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후회하지만 평생 할 거다." Vs.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달라 보이지만 두 말의 의미는 같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의 서로 다른 표현이다. 마치 주문처럼 이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을 지난 3일 서울 홍대 근처 한 카페에서 같이 만났다. 전자는 연극무대 밥만 23년 가까이 먹은 배우 최영도(40), 후자는 군 제대 후 늦깎이로 연기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는 조대희(33)다.

최근 들어 이들은 영화 <좋아해줘> <순정> 등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분량은 적었지만 맡은 캐릭터를 맛깔나게 표현해냈다. 벌써부터 <더킹> <사냥> 등 출연예정작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한국영화에서 다작왕으로 꼽히는 이경영과 배성우의 계보를 이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계가 두 배우에게 관심을 보이는 찰나, <오마이스타>가 먼저 그 진가를 엿보기로 했다.

[맛보기] 최영도-조대희, 누구니?

 영화 <무뢰한> 속 최영도의 모습.

영화 <무뢰한> 속 최영도의 모습. 이 작품 전에 <군도: 민란의 시대> <혈투> 등에 참여했었으나 "본격적인 대사가 있는 작품은 <무뢰한>이 처음"이었다. ⓒ 사나이픽쳐스


이름 : 최영도(1977년생)

연기경력 : 17세부터.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 극단 로가로세에 들어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약 23년. 연극과 영화 통틀어 서른 편이 넘는 필모그래피의 소유자.

특징 : 한 번 얼굴 도장을 찍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비주얼. 다만 그에 비해 감성은 상당히 소녀적임.

출연작 : <군도: 민란의 시대>(2014) <무뢰한>(2015) 등과 함께 여러 드라마에 출연. 최근 영화 <검사외전>에선 강동원에게 말을 건네는 제소자, <순정>에선 도경수를 훈계하던 동네 아저씨, <좋아해줘>에선 드라마 작가로 분한 이미연과 함께 일을 진행하는 제작사 대표였음.

출연 예정작 : 한재림 감독의 <더킹>

 영화 <한공주> 속 조대희의 모습.

영화 <한공주> 속 조대희의 모습. 그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 리공동체


이름 : 조대희(1984년생)

연기경력 : 전역 후 25세 때 공장에서 석 달간 일하며 모은 돈으로 연기학원 등록. 당시 여러 극단을 전전하며 무대를 경험했고, 2013년 영화 <한공주>로 데뷔.

특징 : 곱상한 외모와 달리 야성적 기운이 물씬 풍김.

출연작 : <한공주>에서 공주를 돕는 선생님 이난도 역. <좋아해줘>에선 톱스타 노진우(유아인 분)을 데리고 있는 매니지먼트사 대표로 분함.

출연 예정작 : 한재림 감독의 <더킹>, 이우철 감독의 <사냥>

[본격 대화] 통편집의 추억

- 배우들 포화 시장일 수 있는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쉽지 않은데도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게 인상적입니다. 두 분 다 자기만의 분명한 연기 목적이 있어 보여요.

최영도 "두려움입니다. 단순히 열정과 에너지로만 승부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세계임을 깨닫고 있어요. <검사외전>에서 제 부분이 꽤 편집됐는데 그럴 때마다 자책합니다. 물론 제 연기 때문이 아닌 예산이라든가 다른 변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배우라면 일단 모든 결과물에 대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 배우 책임론이죠. 영화를 하면서부터는 연기가 좀 더 두렵고 조심스러워요. 그간 주인공을 보조하는 캐릭터를 주로 했는데, 현장서 충분히 의도한 대로 했다고 해도 막상 결과물을 보면 빈틈이 있더라고요. <무뢰한>이 끝난 지가 꽤 됐는데 (너무 아쉬워서) 자다가도 깨서 제 대사를 되뇌곤 합니다."

조대희 "그래서 전 촬영 전 머리로 많이 생각해놓고 있어요. 그래야 다음에 편집을 안 당하죠(웃음). 사실 뭘 찍고나서 기억에 담아두는 건 별로 없긴 한데, <한공주> 때가 가장 남긴 합니다. 그때 오디션을 3차까지 봤어요. 주인공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보시더라고요. 영화는 다 그렇게 '빡세게' 오디션 보는 줄 알았습니다. 보통의 선생님 같은 느낌이 없어서 감독님이 절 택했다던데 막상 촬영할 땐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경력과 실력이 비례하는 게 아님을 두 사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극 무대에 설 당시 두 배우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런 현실조건보다 이들을 더 힘들 게 한 건 "배우에 대한 소명의식"이었다. 최영도는 "매번 자신을 다그칠 수밖에 없기에 항상 후회하면서도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고, 조대희는 "정신적으로 힘들긴 해도 유일하게 즐기면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라 절대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온도 차는 있을지언정 연기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자세는 그만큼 진지하다.

- 연기를 대하는 두 분 자세가 인상적입니다. 평생 업으로 생각하는 만큼 어떻게 연기에 빠지게 됐는지 그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조대희 "어렸을 때부터 유독 주눅 드는 게 싫었어요. 그러다 군 제대 후 연기의 맛을 알게 된 거죠. 희한한 게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데 제가 배우들을 보면서 대사를 따라하고 있더라고요. 군대가 사회보다 더 억눌리고 속을 감추며 살게 되잖아요. 그걸 털어내려 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죠."

최영도 "제 종교가 천주굔데 중2 때 성당 성극을 하면서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어요. 그 흥을 지나서도 잊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연극반에 들어갔고, 전문적으로 더 해보고 싶어 로가로세 극회에 들어간 겁니다. 청소년 극단인데도 군기가 엄청 강했어요. 내로라하는 현역배우 선배들이 가르침을 주시기도 했죠. 그때 못견디고 나간 동기들이 꽤 있는데 전 뭐라도 해보자 생각하면서 버텼습니다.

군 전역 후 2년 간 회사 생활도 해봤는데 못 하겠더라고요. 내가 죽어있는 거 같았어요. 회사를 때려치고 내가 왜 배우를 해야 하는지 2년 간 그 이유를 찾아다녔어요. 극단도 차렸다가 말아먹기도 했고. 근데 결국 설렘 같아요. 설레면 움직이고, 설레지 않으면 접는 겁니다. 연기하는 게 설레지 않으면 당장 내일이라고 접을 수 있어요. 아직까진 다행히 설레네요."

- 영화 출연을 위해 본인들이 직접 제작사를 찾아다니며 프로필을 돌렸다고도 하는데.

최영도 "<무뢰한>을 찍은 직후 본격적으로 돌렸어요. <군도>를 찍고 영화를 본격적으로 해보고픈 마음에. <무뢰한> 때도 쭈뼛거리며 제작사를 찾았는데 처음엔 문전박대였거든요. 오디션에 붙으니 그때부턴 다들 알아주시더라고요. 캐스팅 보드에 제 얼굴이 붙어 있는 걸 보고 '아 이런 거구나!' 느꼈죠."

조대희 "뭐, 다들 그런 과정을 겪는 거 같아요. 혼자서 돌리다가 되는 사람도 있고. 영도 형은 운이 좋은 거예요. 전 이걸 제작사에서 휴지로 쓰는지 뭐로 쓰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웃음). 회사가 생긴 지금에야 기회를 얻고 있는 거죠."

배우 인생은 오디션 인생

 배우 최영도(좌측)와 조대희.

배우 최영도(좌측)와 조대희. 영화를 하기 위해 홀로 여러 제작사에 직접 프로필을 돌리던 두 사람은 최근 소속사를 찾았다. ⓒ 메이크위드


- 오디션장에서 관계자들이 예정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두 분을 지켜본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대본을 끼고있기 마련인데 두 분 모두 통째로 외워간다는 것도 들었고요.

조대희 "작년에 6개월 동안 오디션을 스무 번 가까이 본 거 같은데 그 중 두 개가 됐네요. 매니저 분에겐 고맙지만 스스로 되게 한심하더라고요. 바꿔 말하면 스무 개 중 두 개나 하게 됐으니 좋은 건가(웃음). 첫 오디션 땐 대사를 통째로 외우느라 날밤을 샜어요. 준비를 많이 해가서 독이 된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는데, 여전히 저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작은 역할의 장점이죠. 애초부터 주인공을 했다면 지금 연기를 못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최영도 "배우 인생은 곧 오디션 인생이죠! 일단 다 외워가야 뭔가 풀리는 기분이랄까. 대희나 저나 영화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신기하고 재밌어요. <군도> 때 미팅에서 강동원을 죽이려는 백성 중 하나고 20회 차(보통 1회 차는 하루 동안의 촬영을 뜻함)를 찍는다고 그래서, 속으로 '오! 내가 강동원을 죽여?' 신나했죠. 영화는 한 번 할 때마다 그만큼의 촬영은 다 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근데 더 적은 촬영 회차도 있었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최종적으론 어떤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싶은지요.

최영도 "계속 후회하면서도 도전의 즐거움을 맛보고 달려갈 건데, 관객 입장에선 제가 연기를 즐기는 배우로 보이길 원해요. 일부러 개성파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고요. 사실 제가 생긴 거답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긴 해요. 소주도 못 마시고,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고(웃음). 좀 섬세합니다. 연기도 인물의 연민을 담을 수 있게 섬세하게 해야죠!"

조대희 "앞으로 잘 되건 아니건 남들이 봤을 때 딱 쟤는 배우구나 느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연기할 거 같은 배우? 그걸 바랍니다. 연기하면서 늙어가고 싶어요."

배우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 <더킹>과 <사냥> 출연을 각각 확정지은 최영도와 조대희는 현재 몇 작품의 최종 오디션 결과도 기다리고 있다. 아직 두 사람의 존재감을 몰랐다면 주저 말고 차기작을 공략해보자.

[마지막 서비스] 이 작품, 그 연기!

지금까지 글을 보고도 두 사람이 잘 기억 안나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영화 <무뢰한>과 <한공주> 속 두 배우의 연기 영상이다.

▲ <무뢰한> 속 최영도 영화 <무뢰한>에서 최영도는 전과자이자 룸살롱을 운영하는 사내 김호길 역을 맡았다. ⓒ 사나이픽쳐스


▲ 영화 <한공주> 속 조대희 배우 조대희는 영화 <한공주>에서 공주(천우희 분)를 도우려는 교사 이난도 역을 맡았다. ⓒ 리공동체필름



조대희 최영도 더킹 좋아해줘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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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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