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포스터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포스터 ⓒ NEW


바쁜 시간을 쪼개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영화로부터 기대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혹 일상을 벗어나 생소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낯선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함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판타지는 가장 유효한 장르 가운데 하나임에 분명하다. 실재적인 인간사를 반영하면서도 인간의 무의식과 꿈의 영역까지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는 판타지야말로 관객에게 만족스러운 일탈을 선사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과거 신과 요정이 등장하는 몽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뜻했던 판타지는 오늘날에 이르러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전개하는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상상력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공상과학(SF, Science Fiction) 장르와 중첩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때로는 멜로나 액션, 드라마, 무협, 동화적 서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판타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온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에 이색적인 설정을 부여하는 것이다. 전자의 예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등을 들 수 있고, 후자로는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 세스 맥팔레인의 <19곰 테드>, 리차드 커티스의 <어바웃타임> 등이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세계관을 새로 설계할 필요 없이 한두 가지 설정을 통해 판타지의 장르적 장점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점에서 점점 선호되는 추세다.

 잘생긴 우진(유연석 분)은 이수(한효주 분)와 손잡고 체코 어느 거리를 걷는다.

잘생긴 우진(유연석 분)은 이수(한효주 분)와 손잡고 체코 어느 거리를 걷는다. ⓒ NEW


지난 20일 개봉한 백감독의 <뷰티 인사이드>도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29살 남자 우진이 이수라는 동갑내기 여자를 사랑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멜로물인 동시에 한 가지 특별한 설정을 통해 극에 판타지적 생명력을 부여했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설정이란 '자고 일어나면 전혀 다른 겉모습의 인간으로 바뀌는' 것인데 주인공이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재능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게 작용한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18세 생일부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매일 다른 겉모습으로 깨어나게 된 우진의 사정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맞춤 가구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던 우진이 가구점 직원 이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까지, 감독은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관객이 영화의 판타지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동원한다. 1인칭 독백과 사려 깊은 소품 활용,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단역 배우들의 출연 등을 통해 영화는 관객이 이러한 상황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일상 판타지의 본격적인 힘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가 본래 의도한 지점까지 깊이 있게 들어갔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외모의 변화에 따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그로부터 나의 행동이 영향을 받으며, 심지어는 육체의 변화로 인한 호르몬의 변동까지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았는데도 멜로드라마로만 관심사를 한정 지었다는 점이 아쉽다. 만약 감독이 진정으로 아름다움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탐구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표피적인 멜로에만 천착하진 않았을 것이다.

 잘 생기지 않은 우진(김희원 분)은 이수(한효주 분)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아침을 맞는다.

잘 생기지 않은 우진(김희원 분)은 이수(한효주 분)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아침을 맞는다. ⓒ NEW


더불어 영화가 멜로드라마로 정체성을 한정 지어버린 선택이 다른 많은 가능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도 아쉽게 느껴졌다. 영화는 유연석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진행하며 변화하는 우진들 간에 통일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진의 외모 변화에 따른 정체성의 변화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되기도 했다. 외모의 변화에 따라 정체성과 인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었을 텐데 내레이션이 우진을 29살 남자의 캐릭터로 고정해버린 것이다.

만약 극 중 우진의 외모가 변화함에 따라 내레이션을 하는 배우의 목소리도 달라졌다면 어땠을까. 현대 과학은 인간이 호르몬 등 육체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하는데 외면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영화 속 자아의 모습이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본 <뷰티 인사이드>는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에도 고민의 지점을 의도적으로 한정 지은 답답한 영화였다. 제목처럼 안쪽까지 깊숙하게 들어가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한편 <뷰티 인사이드>는 개봉 3일 차인 22일까지 44만8215명의 관객을 모으며 <베테랑> <암살>에 이어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뷰티 인사이드 백감독 NEW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