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31 13:37최종 업데이트 23.08.31 13:37
  • 본문듣기

농촌 가을풍경(자료사진) ⓒ 연합뉴스

 
요즘 농촌지역 주민들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했다",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연락이 많이 온다.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마을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환경오염시설, 산업폐기물시설, 난개발사업 등을 반대하다가 당하는 일이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부 업체들은 반대 주민들이 만든 현수막의 문구, 유인물의 내용 하나하나를 문제삼는다. 그리고 '법적 조치' 운운하면서 위협을 가한다. 


위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소·고발을 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업무방해', '명예훼손'이다. 업체가 추진하는 사업을 반대하는 게 자신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안전성이나 환경오염을 우려하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한다.

인허가도 안 났는데 '법적 대응' 운운... 헌법 권리는 어디로

실제로는 명백한 허위사실이 아니라면 법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고소·고발을 당하면 수사를 받아야 한다. 난생처음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주민도 있다. 그 자체가 주민들에게는 엄청난 압박이다. 경찰에서 불송치 결정이 나오거나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이 나올 때까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형사 고소·고발과는 별개로 민사소송까지 제기하는 사례도 있다. 업체는 돈이 있으니,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제기한다. 농촌 주민들도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하면 돈이 들어간다. 소송을 당한 주민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 이익될 게 하나도 없는 일이다. 그저 마을과 환경을 지키려고 나선 것인데, '송사'로 인해 정신적·물질적 부담을 지게 되는 형국이다. 

업체들이 '법'으로 농촌 주민들을 겁박하는 사례들을 보면, 인허가도 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아직 법적으로는 사업권이 확보되지도 않은 셈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인허가를 받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고소·고발을 하고 소송을 건다.

사실 법적으로 봐도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인허가가 나기 전에 인허가를 반대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집시법 등 실정법을 명백히 위반한 게 아니라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자기 마을을 오염시키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시설이 들어오려고 하는데 인허가권을 가진 행정관청에 '인허가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면, 그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문제는 실제 현실에서는 '무기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체들은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니 변호사 수임료 정도는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일부 업체들은 돈을 써서라도 주민들을 압박해서 반대활동을 억누르려고 한다. 요즘에는 내용증명 단계부터 아예 로펌 이름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농촌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마련해서 법적 대응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공익소송 지원 조례' 움직임, 농촌에도 도움될 수 있다

이미 들어온 환경오염시설로 인해 농촌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곳도 있다. 공장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는 곳, 심각한 소음·진동 피해를 입고 있는 곳, 토양이나 수질오염이 우려되는 곳 등이 많다. 

그러나 주민들이 이런 환경피해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려고 해도 역시 소송비용이 문제가 된다. 직접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피해가 존재하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피해 실태조사라도 해 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 실태조사에 들어가는 비용부터 주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2021년 10월 26일 광주 광산구청에서 광산구 공익소송 지원위원회 제1차 회의가 열린 모습 ⓒ 광주광산구청

 
최근 일부 지자체들이 '공익소송 비용 지원 조례'를 만들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2021년 7월 최초로 이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의 내용을 보면 ①중요한 사회적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법적인 권리로 인정받지 못한 사건 ②해당 사건으로 인해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수의 구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사건을 '공익소송'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광산구 공익소송 지원위원회'가 심의해 지원할 사건을 정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자치법규시스템'(www.elis.go.kr)에서 검색해보면, 현재 '공익소송 비용 지원 조례'는 5개 기초지자체에서만 제정된 것으로 나온다. 농촌 지역에서는 전라남도 강진군에만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의미가 있다. 다양한 공익소송이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특히 농촌마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건강과 환경 피해를 입고 있는 농촌 주민들이 피해구제를 위해 '법'을 활용하는 것은 지금도 공익소송 개념에 포함된다.

물론 공익소송의 개념을 좀더 폭넓게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마을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가 고통을 받게 된 사람의 행위도 공익성을 인정해야 한다.

법원이나 수사기관들도 법을 악용해 농촌 주민들을 괴롭히는 업체들의 행태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농촌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난개발을 하려고 하면서 마을공동체를 위협하는 행태는 헌법이 보호할 '기업의 자유'가 아니다. 이런 행태에 법이 이용돼서는 안 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