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3 18:17최종 업데이트 23.11.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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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지난 10월 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김포시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메가시티 서울은 연일 언론 지면을 달구고 있다. 처음에는 김포시 서울 편입으로 출발했던 것이 고양·구리·광명·하남 등 서울 인근 지자체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발전했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나오자, 부산과 광주에서도 메가시티를 만들겠다는 구상까지 나왔다. 여당 대표의 한마디 말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초대형 이슈가 된 적이 과거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몇 군데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의 60% 가까이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1일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 58.6%, 5일 알앤써치-CBS노컷뉴스 55.5%, 6일 여론조사꽃 59%). 그것이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선거용 제안'에 불과하다는 의견은 그보다 더 높아 68%나 됐다(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전국지표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이 구상을 계속해서 밀고 나갈 태세다. 


이쯤 되면 메가시티 서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구상은 국가 경영을 책임진 세력이라면 결코 내놓을 수 없는 '빵점 짜리' 공약이다. 왜 그런지 이야기 해보자.

졸속의 정책 구상
 

조경태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장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서 특위 위원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 남소연


여러 사람이 비판했듯이, 이 구상은 졸속 그 자체다. 처음 제안한 김포시에 관련 보고서 한 건이 없고, 관련 표 하나도 없었다고 하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냥 누군가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김기현 대표의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며칠 사이에 김포시 편입이 고양·구리·하남 등 서울 인근 지자체의 편입으로, 그리고 부산과 광주에서의 메가시티 추진으로 확대되고, 국민의힘 내 TF팀의 이름이 가칭 '수도권 주민편익 개선 특별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는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로 바뀐 데서 구상의 졸속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관련 기사: '수도권' 떼고 '뉴시티' 띄운 여당... '편가르기 중독' 반발한 야당https://omn.kr/26bdw)

이를 두고 <동아일보>의 김순덕 대기자는 최근 칼럼에서 "국가 운영이나 발전에 대한 비전도, 공부도 없는 정부 여당"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평소 <동아일보>의 논조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비난인데(최근 김 기자는 윤 정부 비판 칼럼을 계속 써서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하다), 그만큼 이번 구상이 어처구니없는 내용임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탐욕의 정치'를 부활시키려 하다니

메가시티 서울 구상에는 유권자의 탐욕을 자극해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물론 어떤 정치세력이건 선거를 앞두면 유권자들에게 사적 이익을 약속하는 정책 공약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지역개발 공약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단지 한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 국가 전체의 공간 배치를 뒤흔들 테니 심각한 문제다. 

메가시티 구상을 이명박 정부의 뉴타운 정책과 유사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탐욕의 정치를 활용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번 구상은 뉴타운 공약을 넘어선다. 과거 뉴타운 공약은 영향이 한 지역에 한정되었지만,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국가 전체에 여파가 미친다.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부동산 문제가 더욱 악화해, 지방소멸, 불평등, 저출산 등 지금 우리 사회를 옥죄는 문제들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과거의 군사 독재 정권이라 할지라도 감히 이런 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섰다면, 최소한의 공공심과 애국심을 견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 여권은 총선 필패를 예견해서 그런지 이런 마음을 내팽개친 듯하다. 오죽하면 김순덕 기자가 "국민을 그저 천박한 욕망 덩어리처럼 대하는 듯해 답답하고 참담하다"고 썼겠는가.

헌법정신과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에 위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메가시티 구상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주지하듯이 대한민국 헌법은 '균형'을 강조한다. 제119조 2항에서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한다고 하고, 제120조에서 "국가는 (국토와 자원의) 균형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하는가 하면, 제122조에서는 "국가는 (…)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라고 한다. 또 제123조 2항에서는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라고도 한다. 

현행 헌법 경제 장(제9장)에는 총 9개 조가 있는데, 그 가운데 4개 조에 "균형있는"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헌법이 얼마나 균형발전을 중시하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역대 정부가 형식적이건 실질적이건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것은 나름대로 헌법정신을 따르려고 한 것이었다. 부산과 광주에서 메가시티를 추진한다는 방안을 덧붙이긴 했으나 그것은 곁다리일 뿐, 메가시티 구상은 사실상 서울일극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헌법정신에 반할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표방한 국정 철학에도 위배된다. 2022년 5월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6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잡았고, 그 목표 아래 "사는 곳의 차이가 기회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멈추고, '수도권 쏠림 - 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해 지방시대위원회를 만든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을 터이다. 메가시티 서울 구상이 한참 핫이슈로 부각되는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서 '이제는 지방시대'를 선언했다. 지향점이 정반대인 두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고민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김포농협에서 열린 '김포 한강2 공공주택지구' 연합주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 및 주민설명회에 김포 서울 편입 추진을 환영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세워져있다. ⓒ 연합뉴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을 놓고 "총선을 겨냥한 대국민 사기극이며, 세계적 조롱거리로 실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졸속적이고, 국민을 오도하며, 헌법정신을 위반할뿐더러 스스로 내세운 국정 철학조차 무시하니, 나는 김 지사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빵점 짜리 구상이 과연 현실화할 수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니, 이 구상은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사실 많은 국민은 이 구상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뉴타운 공약을 따라갔다가,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참담한 처지에 빠졌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합리적으로만 판단하지는 않으니 그것이 문제다. 한번 탐심을 자극받으면,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길로 달려간다. 메가시티 서울 구상에 김포시 주민들과 서울 인근 지자체 주민들이 현혹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이 구상의 본질을 밝히면서 다시 한번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깨어있는 시민의 애국심이 필요하다

헨리 조지는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깨어있는 시민의 이해심과 애국심이 사회를 살린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음성이 바로 지금 한국 국민과 경기도 주민의 마음속에 메아리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간 행동의 근본 동기를 이기심이라고 보는 철학은 단견이다. 이러한 철학은 이 세상에 가득 찬 많은 사실들을 외면한다. 이 철학은 현재도 모르고 과거의 역사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의 견해이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무엇에 호소하는가? 돈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애국심에 호소한다.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심에 호소한다. 이기심은 강력하며 매우 큰 결과를 낳을 수 있기는 하지만, 비유하자면 기계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는 화학적인 힘과 같이 녹이고 융합하고 감싸면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인간은 목숨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할 때의 모든 것은 사익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차원 높은 동기에 충실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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