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1 19:33최종 업데이트 23.08.1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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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어마어마한 사람이 귀엽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의 숨겨진 사연을 알았을 때다. '숭고함의 끝판왕'으로 여겼던 소방관의 이미지가 한 권의 책을 읽은 뒤 묘하게 친근해졌다. 영웅으로만 불렸던 소방관의 사생활을 접하면서, 그들 역시 누군가의 보살핌을 요하는 사람이라는 걸 <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를 읽고 발견했다.
 

책 <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표지 ⓒ 김영사

 
여전히 그의 일은 숭고해 보이지만, 적어도 불에 델 때 그들도 뜨겁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란 걸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그는 인내하고 있었다. 위태로운 곳에서 견디는 사람을 구하려고.

출동 안내음이 울리면 자그마치 21kg 장비(방화복, 공기호흡기, 안전화, 헬멧 등)를 이고 재난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에도 불볕더위 속 촌각을 다투며 꺼져가는 숨은 살리고 불씨는 다시 보는 사람들. 목숨 살려내는 일의 무게를 감히 따질 순 없지만, 은근한 유머와 잔정 많은 인물의 호쾌함이 묻어나는 에세이 속 소방관은 보통 직장인과 조금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그가 오늘 무사히 방화복을 벗고 경고음 없이 시원한 윗목에서 한숨 놓고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시시때때로 물난리가 터지고 건물이 붕괴되고 화재가 일어났을 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직업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한참 멀었다는 한탄을 자주 들었다. 소방관 건강이상자 비율은 일반 업무 종사자보다 무려 세 배 이상 높다. 인력난과 장비 부족으로 신음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소방 공무원의 위험수당을 대폭 올려야 마땅하다는 마음이 불쑥 오르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소방 장비(특히 방화복)와 소방관 복지를 개선하고, 위험수당을 상향해 목숨을 구하는 일의 경중만큼 그들이 안전하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시민 안전은 물론 희생정신과 맞먹는 등가교환이 공정히 이뤄지리란 논리를 떠올리곤 했다.

'소방관은 받는 월급에 비해 숭고한 직업'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듯 싶은데, 이건 위험하다. 나아가 재난 현장에서 일하는 이에게 희생 정신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생각도 위험하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으니까. 고통을 인지하는 마음을 타인을 구하고자 잠깐 덮어 뒀을 뿐. 보통 직장인들처럼 소방관도 무사히 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 구조와 포획, 그 사이에서의 고민
 

ⓒ 고정미

 
예상하시다시피 <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방관, 그런데 이력이 좀 특이하다. 한국인 최초로 극지로 마라톤(세계 4대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다녀왔고, 남들이 흔히들 가는 곳이 아닌 아프리카 우간다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으며, 한때는 깐풍기를 튀기는 가게의 사장님이었다.

버는 것보다 퍼주는 게 더 많았던 저자는 결국 가게를 접고 여러 분투 끝에 서른여섯 늦깎이로 소방관으로 입사해, "고참 같은 신입"의 포스를 뿜으며 현재도 소방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지천이 지리산 산줄기로 둘러싼 남원소방서 119 구조대원이다.
 
"지리산 근처 인월 119 안전센터로 발령이 났다. 3개월간 센터에서 근무를 해보니 불 끄는 날보다 지리산에서 길 잃은 사람을 메고 내려오는 날이 많았고, 손에서 불 냄새 대신 자연의 냄새가 가득했다. 이곳 생활은 하루하루가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 같았다. 비가 오면 계곡에 놀러 온 사람들이 물에 휩쓸릴까 걱정이고, 날씨 좋으면 산 타러 온 사람들이 산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이었다."
 
어느 날은 길가 쓰러진 나무를 자르는 목수가, 어느 날은 어깨에 사람을 멘 산악인이 되기도 하는 저자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맥가이버가 따로 없다. 책에서 유독 그가 많이 거론하는 주제는 '동물'이다.

최근 유기되는 반려동물이 급증하면서 길가에 떠도는 강아지를 구해 달라는 민원이 폭증한다고. "강아지가 길을 잃은 것 같아요. 구해 주세요"란 어린이들의 긴급 전화로 구조된 개가, 이후 거쳐 갈 과정에 씁쓸해하는 소방관의 회고는 낯설지 않다.

유기동물 보호센터는 언제나 포화상태, 구조된 동물이 일정 기간 안에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가 된다는 걸 구급 전화를 건 어린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는 책 속 동료 소방관 대처에도 그래서 납득이 갔다. 숱하게 구조한 동물을 안고 담당 공무원에게 이관했던 담당자가 아니면 할 수 없었을 대처일 것이다.

인간이 지정한 '유해 동물들을 포획하는 일'도 한다는 저자는 "멧돼지, 닭을 물어 죽이는 족제비, 고라니, 뱀 등 주민들의 삶에 위협을 가하는" 동물을 포획하는 일에 관한 어려움도 토로한다. 도시든 시골이든 무심하게 배제되는 동물의 생명권에 관해 골똘히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생명권, 즉 최종에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말을 빼곡히 써 내려간 소방관 일기에는 때때로 비인간 동물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조심스레 담겨 있다. 책표지에 그려진 조난자가 왜 사람이 아닌 '흰 개'였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인명뿐 아니라 동물명(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도 가벼이 하지 않는 '고른 이타심의 소유자'다.

화재 당한 사람의 고통 겪어본 소방관 

백미는 또 다른 대목에 있다. 자기 집, 즉 소방관의 집에 불이 나 황망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준 일화에서 나는 숨을 들이켰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그는 어김없이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 곳이 자기 집과 가깝다는 것을 알고 '설마' 했다고 한다. 불이 난 곳이 오늘 자신이 자고 씻고 출근을 준비한 집임을 알고는 이내 망연자실. 정신을 부여잡고 연기가 보이는 쪽으로 성큼 들어선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소방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을 텐데, 용기를 내어 썼겠다는 짐작이 들자 감탄이 나왔다. 그는 재난 당사자로서의 심정을 솔직하게 되새기며 사고 당사자의 심정을 빠짐없이 몸에 새긴다.
 
"어느 단독주택 화재현장에서의 일이다. (중략) 귀소하라는 무전을 받고 구조차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가 계신 곳을 찔끔 훔쳐보았다. 그 빨간 물체를 품에 꼭 안으며 어떤 이의 위로를 받고 계셨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빨간색 사진첩이었다. '목숨 멀고 빼오려 했던 게 사진첩이었구나.' 순간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과 함께한 추억을 잃었던 것이다. 나이키 운동화는 당시 나에게 용기였다. 가장 가난했고 무모했던 시절의 그 용기를 잊고 살았다. 잊고 살았으니 잃고 산 것과 같았다."
 
화재로 집 안 생활용품이 모두 소실된 참혹을 겪은 소방관은 타인의 화재 현장에서 피해자의 참혹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재난에 처한 시민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이 대목이 재난 현장에서 사투를 벌어온 소방관들의 에세이들과 차별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는 화재 뒤 더 큰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으며 번민하는 시민들 통증을 체화함으로써 구하는 자 너머의 감수성을 돈독하게 채웠을 것이다. 시민의 죽음을 때때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기에 "우리에겐 슬픔을 소화시키는 소화기관이 없다"고 말하는 소방관의 이타심이 아니었다면, 고백하기 어려웠을 기록이었음을 힘주어 밝힌다.

'최초 대처자'들도 보통의 날을 살 수 있게

영웅으로 미화되는 걸 경계하고 쓴 책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솔직한 영웅이자 소시민이다. 화재 진압 후 컵라면을 먹는 소방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떠돌곤 하는데, 저자는 이를 안쓰럽게 보는 사람들 편견에 대해서도 한 마디 건넨다(물론 유머인 줄 알지만). 공기통에 공기가 모자란 것은 이해해도, 사무실에 컵라면이 없는 건 참지 못한다는 대목에선 그만 유쾌해졌다("우리는 진짜 맛있어서 먹는다"고 그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재난 현장에서 매번 극한 에너지를 써야 하는 업의 특성상 금방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음식이 컵라면일 텐데, 이유 불문하고 소방관이 컵라면을 먹는 건 "처우 개선이란 숙제가 남아 있지만, 적어도 컵라면은 좋아서 먹는 것"이라는 문장에 입가가 시원해졌다.

동부 아프리카 언어로 '사자'를 뜻하는 그의 필명이 호쾌하듯, 소방관 심바는 유머 감각이 진실로 탁월하다. 그런 그가 소방관이 되고자 한 건 아버지의 심장이 멎고 119가 출동했던 날에서 비롯되었다.
 
"가슴에 고사리 같은 두 손을 얹고 흉부압박을 하며 아버지 입에 숨을 불어넣었던 나는 속으로 119 아저씨들을 원망했다. 아저씨들이 늦게 와서 내 소중한 아버지가 죽은 거라고. 나였다면 절대 늦지 않았을 텐데. 나였다면 꼭 살렸을 텐데. 그 기억과 원망이 무의식에 남아 나도 119 아저씨가 되었다. 그리고 매번 조금만 참아달라고, 조금만 기다리라며 마음으로 외치며 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 "더 빨리 도착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끼니처럼 삼키는 그의 하루를 읽다 보면, 응원하지 않고선 못 배길 것이다. 경찰관‧소방관‧구급대원‧군인들을 위한 생존 가이드 <구조대의 SOS>에 따르면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생명을 구조하는 사람을 '최초 대처자(first responder)'라 한다.

심바도 이에 해당한다. 최초 대처자들은 언제나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데, 위 책 저자 댄 윌리스에 따르면, 그들이 늘 겪는 문제는 "상태를 스위치처럼 간단하게 켜고 끌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이들이 정신적, 정서적으로 건강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케어와 훈련법이 보편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영혼이 고갈되지 않도록.

퇴근 뒤 소방관의 삶을 떠올려본 적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롤러코스터 같은 일상에 익숙해지며 정서적 건강이 상하기 쉬운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활발히 논해야 할 시점이다. 적어도 <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는 한 소방관이 재난 현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기 위해, 시민 안전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 강구한 생존책이었을 것이다.

그가 보통의 날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모두가 알지만 언제나 잘 지켜지지 않는 에티켓을 주문처럼 읊어본다. 구급차가 지나가면 모세의 기적처럼 도로를 열어 주자. 불법 주정차로 운명을 달리하는 생명이 생길 수 있음을 알자. 꺼진 불을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소방관의 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소금 땀에 젖어 가뜩이나 무거운 방화복이 더 무겁지 않도록 고통을 분담하자. 소소한 실천으로 우리를 살리는 자가 하루만이라도 지치지 않도록.


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최규영 (지은이), 김영사(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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