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봉오동 전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9년, 임시정부 수립과 3.1 만세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을 각색한 영화가 연이어 개봉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식민지배 한가운데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에서의 승전보는 당시에도 지금에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영화의 선악 구도 속에 구현된 미학적 요소
 
영화 <봉오동 전투>는 첫 장면부터 관객의 정서를 진하게 자극한다. 일본군의 길 안내를 도운 어린 소년에게 일본군이 수고했다며 던져준 자루에는 먹을거리와 폭탄이 들어 있었다. 이 장면에서 등장인물의 처참한 죽음과 불타는 나무는 으깨어진 산하를 함축한다. 더군다나 느리게 전개되면서 극이 내포한 감정에 동화되도록 이끈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과 일본군의 단순 명료한 선악 구도에 미학적 요소를 가미했다. 황해철(유해진 분)과 이장하(류준열 분)가 이끄는 독립군 대원들은 오합지졸에 가깝다. 정규 군사교육은 부족했을 것이며 의복마저 민간인 시절 그대로다. 체계적인 명령체계로 운영되기보다는 호형호제하며 분방하다. 꾸밈이나 가식이 없는 차림새와 행동은 당시 생활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컷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컷 ⓒ (주)쇼박스

 
반면 극 중 일본군은 일사불란한 도열과 통일된 제복으로 정규군의 화력을 유감없이 발산한다. 장교의 제복 안에 입은 흰 셔츠는 일반 병사의 노란색과 섞여서도 확연하게 돋보인다. 호랑이를 도살할 때 옷에 묻은 피는 잔인성을 배가시키는 색채미학이다.
 
독립군 대원의 내부적인 갈등 요소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나마 마적 출신의 마병구(조우진 분)가 독립자금을 적당히 나눠가지고 이쯤에서 멈추자는 주장을 하는데, 이마저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 반면 일본군은 잔인성을 극대화시키거나 지나칠 정도로 야비한 캐릭터를 조합했다.
 
일본군 소년 병사를 향한 이장하의 총이 격발되려는 찰나, 총성이 울린다. 그러나 일본군에 잡힌 마을 주민들이 사살되는 장면으로 교차편집(cross cutting)되었다. 이런 편집기법은 독립군 대원들과 일본군 토벌대의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도 여러 차례 연출된다. 극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상승시켜주는 효과다.
 
최종 지점에서 반전을 위한 연출
 
영화에서는 일본군을 유인하기 위해 2개의 책략이 실행한다. 먼저 황해철과 이장하가 이끄는 전투 대원은 일본군을 격퇴하면서 대규모 토벌대를 조금씩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해간다. 스릴 넘치는 액션과 위태위태한 도주 장면은 극에 쉼 없는 전개와 재미를 더한다. 다른 책략으로는 토벌대에 잡힌 독립군 포로(박희순 분)의 역할이다. 그는 일본군에 독립군의 본거지를 순순히 안내하고 있다. 물론 그는 의도적으로 포로가 된 것이다.
 
독립군 자금 전달만을 수행하려던 황해철과 대원들은 이장하를 만나면서 그의 임무에 합류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이 임무를 무모하고 불안한 요소와 함께 배치하며 극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게다가 포로가 죽기 직전의 대사는 상황을 암울하게 만든다. 그가 최종적으로 확인한 독립군은 100여 명에 불과하며 토벌대에 맞설 군대의 지원이 없다면 러시아로 이동했으리라는 것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쇼박스

 
결국 골짜기로 유인하는 임무를 완수해도 독립군 부대가 증강되지 않았다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이미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마지막 순간을 위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그렇기에 정상을 장악한 전투 부대를 각각 자막으로 소개하는 장면은 영화가 선사한 대미였다.
 
갑자기 사라진 캐릭터, 그 아쉬움
 
포로로 잡힌 일본군 소년 병사의 캐릭터를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황해철에게 생포된 그는 본인도 일본군이지만,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자각해 간다. 그러더니 일본 장교 앞에서 일본군이 부끄럽다며, 미개한 것은 우리 자신이라며 결기로 화답한다. 결국 일본군 내에서 자결을 강요받았지만 그는 구사일생으로 독립군 대원과 재회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묘하게 그가 사라진다. 광복이 이뤄진 후 그가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죄와 역사적 진실을 설파하는 학자나 시민단체 일원으로 성장한, 구체적인 모티브로 설정되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진실을 만들어가는 세력과 연대하는 유의미성이 담기는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가 일본군을 무조건 악으로 설정한 진부함 속에서 이와 같은 캐릭터의 활용이 다소 아쉽다.
 
살인을 놀이처럼 즐기는 일본군 앞에 무방비로 학살된 사실, 분노를 넘어 적개심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폭력성에 대한 근절과 역사적 진실에 대한 확언이다. 일본 전체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키워지는 방향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제주도 사투리가 함축하는 바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컷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컷 ⓒ (주)쇼박스

 
영화에서는 사투리로 인한 언쟁이 2개의 장면에서 연출된다. 이는 전국 팔도에서 모인 독립군의 특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향수를 자극한다. 그 중 표준어 세대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도 사투리가 압권이다. 특히 구운 감자를 두고 갱기부터 시작된 사투리 자랑은 제주도의 '지슬'에서 평정이 되는 분위기다.
 
감독의 연출 의도가 어떠하든 이 장면에서 제주도의 4.3 항쟁을 담은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를 아는 관객이라면 해당 영화가 연상될 것이다. <봉오동 전투>는 나라 잃은 설움과 고통, 수많은 비애의 감정에만 관객이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한다. 해방 조국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현대사의 오점을 호출하고 있다.
 
내부에 잔존한 모순덩어리를 청산하지 못했던 한계는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독립의 열망을 뜨거운 가슴에 담아 질주하는 영화 <봉오동 전투>는 승리의 잔상에만 머물러있지 않도록 한다. 따라서 지금도 잔존한 문제들, 그것의 기인과 해결을 성찰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봉오동 전투> 포스터.

<봉오동 전투> 포스터. ⓒ (주)쇼박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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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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