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과장하자면, 이 영화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의 <고단한 삶>은 상영 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어가며 봐야 할 만큼 관객에게 내재적인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1973년, 이란 감독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Sohrab Shahid Saless)가 자신의 첫 장편영화로 찍은 <고단한 삶(A Simple Event)>에서, 사운드 트랙의 효과음과 배경음악은 극도로 억제되어 있으며 구식 렌즈를 통해 거친 질감으로 투영된 적색조의 영상들은 황량함만을 가득 품고 있다. 그럼에도 왜 나는 그토록 두근거리는 긴장감을 품고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란의 한 북부 도시, 열 한 살의 소년 모하마드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마을의 풍경들은 카메라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언제나 '그 곳'에 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저들이 살아가는 화면 속의 시공간과 객석 사이의 거리감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3D 환상 체험'을 제공해주겠다는 현대 과학영화들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30여년 전 이란의 한 시골 마을.

영화의 주인공 모하마드는 여지껏 내가 (영화의 안과 밖 모두를 통틀어) 보아 온 여러 '어린 소년'의 이미지 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아이임에 틀림없다. <400번의 구타>나 <자전거 도둑>과 비슷한 시기의 유럽 영화에서 보여지는 도시 소년의 모습들과도 무척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모하마드를 알고 싶다면, 역시나 영화를 보는 수밖엔 없다.

주인공 모하마드를 연기한 실제 소년 모하마드 자마니(Mohammad Zamani)의 강렬한 연기는, 연기 그 이상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재현해낼 수 없는 파토스를 곳곳에서 발산한다. 바로 여기에서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영상미학 고유의 미덕은 사정없이 뿜어져 나온다. 종종 호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넣고는 곧은 자세로 땅을 주시하며 뚜걱뚜걱 길을 걸어가는 모하마드의 존재감은, '고난한 삶'의 한 단면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요소로서의 '강인한 모습'으로 기능한다.

또한 집으로 돌아와 그 작은 체구를 부지런히 움직여 빵을 찢어서는 자신의 '식탁'인 단칸방 창턱에 앉아 우물우물 씹는 장면은, 이 아이의 낙관적인 생명력과 더불어 여전히 저들의 '고난한 삶' 속에 놓인 비극성을 절실히 드러낸다. 그렇기에 소년의 행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슬픔이니 어쩌니 하는 수식어들보다도 그저 가슴이 멎는 것 같은 적적함을 느끼게 된다. 나 스스로에게 '왜 이토록 심장이 두근거리지?'라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영화의 내러티브는 단순히 한 소년의 '피폐한 환경'과 그것을 묵묵히 이겨내는 '잡초 근성'을 밋밋하게 보여주는, 그렇고 그런 식의 레퍼토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얼마 되지도 않는 물고기를 밀수로 잡아와 아들에게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도록 하고는 술집에서 저녁 내내 술만 마시는 아버지, 위경련 등의 종합병으로 하루종일 단칸방 구석에서 음식 준비와 병치레만을 해가며 죽은 사람마냥 살아가는 어머니, 그리고 서로 대화가 없는 부모들에게 그 역시 어떠한 응석도 부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할 일을 (비록 학교라는 체제에 쉽게 순응하진 못하지만) 수행하는 모하마드.

이들의 반복되는 행위들을, 딱 실제 삶이 허락하는 변화의 부분만큼만 허락하며 계속적으로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에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만큼의 삶의 애잔한 기운들이 녹아들어 있는 듯하다.

영화는 비단 한 가족의 비극적 소사만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가족사의 외부에 있는 소재들 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모하마드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드러나는 행태들이다. 당시 이란의 교육 커리큘럼이 품고 있던 국가주의적 억압성과 애국심의 고취를 위한 관료들의 노력, 자신의 학생들에게 지극히도 무관심한 중간계급 교사로서의 소심한 모습 등은 영화가 보여주는 고단한 삶의 편린들과 사회적 제도 상의 문제들을 직간접적으로 접목시켜 고민해보도록 관객을 종용한다.

영화의 첫 장면을 비롯해 중반, 후반부에서도 간간이 들려오는 기차역의 경적 소리는, 현재의 먹먹한 삶 속에서 그나마 꿈에서라도 도주해보고 싶은 저들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소년 모하마드는 언제나처럼 늘 고개를 숙인 채 뛰어다니고,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으며, 사람들 앞에서는 크고 동그란 두 눈을 부릅 뜨고 상대방을 응시하곤 한다.

그리고 이 어린 소년의 눈빛과 행동은 보는 이에게 숨이 막힐 듯한 감정의 울림을 전달한다. 이것은 물론 내 경험에 한정된 서술일 터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직접 보고 '그 무언가'를 느낀 당신이라면, 영화 속 모하마드가 끊임없이 관객을 향해 던지고 있는 삶의 모순적 슬픔과 그것에 관한 감정선, 그리고 그것을 몸으로 견디며 한편으론 즐겨내고 있는 저 소년의 활력에 대해 아마도 그리 쉽게 밋밋한 시선만을 보내진 못할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관객에게 있어 최소한의 수확으로 '한 소년의 삶'을 제공하고, 최대한의 수확으로는 '고단한 삶'이 가지는 절대 미학에 가까운 전형을 경험토록 해준다.
2005-10-16 16:43 ⓒ 2007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