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앤트맨>의 티저 포스터

영화 <앤트맨>의 티저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블의 새로운 영웅물로 기대를 모으며 지난 3일 개봉한 <앤트맨>이 한 주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점령했다. 일주일 만에 211만1829명의 관객을 모으며 17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이 영화의 존재감은 제목과는 전혀 딴판이다. <어벤져스>를 위시해 <아이언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의 인기 시리즈가 한국에 수많은 고정 팬을 만들어 놓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개미보다 작은 크기의 영웅이라는 색다른 설정이 관객 동원에 한 몫을 담당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한다. 등장인물의 겉모습만 새로울 뿐 틀에 박힌 캐릭터와 전형적인 설정이 기존 할리우드 오락 영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참신한 장면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고, 어디선가 본 듯한 수준을 넘어 명확하게 유사한 작품의 이름을 댈 수 있는 부분만 해도 10여 장면에 달한다. 새롭고 산뜻한 영웅물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영화는 출소한 전과자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어벤져스에 소속돼 적과 맞서 싸우는 기존 영웅과 달리 과학자 행크 핌의 지도 아래 영웅적 능력을 학습하는 스콧 랭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주요 줄기다. 물체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핌 입자를 활용해 몸의 크기를 줄이는 영웅의 활약상은 이제까지 봐온 영웅물과 전혀 다른 시각적 재미를 준다.

아이스크림 골라 담듯 다른 영화를 베껴 담다

 영화 <앤트맨>의 한 장면. 수트를 입은 스콧 랭(폴 러드 분)

영화 <앤트맨>의 한 장면. 수트를 입은 스콧 랭(폴 러드 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문제는 설정이 아닌 내용을 풀어가는 방법이다. 참신해지는 대신 진부하고 식상한 싸구려 영웅물이 되기로 작정한 듯 보이는 이 영화는 <아이언맨> <마스크 오브 조로> <아바타> <인터스텔라> <캐스트 어웨이> <이너스페이스> 등에서 익히 등장한 설정과 캐릭터를 골라 썼다.

기본적으로 수트로 인해 능력을 얻게 된다는 측면에서 <아이언맨>을 닮은 영화는 그 외양에서도 아이언맨과 상당 부분 흡사하다. 최첨단 기능성 수트로 무장한 아이언맨과 달리 앤트맨의 수트는 신체 크기를 조절하는 능력을 제외하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은 마틴 캠벨의 1998년 작 <마스크 오브 조로>와 닮았다. 노회한 왕년의 조로에게 집중적으로 수련 받은 끝에 새로운 조로로 거듭나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마침내 그가 스승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에서 <앤트맨>과 결말까지 흡사하다. 스승의 아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며, 주인공이 스승의 대를 이어 영웅으로 탄생하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이라는 점, 악당이 스승과 악연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 등이 두 영화를 데칼코마니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다.

<앤트맨>은 주인공의 교육과 성장을 주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티무르 베크맘베토브의 2008년작 <원티드>와도 유사하다. 주인공 웨슬리 깁슨이 비밀 암살조직에 속해 킬러로 훈련받는 과정을 그린 <원티드>에서는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폭스가 깁슨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지는데 이 부분은 <앤트맨>에서 스콧이 에반젤린 릴리가 연기한 호프에게 격투기술 등을 직접 교육받는 장면과 유사하다. 이외에도 <앤트맨>에선 스콧이 훈련받는 과정이 몇 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묘사되는데, 이는 <원티드> 등 영웅이 성장하는 서사와 매우 흡사하다.

<앤트맨>은 기본적인 설정이나 구도뿐 아니라 힘을 준 몇몇 장면에서도 다른 유명 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수트의 힘을 빌려 작아진 스콧이 개미인 안소니와 교감하고 그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은 <아바타>에서 제이크가 투르크막토를 타고 비행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안소니를 타고 적에게 날아가던 중 총에 맞아 안소니가 격추되는 장면은 <캐스트 어웨이>에 등장하는 윌슨과의 이별신을 오마주한 듯 여겨지기까지 한다. 뜬금없이 등장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울러 악당을 제압하고 양자의 크기까지 줄어들어 가던 주인공이 딸의 목소리를 듣고 제 크기를 찾는 장면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이 사랑의 힘으로 구조되던 순간을 연상시킨다. 제 크기를 줄여 악당과 상대한다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이너스페이스>나 <천녀유혼2> 등에서 익히 등장한 바 있다.

부족함이 역력한 페이튼 리드의 연출력

 영화 <앤트맨>의 한 장면. 핌 박사(마이클 더글라스 분), 호프(에반젤린 릴리 분)의 지도를 받는 스콧 랭(폴 러드 분)

영화 <앤트맨>의 한 장면. 핌 박사(마이클 더글라스 분), 호프(에반젤린 릴리 분)의 지도를 받는 스콧 랭(폴 러드 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처럼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구성과 설정, 에피소드 등을 재조합했는데 그 각각이 유사한 작품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여러 명의 각본가와 각색가, 스태프 등 방대한 제작진이 참여해 철저하게 상업적인 의도로 제작하는 히어로물의 특성상 감독 개인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토록 식상한 작품을 만든 데에는 감독인 페이튼 리드의 책임이 적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은 편집이었다. 빠르고 리드미컬한 편집을 의도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지나치게 짧아 툭툭 끊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영화가 관객이 웃기 전에 웃고, 울기 전에 울며, 긴장하기 전에 긴장하고, 풀어지기 전에 풀어지는 데에는 장면을 강박적으로 짧게 끊어냈던 편집의 탓이 컸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인물의 존재감도 미약했다. 마블의 다른 영웅과 달리 주인공으로 인지도가 낮은 폴 러드를 기용한 것부터 그를 보조하는 여자 캐릭터인 호프, 악당인 대런 크로스의 존재감도 실망스러웠다. 특히 주인공과 대응하는 악역이나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호프의 캐릭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영화의 구도 역시 전형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이나 악역을 보다 공감가 도록 만들거나 공감 가진 않더라도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했다면, 또는 호프를 끝까지 어느 편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모든 가능성을 닫은 채 전형적인 이야기로 나아갔기에 영화는 더욱 식상하고 지루했다.

참신하게 느껴진 건 단 한 장면이었다. 작아진 주인공과 악당이 장난감 기차 위에서 치열하게 격투를 벌이는 장면 말이다. 주인공이 괴력을 발휘해 열차 한량을 집어 들어 적을 향해 던지며 살벌하게 싸우던 장면에서 카메라가 포커스 아웃을 하자 장난감이 던져지고 쓰러지는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이어졌다. 이는 진부하고 식상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위트있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만족감보다는 실망감이 컸다. 마블의 새로운 영웅은 조금도 새롭지 않은 영화에서 고군분투했으나 기록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듯했다. 이토록 진부한 영화가 거두는 성공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제 영화는 예술의 영역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일까?

 영화 <앤트맨>의 한 장면. 왕개미 안소니를 타고 비행하려는 앤트맨(폴 러드 분)

영화 <앤트맨>의 한 장면. 왕개미 안소니를 타고 비행하려는 앤트맨(폴 러드 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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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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