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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9.24 17:54 수정 2020.09.24 17:54

미국 대법원 앞 임시 기념관에 긴즈버그 대법관을 추모하는 표지판과 꽃이 놓여있다. 긴즈버그 판사는 지난 18일(현지시각) 췌장암 합병증으로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 연합뉴스


2018년 11월, LA에 있는 스커볼 문화센터에선 '노토리어스(악명 높은) RBG(Notorious RBG)'란 제목의 전시회가 오픈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과 시대'란 부제가 붙은 이 전시회는 연방대법원에 재직 중인 85살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판사에 대한 전시회였다. 래퍼 Notorious B.I.G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그의 노래 제목들이 붙은 방마다 긴즈버그의 어린 시절, 결혼생활, 교수와 변호사로서의 이력, 27년간의 연방 판사의 삶이 진열되었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나 가수도 아닌, 여든 넘은 할머니의 일생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섰다. 시카고, 필라델피아, 뉴욕 등의 도시에서도 이어진 이 전시의 주 관객은 부모 손을 잡은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이었다.
 
팝 문화 아이콘이 된 대법관

"난 내가 '악명 높은 RBG'로 불릴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2019년 8월, 뉴욕 버펄로 대학 연단에 선 할머니 판사는 손자보다 더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의 별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커다란 뿔테 안경에 단정한 쪽머리. 154cm 초청연사의 작고 떨리는 목소리에 학생들을 박장대소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33년 뉴욕에서 러시아 출신 아버지와 폴란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유일한 자매였던 언니는 6살에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딸이 역사교사가 되길 원했던 엄마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코넬 대학을 다녔고, 결혼했고, 남학생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하버드와 컬럼비아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다.

최우수로 졸업했지만 여성이고 엄마라는 이유로 법률회사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하자 남자 교수들보다 적은 보수를 감수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뜻을 같이한 이들과 공동 창립한 미국 시민자유연합 내 여성 권리 프로젝트 고문으로 연방 대법원을 상대로 한 6건의 성 차별 소송 중 5건을 승리로 이끌어낸다. 

여성 차별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성 원고를 대리하기도 하면서 긴즈버그는 여성 차별을 명시화했던 미국 법을 순차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80년 워싱턴 D.C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고, 93년엔 연방 대법관에 오르게 된다. 여성으로선 두 번째였다. 그 후 27년 동안 선거권, 동성 결혼, 헬스케어, 낙태 등 미국의 스탠더드를 결정하는 수많은 판결에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참여한 대법관으로 높은 명성과 존경,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서점이나 도서관 선물코너엔 그녀의 안경과 인형이 판매되고 있다. RBG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절찬리에 상영됐다. 젊은이들의 티셔츠와 가방, 타투, 거리 벽화에도 판사복을 입은 긴즈버그는 핫 아이템이었다. 시사 풍자 쇼 <새터데이 나이트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엔 그녀를 전담하는 코미디언이 있다. 긴즈버그는 토크쇼에선 입심 좋은 진행자와 자분자분 인터뷰하는 인기 게스트였다. 어린이 위인전의 주인공이기도 해 아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여든 넘은 할머니에게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언론은 그녀가 젊은 세대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판사는 고교 성적이 여전히 자랑거리인 권위적인 집단'이란 선입견을 갖고 있던 한국 사람인 내게 긴즈버그 판사는 신기하고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 연두 국회 연설 당시 그녀가 조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전례에 따라 대통령을 마주 보는 가장 앞자리에 앉은 9명의 연방 대법관 사이에서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는 모습이 여러 연예 매체를 장식했다. 며칠 뒤 그녀는 쿨하게 해명했다. "그때 술이 완전히 깨지 않았어. 이젠 와인 말고 소다만 마셔야겠네"라고. 

개인 트레이너를 두고 건강을 관리하는 노 대법관은 자주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녀의 입퇴원 소식은 메인 뉴스의 주요 소식이었다. 지난해 말 입원 뉴스가 나온 며칠 후 건강을 회복한 긴즈버그 판사가 첫나들이로 오페라 극장에 갔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녀가 극장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무척 신선했다. 며느리의 부축을 받은 할머니 판사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두 장면 속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대중적인 인기와 위상을 실감했다. 27년간 대법원에서 수많은 판결을 하며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미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비결이 궁금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그녀도, 존경하는 대법관을 가진 미국인도 모두 부러운 순간이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대법관 임명   
 

시민들이 미 대법원 청사 밖에서 긴즈버그 판사에게 조의를 표하고 있다. 2020.9.19 ⓒ 연합뉴스


9월 18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사망했다는 속보에 전 미국이 슬픔에 빠졌다. 올해 87세, 췌장암 합병증이었다. 연방대법원 건물 앞엔 꽃과 촛불,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물건을 든 이들이 모여들었다. 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들이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고 신문과 방송에선 RBG 특집이 쏟아졌다. 손녀딸 클라라 스페라가 <엔피알>(NPR)에 나와 할머니의 유언을 전달했다. 

"나의 지금 가장 큰 소망은 새 대통령 취임 때까지 내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후 벌어질 소용돌이를 예상했다. 임기 중 벌써 2명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50여 일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우려한 것. 대통령 임기는 4년이지만 연방 대법관 임명은 미국의 100년을 좌우할 중요한 사건임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론은 2016년 2월, 대법관 앤터닌 스캘리아가 숨졌을 당시 공화당의 태도를 상기시켰다. 공화당 미치 매코넬 상원의원은 대선 9개월을 앞둔 상황에 대법관 임명은 불가하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을 격렬히 보이콧했다. 힐러리의 당선을 확신했던 민주당은 결국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판사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2개월 만에 연방 대법관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대통령과 상원 과반수도 뺏긴 민주당으로선 속수무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 사망 다음 날부터 새 대법관 임명에 흥분한 모양새다. 팬데믹 이후 느슨해졌던 공화당의 대오가 뭉치고 보수 유권자들이 결집하는 등 대법관 임명으로 뒤처진 대선 레이스의 터닝 포인트를 가져오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 트럼프는 벌써 여러 명의 후보자들을 면담하며 임기 내 빠른 임명을 장담 중이다. 이는 지난 9월 15일 발간된 밥 우드워드 기자의 책 <분노>에서도 예상됐다. 

밥 우드워드는 <시엔엔>(CNN)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법원 판사를 "황금 덩어리"로 비유했다면서, 트럼프가 자신의 업적 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187명의 연방 판사를 임명한 일을 꼽았다고 전했다. 종신직인 연방 판사의 25%를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뽑았는데, 퇴임 때까지 50% 이상을 임명하겠다고 장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9명의 연방 대법관 중 3명을 현 대통령이 임명한다면 트럼프의 자랑대로 100%를 임명했던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이후 최대가 될 수도 있다. 

우드워드 기자는 트럼프의 판사 임명 과정에 현 공화당 상원의장 미치 매코넬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면서 그가 트럼프에게 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1984년부터 켄터키 주 상원의원으로 잔뼈가 굵은 매코넬 의장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은 새로운 판사의 임명"이라며 "10명의 대사보다 한 명의 판사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는 것. 미치 매코넬이 있는 켄터키 주 공화당이 2019년 5월부터 "긴즈버그의 자리는 우리가 채우겠다"라고 큰소리쳤던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RBG 같은 사람, 다시 또 나올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화상 연설을 방송하는 백악관 유튜브 계정 갈무리. ⓒ 백악관 공식 유튜브


"당신이 관심 있는 것들을 위해 싸워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하도록 이끌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라."

RBG의 말처럼 그녀가 세상을 바꾸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대법관으로 임명하고자 했을 때, 미국 여성단체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그녀가 너무 신중하고 너무 온건하고 너무 보수적이라는 이유였다. 산적한 차별 문제를 해결할 십자군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나 27년 간 그녀가 연방 대법원에서 내렸던 수많은 결정들은 그녀를 '진보 대법관'의 대표로 부르게 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성실히 수행했던 결과였다.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미국 역사에 큰 획을 그으며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긴즈버그 사후 미국 대선 가도는 크게 흔들리는 중이다. 코로나 사망자가 20만 명을 기록한 24일, 대통령 트럼프의 코로나 실패 책임 논란보다 새 대법원장 인선 논란으로 시선이 옮아가고 있다. 4년 내내 트럼프에게 적대적이었던 미트 롬니 의원까지 의기투합하며 대선 전 대법관 임명을 위해 공화당의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11월 대선과 상원 선거에서 패배해도, 종신제인 대법관에 보수 인사를 임명할 수 있다면 아쉽지 않다는 듯 모든 역량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판결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어오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앞으로 그녀와 같은 법관을 미국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녀의 사망이 미국의 대선판을, 미국의 대법원을, 그리고 미국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하다. 미국의 100년을 좌우할 앞으로의 50일이 살얼음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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