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첨지는 "이 원수엣 돈!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한 대목이다. 대한민국의 가장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현진건의 '운수'를 다시 떠올린 것은 휴일 오전의 EBS 방송 애니메이션에서이다. 나른한 여유를 즐기면서 채널을 돌리다, 수십개의 채널 중에 한 개에 고정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메밀밭의 풍경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의 한 장면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의 한 장면 ⓒ 이달투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밭의 쨍한 모습이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전개되더니, 1920년대 고달픈 서민의 삶이 김첨지의 인력거를 통해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판소리체로 전개되는 김유정의 <봄봄>까지, 이게 애니메이션인가? 어린 시절 대한극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로보트 태권 V>의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를 합창하던 이후, 가장 깊은 몰입으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다운로드를 받아 10여 번 이상 보면서, 김첨지가 술을 먹은 술집의 벽에 걸린 '조광'지를 보고, 제작자의 장인 정신에 익숙해졌다.

소설에 대한 어떠한 왜곡과 해석보다는, 차라리 생략을 하는 겸손이 작품에 들어있다. 간단히 말하면, 영상에서 살릴 수 없는 작가의 개입은 생략하면서, 원작의 의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운수 좋은 날>에서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는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시청자를 자신에 맞추어 해석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충실히 재현하고, 할 수 없다면 포기한다. 원작에는 아내의 죽음에서 작가의 개입이 두드러진다. 무섭고 암담한 분위기, 아이의 울음소리, 이를 '무시무시한 증'이라며, 개입한다. 영화는 어두운 거목의 돌담길을 걷는 인력거꾼을 통해 영상으로 이 장면을 처리한다. 충실하다.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는 장면 정도를 추가하면서 서민의 마음을 담아낸다. 물론 원작에도 한 줄이 담겨 있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의 한 장면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의 한 장면 ⓒ 이달투

다음으로 현재의 그래픽이 지난 역사를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술집의 벽에 걸린 '조광'지가 언뜻 흘러가는 장면에 감동한다면, 타임머신을 탄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비 내리는 동광 학교와 어두운 전차 길을 다시 만드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소금을 뿌린 메밀밭은 강원도까지 구태여 가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상상 속 향수를 준다.

시골 정취와 어울린 판소리도 놀랍다. 만화가 아니다. 원작이 지닌 판소리 해학을 그림에 담아내고, 부족한 부분은 판소리를 통해 작가정신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김유정이라는 까다로운 작가는 그림으로 살려낼 수 없다. 그래서 김유정은 웃기지만, 만화로는 김유정처럼 웃길 수 없다는 한계를, 판소리를 더해서 해학이라는 본질을 담아내려는 연출가의 시도가 신선하다.

이제 마지막, 나는 이 모든 장면을 아주 싸게 구매했다. 내 컴퓨터에 지금도 닳지 않는 기억처럼 기억되어 있다. 아주 싼 수백개 인력거처럼 대기하고 있었다. <인터스텔라>는 커피까지 1만 원쯤 주고 본 기억이 난다. 핑계를 대자면, 나는 정보가 없어서 돈을 낼 기회가 없었다.

돈이 내는 쨍하는 소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내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은 돈이 내는 쨍하는 소리에 주목하면서, 사람의 소리에 무심하다. 고마운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준 흐뭇한 시간을 몇 푼에 누려서 감사하고, 부끄럽다.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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