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0 14:56최종 업데이트 23.11.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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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every1 채널에서 지난 14일 방영한 '성지순례'에서는 성직자들에게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 MBC every1 유튜브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 동료들을 만나면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면 절대로 인권운동 단체에서 일한다고 말하지 말 것. 두 번째, 특히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에 있다고는 더욱 밝히지 말 것. 사람들이 시민단체 활동가나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이어서 그런 걸까. 딱히 그렇지는 않다.

사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온라인에서 과잉 표출되는 반감에 비하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에게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인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대체로 그렇다. 사람들은 가족, 동료, 친구 중에 성소수자 당사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결국 '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할 때나 무언가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사람들 앞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라고 밝히지 않는 건 오히려 다른 이유에서다. 직업을 밝히는 순간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한다. 특히나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하여 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반가울 때도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성소수자와 관련된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궁금해하고 우리의 답을 들어준다면 그건 활동가로서 큰 보람이 느껴지는 일이다.

하지만 활동가들 또한 직업인이기도 하고 24시간을 업무 상태로 살지는 않는다. 주말 오후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사람들을 만났는데 누군가 '있잖아, 내가 얼마 전에 뉴스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가 광장에서 열리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집에서 낮잠이나 잘걸 그랬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성직자에게 성소수자의 존재를 질문하다

최근 MBC every1 채널에서 '성지순례'라는 예능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성직자들을 모아 이들이 속세의 문화를 체험하게 만드는 기획이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었다. 스마트폰만 켜면 바다 건너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성직자들이라고 그렇게 속세에서 떨어져 산다고 볼 수 있을까. 하다못해 목사는 이미 속세의 중심에 터를 잡고 목회를 하는 사람들인데?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프로그램이 만드는 그림이 재밌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제복과 승려복을 입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헌팅포차'에 앉아 있거나 '숏폼 챌린지'에 도전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방송된 에피소드는 '좋아요의 성지'를 찾는다는 컨셉으로 꾸려졌다. 세 명의 성직자 출연진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끄는 여러 지역을 방문했고 그중에 '이태원' 또한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태원이 성소수자들이 주로 모이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술집과 클럽 등이 밀집되어 있다 보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성직자들의 생각을 묻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방송이었다. 출연진들이 자신의 속한 종교의 교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보다 '동성애는 죄라고 되어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한 부분은 아쉬웠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나 인권을 부정해서는 안 되며 종교 또한 시대에 맞춰가야 한다고 말한 부분은 좋았다. 특히 출연진 중 한 사람인 차성진 목사는 교회 내에서 도는 성소수자에 대한 가짜뉴스와 적대를 문제점으로 짚었는데, 이건 상당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성직자에게 성소수자를 질문하는 건 폭력?
 

MBC every1 채널에서 지난 14일 방영한 '성지순례'. 유정선 신부는 이날 방송에서 성소수자와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 "종교인들한테는 너무 폭력적인 질문이다"라고 말했다. ⓒ MBC every1 유튜브

 
또 다른 맥락에서 흥미를 끈 이야기도 있었다. 방송에 출연한 유정선 신부는 성소수자 이슈와 관련하여 종교인들에게 답을 구하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언급했다. 여러 언론부터 시작해서 당사자인 사람들조차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모습대로 살아도 되는지 묻는다는 것이다. 유 신부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면서 성소수자들이 존재하는 것도 '반대'하는 사람들도 모두 자연스럽게 있지 않냐는 내용의 말을 전했다.

글쎄, 누군가 자연히 성소수자로 존재하는 것과 그들의 존재를 부득불 '반대'하는 현상을 과연 대등하게 놓고 이야기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두 가지를 놓고 '이쪽도 그럴 수 있고 저쪽도 그럴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건 종교인이기에 앞서 시민으로서도 다소 무책임한 태도가 아닌가. 성소수자의 자리에 '인종·출신·성별·종교' 등을 놓고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질문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왜 하필 사람들은 종교인들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까. 정말로 윤리적인 답을 구하기 위해서였을까. 기독교윤리실천연구소의 2023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조사 대상 중 21%에 불과했다. 천주교·기독교·불교 중 어떤 종교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각각 21.4%, 16.5%, 15.7%의 응답률이 기록되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기타 혹은 없음이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이건 대형 교계가 보여온 알력 다툼과 내부 비리 등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급속도로 세속화가 진행되는 세상에서 종교의 무게감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종교에서 진지하게 답을 구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질문은 정말로 폭력이었을까
 

2016년 6월 11일,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 옆에서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이들의 모습. ⓒ 이희훈

 
앞서 농담처럼 사람들에게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한다고 말하면 온갖 질문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확고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걸 가질 필요성조차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럼 질문은 왜 할까. 그냥 궁금한 것이다. 성소수자와 관련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입장을 내고 집회와 시위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성소수자도 활동가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마침 당사자가 앞에 있다고 하니 물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성직자들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계 종교인들에게 사람들이 계속해서 성소수자와 관련한 질문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때로 이들은 성소수자 당사자들보다 더욱 요란하게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보수 개신교계가 퀴어퍼레이드를 비롯하여 성소수자와 관련된 행사만 있으면 십자가를 들고나와 반대 집회를 하고 교회 기반 언론사를 만들어서 시도 때도 없이 혐오성 기사를 쏟아내며 아예 단톡방을 만들어서 성소수자에 대한 가짜뉴스를 살포하고 다닌 건 이미 오랜 역사이다. 동성애자인 나보다 이 사람들이 동성애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그러니 이에 대한 가치판단 여부를 떠나서 목사가 코앞에 있으면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지 않겠는가? 평소에 그렇게 떠들고 다녔는데 말이다. 개신교와 한뿌리를 공유하고 주기적으로 '동성애자도 성직자를 해도 되네 마네, 트랜스젠더도 하나님의 자식이 맞다 아니다, 성소수자도 세례받을 수 있나 없나'와 같은 갑론을박을 펴는 천주교도 비슷한 선상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시도 때도 없이 받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나 또한 방송에서 유경선 신부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질문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언제까지 '찬성과 반대'라는 방식으로만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인가. 하지만 성직자를 향한 성소수자의 존재와 관련한 질문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건 다른 문제다. 사람들은 윤리적인 답을 구하거나 혹은 성직자를 시험에 빠트리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그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럴 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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