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30 17:09최종 업데이트 23.06.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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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다시 간 여행지 교토 ⓒ 양민영


앞서 걷는 A를 따라서 '밀크'라는 바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날 저녁에만 몇 잔째인지 모를 술을 골랐다. 뿔테 안경을 낀 바텐더가 핸드폰에 저장된 아이돌그룹 뉴진스 멤버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의 열렬한 팬이라고 열을 올렸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중년 여성 두 명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봤다. 

그들과 이번 여행에 관해서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우리는 서울에서 주짓수를 배우고 있고 바로 전날에도 주짓수 도장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두 여성 가운데 하나가 한국어로 '대박'이라고 외쳤다. 바텐더는 두 손을 모으더니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살해하지 말아 주세요."


쇼퍼라면 여행 중에도 쇼핑하느라 바쁘듯 운동광은 여행을 앞두고 운동할 궁리부터 한다. 예를 들어, 크로스핏터(고강도 기능성 운동인 크로스핏을 즐기는 사람) 사이에서는 '스로인(throw in)'이라고 타지역 박스(크로스핏 전용 체육관)에 찾아가 운동하는 문화가 있다. 주짓떼라(주짓수를 수련하는 여성)인 우리는 일본 오사카 중심부에 위치한 주짓수 도장 방문 계획을 세웠고 그것도 모자라서 구글이 추천한 백 년 전통의 유도관도 관심 있게 훑어봤다. 

그러나 짧은 여행을 운동으로만 채우자니 아쉬웠다. 우리에겐 과거에 제각각 오사카를 여행한 이력이 있었다. 그때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고 싶은 곳을 골라 점을 찍다 보니 어느새 구글 지도 위에 붉은 점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A는 위스키 바와 사케 양조장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간사이 지역은 '일본의 부엌'이라며 식당부터 빠르게 선점했다. 결국 수많은 붉은 점이 내버려질 위기였다.

"언니가 가고 싶은 곳부터 가요." 출발 전 공항에서 대기하던 중에 A가 말했다. 의견이 갈리면 언제나 먼저 물러서는, 고집을 세우는 법이 없던 그. 온순하고 부드러운 한마디에 문득 부끄러워져서 나도 얼른 물러났다. 애초에 오사카 여행이 가능했던 것도 기꺼이 동행해 준 A 덕이었다. 그가 아니면 누가 여행에 주짓수, 술, 음식을 칵테일처럼 뒤섞은, 보기만 해도 피곤한 일정에 동참하겠는가.

나밖에 모르는 중에도 A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이유가 또 있다. 내가 잔뜩 얼어붙어서 주짓수 도장을 들락거릴 때 A는 블루벨트를 매고 있었다. 여성의 수가 많지 않은 도장에서, 체구도 크지 않은 그가 남자들과 스파링하는 모습은 초짜로부터 선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A는 나의 주짓수 여신이었다. 

여행의 동행, 인생의 동행 

기억을 두서없이 떠올리는 사이에 비행기가 간사이 국제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와 해안 지역 특유의 다습한 공기를 마셨다. 아침 일찍 비가 내렸는지 하늘이 흐리고 곳곳에 빗물이 웅덩이를 이룬 채 고여 있었다. 이곳에 다시 오다니, 자그마치 8년 만에.

8년 전 나는 지금의 A와 비슷한 나이였고 인생이 어느 정도 결정됐다고 생각했다. 그건 중의적인 의미의 동행인 B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여행의 동행인 동시에 인생의 동행으로 내정돼 있었다. 

그와 만나는 동안 나는 구체적인 인생의 장면을 수없이 많이 구상했고 모든 장면마다 그가 등장했다. 불과 몇 시간 뒤의 일정도 수시로 바꿀 정도로 변덕스러운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내가 한 권의 책이라면 B가 그 책을 가장 깊이 해석하고 여러 번 읽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던 거다. 

오사카는 그 믿음이 허상임을 깨닫고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중에 떠난 여행지였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비극적인 징후가 한둘이 아니었다. 사진 속 나는 머리카락을 버건디 컬러로 물들이고 웃음과 울음 사이의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들끓는 불만을 생전 시도하지 않던 방식으로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 여행 내내 둘 사이의 공백이 커지는 걸 방치한 채 먹기만 했다. B는 단순한 미식가가 아니라, 직업적으로 먹는 사람이었다. 서울에서도 주말마다 짐짝처럼 조수석에 실려서 그가 점찍은 식당을 도는 게 일이었다. 어쩌다가 해외에 가면 전지훈련에 돌입한 운동선수들처럼 하루에 여섯 일곱 끼를 먹어 치웠다. 

B의 허기에는 한도가 없었으나 그는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탐식의 죗값도 치르지 않았다. 내가 빠져들었던 두려움을 모르는 면모는 그때도 여전했지만, 다음 식당을 향해서 빠르게 걷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브레이크 없는 차에서 그만 내리고 싶다는 것. 그러나 문을 열고 뛰어내리자니 두렵고 계속 달리자니 고통스러웠다. 

주짓수의 답, 인생의 답
 

사케 양조장 ⓒ 양민영

 
일정에서 주짓수를 완전히 빼버린 날, 우리는 낮부터 사케 양조장에 3000엔(2만 7000원)을 내고 작은 사이즈의 사케를 열 잔쯤 마셨다. 고급술을 맛본 건 아니지만 미묘한 맛의 차이를 알아차리려고 오감을 활짝 여는 시도가 재미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1958년에 문을 연, 난바 한복판에 위치한 오래된 바였다. 그 전에 기온 거리 방향으로 취기가 오른 채 한 시간쯤 걸었다. 제법 큰 하천을 따라서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아코디언을 연주했다. 5월인데도 한여름처럼 해가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약간은 후덥한 와중에 드문드문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인생의 결정이라는 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지난 8년간 무수히 많은 결정을 내렸지만 뜻대로 이뤄진 건 거의 없다. 과거에 오사카를 떠나면서 내가 8년 후에 이곳을, 머리를 짧게 자른 채 주짓수 도복을 챙겨서 다시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인간 고양이'라고 놀리는, 어떤 면면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여성과 쉴 새 없이 돌아다닐지도.

마지막 날 아침이 밝고 서둘러 주짓수 도장에 갔다. 드디어 헤드 코치인 다나카 관장님을 만났다. 인자한 얼굴로 반겨준 관장님을 만나서 기뻤지만 동시에 심각한 숙취가 발동했다. 스파링 중에 호흡이 빨라지고 상체를 짓눌릴 때마다 정신이 아득했다.

"사람은 갑자기 성장하기 어렵고, 또 반복에는 반드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잊지 말아요. 주짓수는 심오합니다. 막연한 마음이 들면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또 앞을 보고 훈련하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최악입니다."

수련이 너무 막막하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어리석은 블루벨트에게 관장님이 답했다. 그건 주짓수의 답이면서 인생의 답이기도 했다. 현답을 숙취 없이 맑은 정신으로 듣지 못하는 것 또한 인생이지만.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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