍이 지나간 10개 주 약 200만 가구와 사업체들은 정전 사흘째인 목요일 아침까지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과 퀸즈 지역은 정전으로 인해 신호등이 점멸됐고 많은 지역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았다. 한인 인구가 60%인 뉴저지 팰리사이드도 금요일 오후까지도 정전으로 인해 개점휴업인 상가들 소식이 전해진다. 코로나에 이어 정전까지 설상가상이다. 

뉴저지, 코네티컷, 뉴욕주를 사업장으로 하는 Con Edison, PSE&G 같은 전력회사들은 전선 위로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선을 복구하기 위해 수천 명의 추가 인력을 투입 중이라 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인력 수급이 여의치 않고 작업 중에도 까다로운 절차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언제 복구가 완료될지 알 수 없다고 전한다. 작업 인부들은 이동시 평소처럼 짝을 지어 움직이지 않고 트럭마다 혼자 타야 하고 작업 중에도 6피트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등의 안전 지침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코네티컷주의 에버 소스 전기 공급사는 현재 120만 고객 중 영향받은 50만 명의 전력 복구를 위해 며칠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2012년 미 동부를 휩쓸고 간 슈퍼스톰 샌디의 흔적. ⓒ 최현정

 
팬데믹 속에 맞은 이번 허리케인 정전 사태가 더욱 잔인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지난 3월부터 실직한 50세 존스 씨는 구직을 위해 접속해야 하는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어 더 막막한 상황이 됐다. 정전으로 두 자녀를 부모 집에 맡긴 33살 구리 씨의 경우,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한 아버지가 발전기와 함께 아이들을 다시 돌려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올해는 정말 미친 해야"라고. 뉴저지 푸드 뱅크의 책임자 인터뷰도 있다. 정전으로 인해 냉장고의 식품들이 부패되자 푸드 뱅크를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음식을 확보하기 위해 몇 배의 비용이 더 들고 있다는 토로이다. 

신문은 뉴헤이븐의 먼로의 도서관을 소개한다. 주민들을 위해 도서관의 인터넷을 개방하기도 한 것. 오전 10시에 이미 주변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와이파이와 전원이 필요한 주민들이 도서관에 모여들었단다. 야외 무선 인터넷 무료 접속과 전원을 제공받은 주민들은 도서관 외부로 내놓은 전기 아웃렛을 통해 노트북에 충전하기도 했단다. 

정전이 됐을 때, 나는 다큐에서 본 43년 전의 <뉴욕 대정전>이 떠올랐다. 1977년 7월 13일 밤, 낙뢰로 인해 발생한 <뉴욕 대정전>은 겨우 25시간 동안의 정전이었지만 1616 점포가 약탈 피해를 입었고 1037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도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3776명이 체포됐고 피해액은 당시 가치로 3억 달러가 넘었다. 

지금 미국은 격변기라는 말이 무색한 혼돈의 시기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인해 폭발한 흑인 인권 운동 와중에 정치 부재로 인한 코로나 사망자는 16만을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11%의 사람들이 실업자 신세인 상태에서 팬데믹 이후 연방정부에서 주던 실업수당은 지난 7월 말로 끝이 났다. 가장 예민하고 힘겨운 시기에 발생한 정전이라는 악재는 나 포함 많은 이들을 예민하게 했다. 다행히 큰 혼란 없이 서서히 전기는 복구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시한폭탄이나 살얼음판 같은 마음은 여전하다. 지금 미국 사회를 휩쓰는 수많은 문제 속에 속에 뜻밖의 자연재해까지 겹쳤을 때, 이 용광로의 나라가 어떻게 폭발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종된 정치, 분열의 리더십이 더 큰 도화선 역할을 할 기세다. 

어제, 하루 종일 전기 찾아 삼만리를 하고 터덜터덜 집에 오는데 싸움 구경이 났다. 

"너네 제너레이터 소리에 어제 한 잠도 못 잤다고. 당장 꺼." 
"우린 애들도 있어서 발전기를 돌려야 한단 말이야. 왜 우리 집에만 항의하지? 내가 만만해?"


이런 상태가 며칠 더 가면 정말 큰 싸움이 날 수 있겠다. 게다가 여기 미국은 총이 있는 나라 아닌가. 팬데믹 속 정전에 단수까지 발생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대비는 해둬야 할 것 같아 머리가 복잡하다. 다큐같았던 한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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