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7 20:14최종 업데이트 22.07.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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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SF를 친밀하게 느끼도록, 은밀하게 접근해 진입장벽을 슬그머니 무너뜨립니다. 이를 위해 SF 읽는 모습을 생활밀착형으로 전달합니다.[편집자말]
영생을 부여받은 대신 불행해지는 이야기는 곳곳에 존재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소년 티토노스는 그를 사랑하게 된 새벽의 여신 에오스 덕분에 불사를 선물 받는다. 그러나 불로가 수반되지 않은 탓에 그는 영원히 늙으며 고통받는다. 급기야 귀뚜라미(혹은 매미)로 변해 생을 마친다.

이외에도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을 때 그를 모욕했다가 영원히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방황하는 유대인', 악마에게 저주를 받아 죽어서도 희망봉 근처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의 선장 '방황하는 네덜란드인(플라잉 더치맨)', 인어 고기를 먹고 불사가 되었다는 어부의 전설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끔찍한 불사 이야기는 할란 앨리슨의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비명을 질러야 한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세상이 멸망한 와중에도 악의로 가득한 수퍼컴퓨터에 의해 장난감으로 살아남아 죽지도 못하고 무한히 고통받는다.

영생이 저주가 된 이유

반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닐 게이먼의 그래픽노블 <샌드맨>에 등장하는 부분이다. 홉 개들링은 선술집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꿈'과 '죽음'의 주의를 끌고, 불사를 선물받는다.

'꿈'은 홉과 백 년마다 만나며 불사의 삶이 어떤지 묻는다. 홉은 행복과 불행을 모두 겪지만, 백 년을 거듭할 때마다 그래도 살아있는 쪽이 좋다고 말한다. 죽음은 바보짓이며, 살아있으면 늘 다음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는 결국 '꿈'과 친구가 된다.

앨리슨의 소설을 비롯해 불사가 저주가 되는 이유는 살아있음이 천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샌드맨>의 홉이 좋은 이유는 그가 삶을 기회로 여기며 즐기기 때문이다. 영생이 죽지 못하는 상태인지 삶이 지속되는 상태인지는 살아있는 사람의 상태에 달렸다.
 

책 '아마벨' 표지 ⓒ 아작


배지훈의 <아마벨>에 나오는 영생은 저주에 가깝다. 소설은 영생이 보편화된 사회를 다룬다. 뇌를 스캔하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클리니컬 이모털리티'의 보험에 가입하면 육체가 죽어도 죽기 전에 스캔된 뇌를 그대로 가지고 새로운 육체로 살아난다. 지구인의 절대다수가 죽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산다.

주인공 아마벨은 이들이 제대로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여긴다. 죽음을 격퇴한 사회는 타인의 상처에 잔혹하다. 시위대는 경찰에게 폭력진압을 받다 못해 살아있는 과녁이 된다. 거리 한복판에서 사람이 쓰러져 죽어도 당황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죽지 않는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특권을 내놓지 않고,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영영 가난하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옛날에 불타 사라졌다.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빼앗기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 이제 자살하는 겁쟁이들을 제외하면 삶을 끝낼 용기가 부족한 겁쟁이들만 남아 강제된 삶을 이어갔고 그 대신 모든 희망이 죽어갔다." (16쪽)

'살아있는 상태'란 대체 무엇인가

사람들이 진정으로 죽는 일이 사라져 '살인'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 아마벨은 살인과에 소속된 경찰로 일한다. 원래 할 일이 없어야 했지만, 아마벨이 실비라는 소녀를 만난 후로 다양한 종류의 살인이 일어난다. 클리니컬 이모털리티 가입자는 보험을 해약한 후 살해당하면 되살아나지 않으므로 정말로 죽는다. 정보를 이전하는 과정에 오류가 일어나도 제대로 되살아나지 못한다.

의식을 스캔하여 디지털 공간에 업로드한 '스캔드'는 서버 컴퓨터를 파괴하면 죽는다. 지능이 제한된 '애완인간'이나 스캔드가 이용하는 육체인 '라이드'는 제대로 살아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죽이면 죽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간이 아무리 확률을 수억 분의 일로 낮춰도 죽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상태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아마벨도 죽지 않고자 발버둥치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인 사람이다. 하지만 아마벨은 다른 불멸자와 달리 죽음을 곁에 둔다. 이 주인공은 지치고 짜증으로 가득한 늙은이 사이보그이고,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지만 자신이 언젠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을 운명임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비베레(memento vivere, 살 운명임을 기억하라)와 쌍을 이룬다. 그렇기에 아마벨의 핵심은 "생존자", "어떻게든 살아남는 자"이다.
 
"아마벨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은 우연이었다. 전쟁 당시 언제라도 죽을 수 있었다. 사고 당시 아마벨이 아니라 옆에 있던 아이가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언제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기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324쪽)
 
'삶'이라는 기회

죽음이 당연하다면 삶은 지극히 우연히 생기는 기회다. 아마벨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죽음의 무게를 안다. 소설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이는 아마벨뿐이다. 다른 살인자들은 유희를 즐기거나, 상대를 버러지 취급하거나, 자기합리화를 한다. 아마벨은 자유의지를 갖고, 자유의지를 지닌 자를 죽인다.
 
"'살인자는 저죠. 여러분은 그냥 내가 이놈을 죽일 동안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워주시면 되는 겁니다. 그걸 보통 생존본능이라고 부르죠. 인간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거고요.'

(중략) 아마벨은 스캔드들에게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사람답다는 것은 무서워할 줄 알고, 그리고 그런 무서운 것에 대비하고 피하고 싸워가며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아마벨은 생각했다.

군인다운 생각이었지만, 그런 조건을 만족해야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운 것을 모르는 것이 인간의 추악한 점이자 인간다움의 핵심이 아닐까. 아마벨은 내적 갈등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270쪽)

아마벨은 정의감에 취해 정답을 주장하진 않지만, 성격 나쁜 늙은이답게 잔소리는 좀 한다. 불멸자들은 죄다 노예의 개목걸이 신세 아니면 휴식 없는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화성 등에 사는 우주인과 다르게 지구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자유 없이, 모험심 없이 종 차원의 죽음을 맞는 중이다. 불로 없이 불멸로 도망친 자들이야말로 필멸할 것이다. 티토노스처럼, 다른 저주받은 불사자들처럼.

죽음은 비극이지만 영생은 무의미하다. 아마벨의 잔소리는 그리 참신한 내용은 아니다. 다만 아마벨이 구시렁거리는 모습은 친근하고, 소설은 하드보일드다운 액션과 하드SF다운 기술적 묘사 덕분에 취향에 맞기만 하면 읽기가 즐겁다. 그리고 절대 3인칭 대명사를 쓰지 않는 고집이 보이는데, 덕분에 다소 편견을 깨는 효과가 있었다.


아마벨: 영원의 그물

배지훈 (지은이), 아작(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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