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짝사랑> 스틸컷

영화 <짝사랑>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1.
짝사랑
한국 / 2021 / 29분
감독: 주영

인범(이한주 분)은 중장비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크게 모자라는 것도 없지만 내일에 대한 미래나 목표도 없는 삶. 지금 다니는 공장 역시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주변의 권유가 더 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하루종일 무언가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어느 날, 그런 그에게 하영(이상희 분)이 스며들듯 다가온다.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중장비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는 그녀. 인범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짝사랑>은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쇳소리가 끊이지 않고 분진이 마구 흩날리는 공간과 두 남녀의 사랑을 연결시킨 형태만 봐도 그렇다.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거나 특별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특히 이제 막 시작되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화가 선택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이 작품은 그런 지점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영화는 자신의 감정조차 어쩔 줄 모르는 이 작은 존재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철저히 감추며 끝까지 나아간다.

사랑은 이스트와도 같다. 한 인간의 삶을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완성되지 못한 형태나 혼자만의 감정도 예외는 아니다. 하영을 바라보는 인범 역시 마찬가지. 그의 하루는 이제 실없는 웃음으로 가득하고, 어떻게든 다가가기 위해 계획에도 없던 중장비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는 그다. 그런 인범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위치 역시 후면에서 측면으로, 측면에서 다시 전면으로 조금씩 옮겨간다. 내일을 기다리게 되고 미래를 약속하게 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아무런 의욕도 없이 땅만 내려다보며 출근 자전거를 타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퇴근하고 밥 같이 먹을래요? 친구 없는 사람끼리?"

이 작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짝사랑'의 위치가 옮겨가는 지점이다. 처음 인범으로 인해 시작된 외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확인해 가며 하나의 완성된 사랑이 되어가는 듯하다. 어떤 사고로 인해 그가 하영과 고대하던 봄날의 데이트에 가지 못하게 되기 직전까지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를 기다리는 하영은 그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홀로 서성이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짝사랑'의 의미는 완전히 그녀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지 않은 인범의 미래가 어떤 그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랑이 움트는 자리에서 대상을 홀로 바라보며 짝사랑을 시작한 인범과 반대로, 하영은 사랑이 저물어가는 자리에서 그 대상을 상실하며 남겨진 상태의 짝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스치듯 지나간다. 처음 이 공장에 들어온 남자의 그릇을 감싸고 있던 신문 뭉치 속 기사다. 언젠가 있었던 산업재해를 취재한 내용일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지점은, 바로 직전에 놓여 있었던 인범의 사고와 더불어 모두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죽음과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고 있다. 작품을 연출한 주영 감독의 목소리가 이 장면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실제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20년 2062명, 2021년 2080명, 2022년 2223명으로 매년 2000명을 웃돌고 있다.

사실 영화는 처음부터 오롯이 감출 생각이 없었다. 공장 설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던 반장 태수(양흥주 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책임자의 모습이다. 누가 봐도 교체가 필요해 보이지만 아직 쓸만하다던, 아마도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을 그 무신경한 태도로부터 인범의 마지막 장면은 시작된다. 감독이 들여다보고자 했던 모든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고 역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영화 <없는 이름> 스틸컷

영화 <없는 이름>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2.
없는 이름
한국 / 2022 / 18분
감독: 안도영

아영의 엄마 경애(오민애 분)는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오래 하지 못했던 일 중에 하나다. 아들의 학교가 멀어 통학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운전대를 잡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처음 운전하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경애는 경우가 조금 더 심하다. 손이 덜덜 떨려오고, 운전석에 앉으면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시험은 매번 떨어지고 만다. 한편, 아영의 친구 지원(임예은 분)도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경애와 지원은 그렇게 시험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만남을 갖게 된다. 오랜만의, 어색하면서도 낯선 만남이다.

영화 <없는 이름>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경애와 지원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영이 존재했다. 지금은 함께일 수 없다는 뜻이다. 수학여행에서 버스 사고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경애는 딸을 지원은 친구를 잃었다. 지금 여기 누군가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의 타이틀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부재(不在)를 전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한 사람은 남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또 한 사람은 자신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를 떨쳐내기 위해서 동일한 공간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꽤 인상 깊다. 반가운 것도 반갑지 않은 것도 아닌 경애와 지원의 태도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뚫고 나오는 마음을 제대로 붙잡기도, 상대의 아픔으로부터 느껴지는 위로와 안녕을 바라기에도 두 사람의 현재는 불안정하기만 하다. 서로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아직 아물지 못한 자리가 서로를 마냥 웃으며 반길 수 없게 만든다. 이제 만날 수도 없는 존재만을 교집합으로 하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서로의 곁을 맴돌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존재를 먼저 떠나보내고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다. 기억하는 일과 보듬어 내는 일 정도라고 해야 할까. 이 작품 역시 두 인물을 통해 이와 같은 행위들을 해내고자 한다. 경애를 사고 직전의 버스 안으로 데려다 놓는, 자신의 딸아이가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던 시간 속으로 보내는 신이 여기에 해당된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상상하고 그려냈을 엄마의 날들이 빼곡히 쌓여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되는 지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잔잔해질 수 있을까요?"

엄마는 모서리가 까맣게 그을린 딸의 명찰을 지원에게 건네고, 지원은 친구 아영에게 쓴 편지를 전달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남겨진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대답을 돌려받을 수 없는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를 지켜보고 보듬어내는 시간 속에서 그 파고는 조금씩 낮고 잔잔해질 것이고, 기억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그 이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2022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작입니다. 그동안의 기획전을 통해 소개된 작품 외에 별도로 선정된 72편의 작품이 2023년 11월과 12월 두 달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해당 영화는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짝사랑 없는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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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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