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8 13:21최종 업데이트 23.04.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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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에이아이(OpenAI)의 인공지능형 이미지 생성 모델인 달리(DALL·E)로 구현한 이미지 ⓒ DALL·E


"오랜만에 철수를 만났는데, 살이 엄청 빠졌더라구!"
"걔는 지난번에 이혼했대. 딱하지 뭐야."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강남에 땅을 샀대!"
"아니 글쎄 쟤는 무슨 공부를 한대. 취업 못해 큰일이야"
"옆집 순이가 큰 병에 걸렸다나 봐. 어쩐다니."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유독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 비둘기처럼 타인의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을 통해 예전 직장 동료의 소식, 같이 일하지만 친하지는 않은 동료의 상황, 동네 사람들의 안부나 먼 친척의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내가 조금씩은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게 들린다.


태어날 때부터 관계를 통해 생존하고 성장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고 식욕, 수면욕과 같은 생존에 필요한 생리적 욕구만큼이나 중요한 욕구로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 즉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기본적 욕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그 정도가 과할 때다. 종종 내부 세계란 없고, 오로지 외부 세계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과도하게 타인을 신경 쓰고 과도하게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 말이다.

과도하게 타인에게 관심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으로부터 직장에서 내가 본 적 없는 동료의 실수를 전해 들을 때가 있다. 실수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걱정하는 것처럼 시작한 대화가 그 사람의 다른 부족함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듣다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보다 그 동료의 부족함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비교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 걔보단 내가 낫지'와 같은.

타인의 부족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남을 험담하는 일은 즐겁다. 다른 사람의 못난 모습에 집중하다 보면 잠시나마 내가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때, 내 삶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의 부족함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나의 부족함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느낌일 뿐,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남을 깎아내린다고 해서 내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보고 들은 타인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일 뿐, 그 사람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복잡한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비교를 통해 내 위치를 확인하는 일은 간편해 보이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묻지도 않은 타인의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즐거움보다는 찜찜함이 남는다. 한참 대화했지만, 내가 만난 상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상함 같은 것 말이다. 왜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지, 그 사람이 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아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타인의 모습은 인생의 기준 될 수 없어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자신만의 삶의 기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하며 자기 생각을 확인받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삶의 기준이 없어서 나타나는 행동 아닐까 싶다. 가끔 내가 뒷담화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을 때, 순식간에 입장이 바뀌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 본인의 생각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을 통해 또다시 변경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기준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삶을 따라 하고 나빠 보이는 삶을 거부하는 것으로 인생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준을 잡기 어려울 때 가장 쉬운 것은 '저렇게 살지 않겠다' 혹은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식의 비교군을 잡는 것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역량과 기회가 다른데, 타인의 상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늘 중심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웃이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는가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이 자유를 얻는다"고 말했다. 비교가 늘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비교의 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일 때, 내가 이룬 것과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 비교는 효과적일 수 있다.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좋다. 재밌게 본 영화에 대해, 읽고 있는 책이나 듣고 있는 음악에 대해, 즐겨하는 운동과 맛있게 먹은 음식에 대해,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에 대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서는 좋은 에너지가 흐른다. 덩달아 힘이 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묻지도 않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기서 그만 멈추자.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 중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할지 고민해 보자. 만남이 더 즐거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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