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 재개봉 포스터

▲ 감각의 제국 재개봉 포스터 ⓒ 조이앤클래식


현재 개봉가치가 있는 지나간 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수입·배급사 조이앤클래식이 3월 26일 두 편의 영화를 재개봉한다. <드래곤 블레이드>의 국내개봉에 맞춘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2-구룡의 눈>과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설적인 문제작 <감각의 제국>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1976년 제작된 <감각의 제국>은 세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제작된 지 24년이 흐른 지난 2000년에야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 이번 재개봉의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적나라한 성기노출은 물론 실제 성행위를 영화에 그대로 삽입하는 등의 파격적 연출과 관련해 개봉 당시부터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 영화는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금기에 도전하는 용감한 작품이라는 평가부터 자극적인 표현으로 일관하는 치정극일 뿐이라는 평가까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려왔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골적인 성애묘사는 <감각의 제국>을 온갖 경로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영화가 제작되던 1970년대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72년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같은 작품이 만들어지던 시기라는 걸 감안해도 <감각의 제국>의 수위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분명하게 잡아내고 성애장면 역시 사실적으로 촬영했으나 궁극에 이르러서는 성기를 절단하는 장면까지 묘사하기를 꺼리지 않는 연출방식이 점잖은 관객들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이끌어냈다.

1936년의 실화 '아베사다(阿部定)사건'을 영화화

엄밀히 말하면 <감각의 제국>은 프랑스 영화다. 일본 동경 아라가와 구의 요정 종업원이었던 아베 사다가 정부였던 기치를 살해하고 그의 성기를 잘라 자신의 몸 속 깊숙이 넣어 다니다가 체포된 1936년의 실화 '아베사다(阿部定)사건'을 바탕으로 프랑스 제작자 아나톨 도망과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손잡고 만든 영화다.

영화가 일본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오시마 나기사가 촬영을 마친 후 필름을 프랑스로 옮겨 후반작업을 완료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상영 당시 프랑스 자막을 달아 외화임을 분명히 했다는데, 이 영화가 일으킨 논란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영화는 칸느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을 뿐 아니라 시카고 영화제와 잉글랜드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작품성 면에서도 어느 정도 검증받았다 하겠다.

영화의 작품성은 당대의 성적 금기에 도전하는 용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 일본의 군국주의가 내포한 광기와 그 파국적 종말을 그려내는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1936년 일본의 나가노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아 요리주점 요시다야의 여종업원으로 일하게 된 사다(마츠다 에이코 분)는 그곳에서 가게의 주인인 기치조(후지 타츠야 분)를 만나 불륜관계를 갖게 된다. 첫 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주변의 눈을 피해 가게 곳곳에서 밀회를 즐기다 기치조의 아내에게 들통나게 된다.

사다는 가게를 그만두지만 두 사람은 가게 밖에서까지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교외의 어느 여관방에 몇 달이나 틀어박혀 끝없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던 그들은 차츰 변태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파국으로 달려가기에 이른다. 영화의 끝에서 사다는 스스로 기치조를 목졸라 죽이고 그의 성기를 도려내 가진 채 여관방을 전전하다 검거된다.

광기 어린 군국주의의 종말을 그리다

영화는 매우 도식적인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전반부만 놓고 보면 불륜을 소재로 한 치정극에 가깝지만 중반 이후 급변하는 양상과 여러 상징적인 장면들이 영화에 담긴 사회·정치적 함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우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37년의 중일전쟁, 1941년의 2차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6년이다. 영화는 실제로 전범기(욱일승천기)와 행진하는 군인들, 이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그 장면장면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요리점의 주인으로 살던 기치조가 사다를 만나 불륜행위를 하게 되고 집을 나와서까지 그녀와의 관계에 탐닉하다 마침내 죽음을 맞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영화에서 기치조의 행동을 이끄는 건 사다이며 그녀는 적극적 주체로서 육체에 탐닉하고 변태적 행위를 시작하며 관계를 주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기치조는 먼저 사다에게 접근한 것 외에는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비틀리고 쇠약해지며 종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수동적 인물일 뿐이다.

감독은 사다와 기치조의 관계에서 군국주의 하에서 광기에 휩사여 파멸해가는 일본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한 듯싶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도식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 우선 요리점의 주인인 기치조는 사다라는 종업원을 만나 먼저 접근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떳떳하진 않지만 삶에 활력을 주는 쾌락을 맛본다. 만약 기치조를 일본으로, 사다를 군국주의라고 본다면 이는 일본의 지배층이 군국주의적 기풍을 받아들였음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요리점의 질서와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요리점의 누구도 이 문제를 공론화 해 기치조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으나 아내의 불편한 감시를 피해 기치조는 요리점을 나와 사다와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군국주의적 기틀 속에서 만주에 괴뢰정권을 수립(1932년)하고 국제연행을 탈퇴(1933년)하는 등 급격한 우경화로 치달았던 일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은 여관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서로의 육체에 탐닉하는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 모습은 주변인들로 하여금 눈쌀을 찌푸리면서도 걱정하게 할 만큼 위태로운 것이었다. 마침내 돈이 떨어지자 사다는 학교장과 공무원에 몸을 팔아 돈을 마련해온다. 이 장면에서 사다는 발기가 되지 않는 학교장 앞에서 자신의 변태적 욕망을 드러낸다. 그 사이 여관에서 기치조는 도망갈 것을 권하는 여급을 강간한다. 이후에도 기치조는 사다의 요구에 따라 늙은 게이샤를 강간해 거의 죽은 듯한 상황에 이르게 하는데 이러한 장면 역시 상징적이라 하겠다.

이를 정상적인 생활보다도 군대를 국가의 기틀로 삼는 군국주의가 일본을 피폐하게 했으며 이로부터 주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광기를 드러내게 했다는 감독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영화가 초반부 사다를 찾아온 부랑자 노인과 학교장, 선술집 주인 등이 발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잡아내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대 일본인들의 패배감과 무력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돌아온 사다는 기치조를 향해 변태적 욕구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그녀는 기치조의 두 손을 결박하고 그의 목을 조르며 그에게 칼을 들이대기를 꺼리지 않는다. 마침내 기치조는 사다에 의해 죽게 되고 사다는 기치조를 소유한 채 떠돌다 검거되기에 이른다. 기치조는 사다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쇠약해지며 그녀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는 모습만을 보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방 안에 감금되다시피 생활한다. 사다에 의한 기치조의 죽음은 군국주의가 마침내 그 숙주를 장악하고 파괴할 뿐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각의 제국>은 포르노의 형식으로 군국주의의 광풍에 휩쓸린 일본을 비판하고 그 속에서 무력감과 패배감에 짓눌린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영화다. 사다와 기치조의 특정 행위가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보이지만 그들의 행위가 당대 군국주의 광풍에 휩쓸린 일본의 모습보다 더 불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내각회의에서 평화헌법을 수정적으로 해석하기로 결의한 데 이어 최근 아베 신조 총리가 자위대를 군이라 칭하는 등 일본이 갈수록 우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각의 제국>의 재개봉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감각의 제국>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조이앤시네마에서 3월 26일부터 상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감각의 제국 조이앤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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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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