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7 04:34최종 업데이트 23.07.17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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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기자회견장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가입 숙원이 또 미뤄지게 됐다. 12일 폐막한 올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가입 승인을 종전 이후로 미뤘다. 하지만 구체적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의사를 사실상 거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소련의 해체 직후부터였다. 1992년 우크라이나는 2008년 가입을 목표로 선결 조건인 '회원국자격 행동계획(MAP) 참여를 희망했다. 비슷한 시기, 대부분의 구 공산권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에서 분리된 신생 독립국들은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토 가입을 서둘렀다.


가장 먼저 나토에 합류한 동유럽 국가는 1999년 폴란드와 체코였다. 2004년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가입했고, 2009년에는 크로아티아, 알바니아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2017년 몬테네그로, 2020년 북마케도니아가 대열에 합류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냉전시대에도 중립을 표방하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급히 나토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핀란드는 11개월만에 합류에 성공했고 스웨덴 역시 이번 나토 정상회담 직전 사실상 가입 허가를 받아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앞선 다른 동유럽 가입국들과 달리 MAP 면제까지 받으며 초고속 가입 특혜를 얻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냉전 당시 비서방 국가들이 나토에 합류한 것과 달리 30년 전부터 문을 두드린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가입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으로 내부적 원인과 외부적 원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이번 나토 정상회의 장소인 리투아니아 빌뉴스까지 날아가 신속한 가입을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친유럽 주민과 친러시아 주민 간 갈등
 

러시아군 미사일 공격으로 일부가 파괴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의 건물 앞을 9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인문지리학적 민족 구성은 대략 드니프로강을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이 큰 차이를 보인다. 서쪽 지역 주민의 압도적 다수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반면 동쪽 지역으로 갈수록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 비율이 높아진다. 특히 현재 러시아 점령지가 된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그리고 크림반도에서는 절대 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 명분으로 삼을 만큼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집착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다수의 러시아인들에게 돈바스 지역(루한스크, 도네츠크)은 러시아 땅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크림반도는 소련 시절 러시아 소속 행정구역이었다가 우크라이나 출신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임의로 우크라이나로 편입된 곳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친유럽 성향 주민과 친러시아 성향 주민 간에 물과 기름 같은 이질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갈등이 나토 가입 문제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1992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유럽 국가들의 집단안보기구인 나토에 합류하기를 희망했지만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 또한 많았다.

내부 갈등 속에서 계획된 2008년 나토 가입 꿈은 멀어졌고, 2010년 선출된 4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아예 나토 가입 계획 자체를 철회하게 된다.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초대 대통령 이래 우크라이나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러시아와 유럽과의 관계를 포함한 대외정책이 뒤바뀌곤 했다. 냉전 이후에도 동서의 원심력은 강했고, 그에 따라 내부 분열도 심각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전임인 3대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추구한 서구화에 급제동을 걸고 다시 러시아 지향적 대외정책을 펴게 되는데, 예상대로 내부의 반발은 우크라이나를 다시 혼란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유로마이단 혁명이 발생했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축출됐으며 또다시 친서구화 쏠림이 시작됐다.

혼란이 반복되자 올렉산드르 투르치노우 임시 대통령 하의 야체뉴크 내각은 나토 가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첫 우크라이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전임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급진적 친러 성향이 국가를 대 혼란에 빠지게 했기 때문에 안정이 최우선으로 꼽힐 때였다. 

유로마이단 혁명이 급속한 서구지향적 환경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를 안정시키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한 긴급 처방으로 나온 것이 나토 가입 포기 선언이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유로마이단 혁명에 미국의 개입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임시 내각의 나토 가입 포기 선언은 쉽지 않은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내부적으로 복잡한 국민통합 문제와 외부적으로 서구 세계와 러시아 간의 힘겨루기가 모두 얽힌 우크라이나 정치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였다. 임시정부 후 들어선 5대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역시 친서방주의자였지만 쉽게 나토 가입 재추진에 나서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교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폐막 후 회의장을 떠나며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등장한 6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러시아의 전쟁 유발 책임까지 그가 떠맡을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전쟁을 막지 못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부지런하고 용기 있는 대통령임은 분명하지만 현명한 대통령인지는 의문이다. 무리한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 추진이 서구와 러시아를 모두 난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쟁 중의 국가를 당장 집단방위체제에 끼워달라는 것만큼 난감한 요구는 없는 것 아닌가. 나토는 다수의 국가 간에 맺어진 집단방위체제다. 회원국 가운데 한 곳만 침략 또는 안보 위협을 당해도 전체 또는 일부의 회원국이 개입해야 하는 국가 간 조약이다. 가입을 위해서는 회원국의 만장일치도 필요하지만 개별 회원국의 의회 동의까지 필요한 이유다. 

우크라이나가 회원국이 되는 순간 나토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개별 국가의 간접 원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최근 합류한 핀란드나 가입을 앞두고 있는 스웨덴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존 회원국이 된 핀란드가 안보 위협을 받는다면 이때의 나토 개입은 방어에 해당한다. 하지만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허용된다면 이것은 사실상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선전포고가 된다.

미국과 유럽은 백 년도 지나지 않은 가까운 과거에 국가 간 막무가내 동맹이 거대한 세계대전을 유발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절박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국제관계는 온정을 호소하기에 너무나 냉혹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막아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후 수습은 사전 예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하다. 최근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이 '우리는 아마존(온라인 쇼핑몰)이 아니다'며 모욕해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 전쟁을 사전에 막지 못하고 원조에 매달려야 하는 우크라이나의 슬픈 운명이다. 

내부의 오랜 분열을 당장 화학적 결합으로 이끌기는 불가능하다. 한쪽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것은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정치가 필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의 해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역대 정권은 살얼음 위에서 정치 예술이 얼마나 정교했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곤 했다. 우크라이나 현 정권뿐 아니라 모두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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