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승부조작 파문으로 야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최근 자진신고로 한화 이글스 시절 승부조작 사실을 고백한 기아 타이거즈 투수 유창식은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궁지에 몰렸다.

유창식은 지난 25일 경기도 의정부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서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앞서 NC 이태양과 상무 문우람이 승부조작 혐의가 드러난 상황에서 파문이 커지자 KBO는 오는 8월12일까지 프로야구 관계자들의 자진신고 및 제보를 받기로 결정했다.

23일 소속구단인 기아를 통하여 승부조작 사실을 고백한 유창식은 신고기간에 자수한 최초의 케이스였다. 팬들에게는 비록 큰 충격을 안겼지만 어쨌든 스스로 죄를 먼저 시인했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정상 참작될 것으로 보였다.

팬들과 구단을 기만한 유창식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며 구단과 KBO에 자진신고를 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좌완 투수 유창식. 유창식은 한화 소속이던 2014년 홈 개막전에서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며 구단과 KBO에 자진신고를 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좌완 투수 유창식. 유창식은 한화 소속이던 2014년 홈 개막전에서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하지만 경찰수사 결과 유창식의 새로운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지며 상황이 반전됐다. 유창식은 당초 구단과 KBO에 밝힌 1차 진술에서는 승부조작에 단 한 번(2015년 4월 1일 삼성전)만 가담하여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경찰서에서는 이후에도 승부조작에 가담했다(2015년 4월 19일 LG전)고 밝혔다. 그 대가로 받은 금액에 대해서도 처음과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성이 없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승부조작에 이어 또 한 번 구단과 팬들을 기만한 셈이다.

이쯤되면 자진 신고의 진정성에도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 봤을 때 유창식이 승부조작에 상습적으로 가담했을 수 있고, 자진신고를 역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범죄를 축소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유창식이 구단과 KBO 측에 처음 밝힌 자수의 명분은 '양심의 가책'이었다. 유창식이 처음 자진신고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단과 KBO측도 그의 승부조작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미 이태양과 문우람의 적발로 승부조작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경찰수사가 확대되면서 연결고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기북부경찰청의 수사 리스트에 이미 유창식의 이름이 올라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승부조작에서 당사자가 아무리 침묵한다고 해도 기록은 남기 마련이고, 브로커나 관계자가 적발된다면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KBO는 자진신고 기간에 이뤄진 자수에 대해서는 선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창식으로서는 나중에 혐의가 드러나 무거운 법적 처벌을 받고 야구계에서도 쫓겨나기보다 그나마 선처를 바랄 수 있는 길을 염두해 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한 번은 우발적 실수나 잘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적당히 둘러댈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번 이상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찰수사 결과 밝혀진 두 번째 승부조작 경기는 유창식 본인이 고백한 첫 사례 이후 불과 18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승부조작 방식은 두 번 다 똑같은 '1회 고의 볼넷'이었고, 당시 유창식은 두 번 모두 성공하며 현금을 챙겼다. 두 번이나 들키지 않고 손쉽게 성공했다면 이후 추가적으로 승부조작 행위에 더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다.

유창식 말만 믿은 KBO 책임도 엄중

유창식의 거짓말이 드러나면서 자진신고에 따른 최소한의 면죄부도 적용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진실 왜곡이나 은닉을 위한 자수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KBO도 유창식의 말만 믿고 제대로 된 자체조사도 하지않고 팬들이나 수사에 혼선을 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KBO가 유창식에게 영구퇴출 같은 중징계를 내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그는 야구계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유창식은 한화와 기아를 거치며 유망주로 수년간 기대를 모았지만 몸값에 걸맞는 성적을 올린 적이 없다. 5년간 통산 성적이 16승 33패 자책점 5.73에 머물고 있으며 2015년 트레이드 이후로는 기아에서 단 1승도 거두지못하고 2군에서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유창식은 승부조작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며 팬들과 야구계를 두 번이나 기만했다. 실력도 부족하고 신뢰마저 상실한 선수를 프로구단들이 받아줄 리가 만무하다.

근절되지 않은 승부조작 사건이 남기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승부조작이라는 범죄에 대해서 어설픈 관용을 베풀거나 안이한 대처를 할 경우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처벌과 원칙의 확립만이 승부조작 사태를 근절할 수 있다.

2012년 박현준-김성현의 영구퇴출 사건으로 승부조작의 결말을 분명히 지켜봤을 텐데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선수들이 4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잘못된 배짱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야구계가 승부조작의 유혹에 완전히 무방비로 노출되어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KBO가 이번 기회에 승부조작 관행을 완전히 뿌리 뽑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대만처럼 아예 리그 자체가 몰락하는 것도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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