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케이팝 매정 TAI YOU 매장에 있는 BTS 멤버들의 사진을 담은 카드
목수정
BTS의 팬, 정확히는 BTS의 한 멤버의 광팬인 사춘기 딸을 지켜본 한 엄마는 그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에 빠진 딸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는데 그 대상이 실재하는 인물이 아닌 웹상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던 거죠. 한동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딸이 SNS를 통해 그 가수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 얘기만 했죠. 마치 그 가수가 우리와 함께 사는 것처럼. 그 열정이 한국어를 배우게 하고, 그가 먹는 한국음식을 먹게 하고… 더불어 나 역시 모르던 나라 한국을 알게 되었죠. 파리에 첫 공연이 있었을 땐 함께 공연을 보러갔어요. 벨기에에서 딸을 데리고 온 아빠도 있더군요. 두 번째 공연 땐 이웃의 한 아빠가 아이들 넷을 데리고 가주었죠.
그런데 2년쯤 지나니 아이의 태도가 바뀌더군요. 고교생이 되고, 주변에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는 애들이 생기면서, 딸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구체적이 된 거죠. 웹상에 있던 연인과 거리를 두고, 현실의 삶에 성큼 발을 딛기 시작했죠. 여전히 BTS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더 이상 감정적으로 밀착되어 있진 않더군요. 이젠 비판적 시선도 서슴지 않고 드러내죠."
BTS는 딸의 사춘기를 동반해준 가상의 연인이었고, 낯선 문화에 눈뜨게 해주었으며, 타인의 시선으로 프랑스 문화를 바라보게 해준 대체로 긍정적 경험이었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어느 시대에나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음악 그룹들이 있었다. 지금 BTS를 비롯한 케이팝 그룹들은 21세기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보이그룹, 걸그룹이 되었다. SNS와 유튜브가 전통 미디어의 권력을 넘어서는 시대에 이르러 소녀들 곁을 파고든 홍보 전략, 잘 훈련된 퍼포먼스, 그들이 노래를 통해 던진 적절한 메시지, 그렇게 해서 형성된 팬 그룹의 열정적 지지는 케이팝 돌풍이라는 지구적 현상을 만들어준 요소들이다.
기획사의 막대한 투자와 치밀한 계획, 철저한 훈련, 마케팅 전략에서 탄생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한 현실이 야기하는 어두운 측면들이 말하는 사건들이 케이팝의 성장을 궁극적으로 발목 잡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점이 팬들을 실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파리에 있는 국립동양어대학(INALCO) 한국어학과에도 케이팝, 케이드라마의 영향으로 매년 많은 신입생들이 모여들지만, 3학년이 되면 1학년 때 있던 학생의 10~20%만이 남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케이팝에 기반한 열정의 수명을 의미하기도 하고, 학문으로서의 한국학, 한국문화가 여전히 충분한 연구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2019년 발간된 프랑스출판조합(SNE)의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출판계가 번역 출간한 해외 출판물의 언어별 순위 1위는 영어(64%), 2위 일본어(12%), 3위 독일어(6%), 4위 이탈리아어(4%), 5위 스페인어(3%)였고 한국어는 순위권에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케이팝과 드라마를 타고 지구촌을 점령한 듯한 착각은 영상과 SNS로 소통하는 세대에서만 통하는 현실임을 알려주는 단적인 통계다. 케이팝과 드라마가 불러일으킨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는 상황인데 한국 정부가 문화 영역 전반에 대한 지원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쉽다.
케이팝이 선봉에 선 한류를 통해 우리가 문화강국이라는 자부심에 다가설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그러나 불가능하진 않은 가정이다. 김구가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전제가 된 생각은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임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착취와 희생을 재료삼아 행복을 생산하는 자본의 위선이 벗겨질 때, "높은 문화의 힘"을 향한 새로운 지평은 열릴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