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6 05:04최종 업데이트 22.08.1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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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픽사베이


얼마 전 의자에 다소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대로 넘어진 일이 있었다(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양반다리로 사무용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세를 고쳐 앉기를 강하게 권고한다). 처음에는 파스만 붙여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의자와 함께 쓰러지면서 손잡이에 옆구리를 박은 게 예상치 않게 부상으로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통증 때문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침대에서 굴러서 내려와야 했다.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아팠고 가만히 있다가도 근육이 수축되면 몸이 고꾸라질 정도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병원을 찾았더니 다행히 크게 다친 것은 아니고 갈비뼈에 미세하게 금이 간 정도라는 진단을 받았다.

금 간 뼈, 멍든 근육을 인위적으로 낫게 할 방법은 없었다. 진통제를 먹고 최대한 적게 움직이며 자연히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게 유일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출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늘 경험하지만 사람이 일단 아프면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주변 환경을 알아차리게 된다. 가령 도시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혹은 얼마나 많은 계단을 하루에 마주하게 되는지.


이번 일로 나는 사람이 직립 보행을 하는데 다리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근육들이 걷는 일에 필요하고 하필 내가 다친 부위도 그랬다. 뛰는 것은커녕 걷는 것조차 고통이었고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잘못 디디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이러니 서두르면 탈수 있는 지하철도 놓치고 코앞에서 버스를 보내는 일도 잦아졌다.

몸이 아프니 보이기 시작한 것

그러다 통증이 점점 가라앉아 겨우 뛰는 것까지는 가능해진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리고 얼마 전 폭우가 서울을 덮쳤고 대규모의 수해가 발생했다. 당시 나는 합정에서 저녁 약속에 참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내 기억에 신대방역에 도착하자 역 주변이 물에 잠겼으니 가급적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윽고 황망한 표정으로 온몸이 잔뜩 젖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고 그때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집에 도착해 뉴스를 보니 재난이 따로 없었다. 아니 그냥 재난이었다. 부산에 사는 가족들로부터 무사하냐고 전화가 왔고 단체 메신저를 통해 친구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에는 어쩌다보니 화를 면했다고 생각했는데 매우 아찔한 경험이었다. 저녁 약속 장소가 강남이었다면. 부상을 입은 지 얼마 안 돼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서울이 수해로 시름하는 와중에 SNS에서는 소소한 사건이 있었다. 계급이나 장애 유무에 따라 재난은 불평등하게 경험될 수밖에 없고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욱 치명인 상황에 놓인다는 주장을 누군가 반박하며 강남 또한 침수 피해를 겪었다고 한 것이다.

그 사람은 재난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일축했다. 그 발언이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사실 강남은 이번 수해의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이긴 하다. 물에 잠긴 차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아예 퇴근을 못하고 근처 숙박업소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상점들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어떤 고난도 가벼이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지역에서 사람들이 겪었던 일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재난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말에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재난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에서 수도방위사령부 장병들이 침수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령 다친 몸으로 수해의 한복판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고 적었는데, 사실 나의 경우 거동이 불편한 상태가 일시적이겠지만 이게 일상인 사람들도 있다.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나이든 사람 경우 도시의 속도와 구조가 버겁고 적응하기 어려울 확률이 높다. 그냥 도시에서 이동하는 것도 힘든 사람들이 폭우로 위험이 다가오는 순간에 신속하게 화를 면할 수 있을까. 그럴 거 같지는 않다.

계급도 영향을 미친다. 이번 폭우로 물이 넘치는 와중에 반지하집에서 탈출하지 못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이런 위험 말고도 반지하는 습기부터 시작해 채광까지 주거용으로는 단점이 많은 공간이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걸 모르는 게 아니다.

반지하집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개인적으로는 옥탑에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과 취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까지 지내던 곳이었는데, 침대와 옷장 그리고 책상과 싱크대를 놓으면 앉을 공간도 별로 나오지 않을 만큼 좁은 곳이었다. 그 집의 유일한 장점은 그나마 옥상에 있기 때문에 수해 걱정은 크게 없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강풍이었다.

애초에 물탱크가 있던 걸 밀고 추가로 올린 건물이라 방 자체도 안정감이 없었는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아크릴로 된 지붕을 씌웠는데 이게 단단하게 붙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매번 보수를 해도 태풍이 오면 가벼운 아크릴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반쯤 떨어져 출렁이기 일쑤였다. 통로의 지붕이 바람에 춤을 추다 쾅쾅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날이면 불안감에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 떨어져 날아갈지도 모르는 아크릴 지붕을 태풍 속에서 보수할 엄두도 안 났다. 그럼에도 주거비는커녕 생활비도 빠듯한 처지에 도리가 없었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려면 그 집에서라도 버티는 수밖에.

평등한 사회가 모두에게 안전하다

재난은 불평등하게 경험된다. 사회적으로 약한 고리에 위치한 사람들을 더 큰 위험으로 내몬다. 불평등한 사회는 구성원들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걸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진단하지 않으면 필요한 해법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영향인지 사람들은 멸망이라고 하면 모든 인류가 한 날 한 시에 깔끔하게 절멸하는 장면을 상상하고는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점점 높아지는 기온과 이로 인한 이상 기후는 사람들을 죽지 않을 만큼 서서히 옥죄다가 지겨울 정도로 고통을 주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주거 환경과 수해나 수위 상승으로 인한 침수에 비교적 안전한 지역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이번 수해가 몰고 온 참상은 그런 미래의 현재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사회는 붕괴 상태라고 판단해도 할 말이 없다. 다시금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고 평등한 사회에 점점 다가가 모두가 안전한 상태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든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시 구조,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안전한 주거 환경의 표준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해야 할 일은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살피는 것이다. 그 자리가 이 사회에서 어느 곳이 제일 취약한지를 가장 잘 알려준다. 나는 지금 주거 취약 계층에게 몰린 정치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단순히 순간의 비극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책임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장기적인 고민과 실천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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