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범


1950년대 우토로 마을 1950년대 항공사진으로 촬영된 우토로 마을 모습

▲ 1950년대 우토로 마을 1950년대 항공사진으로 촬영된 우토로 마을 모습 ⓒ 지구촌동포연대


우토로 마을 전경 1941년 이후 일제에 징용된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우토로 마을 전경이다.  <아름다운 게토>의 한 장면

▲ 우토로 마을 전경 1941년 이후 일제에 징용된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우토로 마을 전경이다. <아름다운 게토>의 한 장면 ⓒ 김재범


1941년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에 징용된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이 자연스럽게 정착해 형성된 마을. 일제 식민치하의 치욕스런 역사와 거기에서 파생된 민족사적 아픔을 간직한 곳. 땅 소유주의 토지 매각으로 강제철거로 내 몰릴 위기에 처한 상황. 절박한 현실이 고국에 알려지며 일기 시작한 국민들의 모금과 우여곡절 끝에 나온 정부의 지원. 수십 년 고통의 시간은 차츰 희망으로 변해 가는데….

이처럼 영화 같은 현실은 일본 우토로 마을의 이야기다. 이런 스토리 라인에 영화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 우토로 문제가 그 해결을 위해 분주한 가운데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이 준비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우토로 문제는 이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한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1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영상에 담겨왔고, 문제의 해결을 앞두고 그 작업 또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며 마침표를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토로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아름다운 게토>는 1999년 8월부터 일본을 오가며 담은 우토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제에 국권을 유린당한 치욕의 역사 속에 강제로 일본에 징집됐던 조선인들과 그들의 정착으로 생겨난 마을. 1세대부터 시작해 2,3,4세들까지 각기 다른 그들의 삶, 그들을 돕는 일본인들과 함께 투쟁하던 과정, 그리고 고국의 도움을 요청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이 영화는 담고 있다.

그곳에 버림받은 시간들이 고인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우토로 마을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중인 우토로의 학생들. <아름다운 게토>의 한 장면

▲ 우토로 마을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중인 우토로의 학생들. <아름다운 게토>의 한 장면 ⓒ 김재범


"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만으로 그 아픔이 전해졌으면 한다."

우토로를 영상에 담은 감독의 희망처럼,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힘없던 조국으로 인해 겪었던 아픔을 <아름다운 게토>는 그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의 육성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질기디 질긴 민중성으로 그 풍상을 이겨내 온 동포들의 모습을 선보이며, 그들을 지켜내야 하는 의미를 말해준다.

'그곳에 가면 버림받은 시간들이 고여 있는 아주 오래된 우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우물이 보고 싶어 찾게 됐다는 우토로. 실제로 그 곳에는 버림받은 시간들이 주름진 얼굴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주위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은 채 그 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영화를 만들고 있는 김재범 감독은 주로 일본과 연관돼 있는 작품을 만든 다큐멘터리스트다. 그는 일제와 관련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올해가 건국 60주년이라고는 하지만 일제의 잔재는 아직도 많은 곳에 남아있고 친일했던 사람들이 호의호식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픈 역사가 만들어낸 매서운 서리 같은 사람들의 군상이 저를 끊임없이 다그치는 것 같아요."

1997년 그의 첫 작품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은 일제치하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앞두고 인도네시아인으로 살아간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초창기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 상영된 고 허영 감독의 흔적을 그는 같은 섹션에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복원해 냈고, 이는 잊혀진 영화사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친일 감독으로 일본에 굴종하며 조선인 지원병 전사자 이인석을 미화한 영화 <너와 나>를 만들었고, 태평양 전쟁 당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해 고국에 돌아올 수 없었던 허영 감독. 그 자취를 찾기 위해 2년 동안 뚝심 있게 매달렸고 결국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일본 국제기금 특별전과 인도 뭄바이 단편&다큐멘터리 영화제, 일본 야마가타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 김재범 감독의 데뷔작으로 조선인에서 일본인으로 해방이후 인도네시아인으로 살아간 故 허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 김재범 감독의 데뷔작으로 조선인에서 일본인으로 해방이후 인도네시아인으로 살아간 故 허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김재범



일본 배우 아사기리 교코 자신이나 故 허영 감독 모두 군국주의의 피해자일 뿐이라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의 한 장면

▲ 일본 배우 아사기리 교코 자신이나 故 허영 감독 모두 군국주의의 피해자일 뿐이라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의 한 장면 ⓒ 김재범


친일파가 호의호식하는 현실, 일본 연관 작품 만드는 이유

우토로를 다룬 <아름다운 게토>는  김 감독이 첫 작품을 끝낸 다음해인 98년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해 99년 촬영에 들어간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는 괜찮은 소재였던 우토로 마을. 그러나 좀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를 일에 달려들기에는 다들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감독들이 현장만 둘러보고 제작을 포기했다.

해결기미가 난망했던 우토로 문제처럼 그것을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영화 또한 무모하게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일에 뛰어들게 됐고, 예상대로 영화는 우토로 문제와 엇비슷한 행보를 보이며 제작비 문제를 포함한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야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써 제작비 마련의 어려움 등은 누구든 겪는 일이지만, 기약 없이 찍어야 하는 일이기에 그 어려움의 강도는 더욱 컸다. 그래서 2002년~2004년까지는 우토로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

이젠 그 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난했던 작업이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어 한숨을 돌릴 만도 하지만, 이 때문에 요즘 그는 발품을 팔고 다니기에 바쁘다. 마무리할 제작비(1500만원 정도)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영화의 제작과정이 아직 모금이 마무리 되지 않은 우토로와 닮은꼴이라고 말한다.

배덕호 사무국장 우토로 국제대책회의를 이끌며 우토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 배덕호 사무국장 우토로 국제대책회의를 이끌며 우토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 성하훈


우토로 문제는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완전히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모금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7억원을 목표로 모금작업을 진행 중이고 현재 1억원 정도가 모인 상태다. 정부의 1차분 지원금이 2월에 전달될 예정이었지만 문제가 생기면서 현재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 우토로 국제대책회의 배덕호 사무국장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금이라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하는데,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어 2월말 예정됐던 예산집행에 차질이 생겼다"고 밝혔다. 일본 내 토지 소유 부동산 회사 당사자들 간 소송이 마무리 되지 않아 예정했던 지원금이 늦춰지게 됐다는 것이다.

배 국장은 또 "기한 내 지불할 돈이 있는데 이는 일본 내 모금된 자금으로 충당될 예정이며, 현재 진척은 많이 됐지만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그나마 이만큼 진척된 데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컸다"고 덧붙였다. 우토로 문제를 알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느껴 자신의 일 인양 자비를 투자해 헌신한 사람들의 덕분에 지금 여기까지라도 이어올 수 있었고, 아무 대가 없이 고생한 분들의 노력이 쌓이면서 이만한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토로를 긴 시간 카메라에 담은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담기 위해 여러 어려운 상황을 감수하며 스스로 10년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토로를 담으며 그가 봤던 마을사람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어려움 많은 제작과정, 우토로와 닮은 꼴

 풍물을 배우고 있는 우토로 마을 주민들. <아름다운 게토>의 한 장면

풍물을 배우고 있는 우토로 마을 주민들. <아름다운 게토>의 한 장면 ⓒ 김재범


김 감독이 본 우토로 사람들은 참 정감 넘친다. 저녁이면 일마치고 귀가하는 마을 사람에게 "저녁은 먹었느냐?"며 불러 세워 자기들이 먹던 식탁에 수저 한 벌 올려놓고, 여름이면 대문을 잠그지 않은 채 일터로 나가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옆집 빨래를 걷어주는 동네다. 그리고 65세대가 살지만 번지수가 달랑 하나라 우편배달부가 사람들 이름을 기억해
우편물을 전해주는 마을이다.

영화는 그래서 이 소중함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새만금 갯벌이나 평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토로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면 그것들처럼 또다시 후회할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감독이, 전쟁을 위해 만들어지는 평택 대추리와 전쟁 때문에 만들어진 우토로를 대비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제목 <아름다운 게토>에서 게토(ghetto)란 중세이후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을 말한다. 이탈리어로 어원은 히브리어 '절연장'을 뜻하는 'get'에서 유래한다. 인연을 끊는 문서라는 의미. 전쟁의 광기와 그 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시기와는 인연을 끊고 화해와 용서의 시대를 만들자는 의미라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그것은 영화를 통해 지난날의 아픔을 되돌아보면서, 전쟁의 기억을 딛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감독의 바람이기도 하다. 우토로 처지를 닮은 우토로 영화 <아름다운 게토>. 감독의 깊은 마음이 담겨있는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보여질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한편, 우토로 모금을 진행중인 아름다운 재단은 3·1절 직후부터 우토로에 대한 2차 집중 모금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희망 없어 마을 떠나는 사람들 볼 때마다 안타깝고 힘들었다"
[인터뷰] 우토로 마을 다큐멘터리 준비중인 김재범 감독

김재범 감독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의 한 장면.

▲ 김재범 감독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의 한 장면. ⓒ 김재범


김재범 감독은 이정국 감독의 <두여자 이야기> 연출부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2000년에 인권변호사로 민주화 운동에 큰 역할을 했던 고 조영래 변호사 10주기 추모영화 <진실의 불꽃>을 만들었고,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고 이태영 박사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97년 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이 그의 감독 데뷔작으로 이 작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 극영화를 하다가 다큐멘터리로 방향을 바꿨는데, 계기가 있다면?
"인위적으로 맞추고 구성을 하는 게 싫었어요. 내 체질에는 안 맞는다고나 할까. 제가 구성을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 찍고 꾸밈없이 사실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 우토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면?
"98~99년도 당시 우토로에 관심을 가진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많았어요. 우토로 문제가 작품소재로 괜찮으니까 다큐 감독들한테 많이 알려진 거죠."

- 관심 가진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어떻게 혼자만 우토로를 계속 해 찍게 됐는지?
"먼저 현장에서 찍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거 3년 안에 안 끝난다'면서 대부분 포기한거죠.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2~3년 정도 걸리면 할 만한 데, 그 이상 걸리면 제작한다는 게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그간 들인 비행기 값과 제작비가 아깝지 않느냐?'고도 물었지만 다들 개의치 않는다는 모습이었습니다. 우토로를 알릴 생각으로 찾았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부담이었던 것이지요. 덕분에 분량은 많지 않지만 먼저 시작한 분들이 찍어놓은 필름을 얻을 수 있기도 했습니다."

- <아름다운 게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보다 마을에 희망이 없어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빠져나간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우토로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204명인데, 한 때 우리 정부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고 무대책으로 일관하니 나이든 분들만 남고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갔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빈집도 여기저기 생겨났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진작에 지원이 이뤄졌다면 나가는 사람이 줄었을 것이라고 봐요. 이제 정부 지원도 예정돼 있으니, 마을이 정비되고 나면 젊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제작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인데, 마무리는 잘 돼 가는지? 
"두 번 정도 촬영할 분량과 마지막 편집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빨리 마무리해서 우토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앉아 영화를 봤으면 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긴 시간동안 만드느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제작비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뭐 어떻게 되겠지'하고 끌고 온 것인데, 벌써 10년이 다 돼가네요. 마무리 작업 남겨놓은 상태에서 제작비 문제로 어려움이 있기는 합니다. 지금까지 늘 그렇게 작업을 해 왔고, 저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마찬가지거든요. 특별한 후원 없이 혼자 끌고 온 것인데, 현재 이리 저리 도움 줄 수 있는 분들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 <아름다운 게토>를 통해 우토로에 하고 싶은 말이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영화를 통해 우토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우토로에 스며있는 우리의 가슴 아픈 과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게토> 블로그 : http://blog.naver.com/utorodocu
우토로 아름다운 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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