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액면 그대로 '새로 유행하는 복고'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개념에 따른다면, 자칫 기존 복고(레트로)와 구분이 되지 않게 되고 뉴트로를 분석할 때 기존의 복고와 혼동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복고는 말 그대로 과거를 소환하는 것. 때문에 복고는 향수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향수는 과거의 경험과 이에 따른 기억과 밀접하다. 그런데 뉴트로는 반드시 이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뉴트로의 주체는 사실상 기성세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애써 뉴트로라는 말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젊은 층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어깨가 으쓱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시감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혀 접하지 않고 기억, 향수도 없지만 재발견하면서 자신의 취향으로 삼는 젊은 세대 때문에 뉴트로라는 개념이 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뉴트로가 유행하는 것을 복고 취향에 견주어 분석하는 것도 같은 오류의 맥락에 있게 된다. 미래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뉴트로를 선택했다고 하거나 소재 빈곤 때문에 뉴트로를 선택한다는 관점도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올드 미디어들이 연령대 높은 시청자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예전 기억의 무난한 포맷과 콘텐츠를 레트로라고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단지 복고 스타일이 유행의 주기에 따라서 다시 유행하는 것이 뉴트로라고 보는 것도 좀 맞지 않는다. 

뉴트로는 '힙한 과거'일 수 있다. 과거일지라도 힙한 것을 재발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트로는 옛것이 새로 보이기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데 그것이 옛것일 뿐이다. 혹은 옛것 스타일로 만들었는데 새로운 것이다. 뉴트로에 열광하는 이들은 과거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열광하거나 약간 변형을 주었다고 해서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과거의 것이라고 해서 애써 외면하지 않고 자기의 정체성으로 삼거나 그것을 표현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과거 것이라고 외면하는 것은 그 자체가 힙하지 않은 태도인 것이다.

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던 래퍼 지코는 "조용필 김연자 이은하 조하문의 노래에 음악적인 관심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아니 그 시기를 그들과 같이 보낸 이들은 모두 좋아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음악을 인정하는 듯 싶기 때문이다. 지코는 92년생으로 앞에 언급한 가수들에 대한 기억이나 향수가 없는, 요즘 한참 주목을 받고 있는 90년대생들 가운데 한명이다.

90년대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이전 세대들이 좀 당황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어왔다. X세대나 80년대생들과도 다른 세대라는 것이다. 그들의 뉴트로의 중심에 있는데 90년대생들은 이익적 합리주의를 추구한다. 자신에게 되면 학벌을 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린다. 가성비가 매우 중요하다. 거꾸로 가성비가 좋으면 그것이 어떤 대상이라고 수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코처럼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가수가 어느 시대 사람이던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과거 가수라고 하면 시대적 감각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또 그런 취향의 친구들은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지코가 단순히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을 그들을 통해 창작하기 위해서 좋아했다. 이런 점은 단지 복고에 수동적으로 빠지는 것과 다르다.

이는 요즘 자주 비교 주체가 되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해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에는 자신을 기성세대와 차별화했기 때문에 복고 코드에 대해서 거리를 두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좀 더 많았다. 그들은 새천년을 앞두고 거의 무조건 새로운 세계 그리고 문화를 추구했다. 항상 자신은 주체적이고 남들과 구분 짓고 능동적으로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 뒤이어 등장한 Z세대는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그들에게는 완전 새롭고 독창적인지는 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과거 것인지 아닌지도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자신이 좋아할만한 것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앞선 세대가 선호하던 대상들은 대개 배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앞선 세대가 그 것을 즐기거나 향유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배척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트로트에 관해서도 예전에는 나이든 사람이나 듣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트로트를 좋아하는 자신을 스스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생, Z세대는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송가인의 트롯 풍이 유행한 것은 본래 트롯의 맛을 살려냈기에 새로웠다. 이는 마치 퓨전 사극을 넘어서서 정통 사극에 열광하는 점과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과거로 갔는데 오히려 힙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불렀는가는 송가인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만약 앞서 세미 트롯이나 퓨전 트롯을 송가인이 반복했다면,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그 무엇을 뛰어난 기량으로 선보일 때 장르와 영역을 분별하지 않고 적극 호응을 보는 세대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니 송가인처럼 트로트 스타가 되면 그만이다.

뉴트로 세대는 기성세대의 적극적인 모디슈머의 행동도 수용한다. 지병수 할아버지가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본래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안무까지 곁들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할담비'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 장면이 각광을 받은 것은 본방이 아니라 인터넷 특히 유튜브였다. 비록 할아버지가 부른 댄스곡이었지만 개성 있고 독창적인 안무에 젊은층은 열광적 반응을 보냈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불렀는가보다,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가가 중요했을 뿐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에만 고집하지 않는 서병수 할아버지의 태도에 적극 호응했다.

KBS '학산배전국장사씨름대회중계' 방송영상의 경우 새삼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과거의 관점과 전혀 달랐다. 예전에는 백두장사나 천하장사가 누가 되는지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는 경량급 장사들의 씨름에 열광했다. 그들의 날렵한 몸매에 대한 집중은 더욱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것을 중요시하던 시대에서 몸매 관리의 육체적 건강미가 중요해진 이 시대의 문화적 코드가 결합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요컨대 뉴트로 콘텐츠의 중심축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그것을 재발견하고 가치부여하며 공유하는 젊은 세대들이다. 그렇기에 주체가 방송국이나 제작자의 통제권에 있지 못하다. 또한 단순히 방송시스템에 머물지 않고 디지털모바일공간과 연동되어야 한다. SBS '온라인탑골공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레트로의 본질이 기억의 공통분모에 있다면 뉴트로는 차별성에 정체성이 있다. 레트로가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체험과 기억에 바탕을 두고 소환된다면, 뉴트로는 남들이 외면하거나 미처 놓쳤던 대상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기성세대조차 그것을 간과하고 있을 때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부각할 때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 성취감과 만족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때 뉴트로의 생명력도 길어지는 운명이다. 우리 대중문화의 축적성이 뉴트로를 가능하게 한 점도 있다. 뉴트로 세대는 팝송이나 제이팝 없이 한국대중가요를 듣고 성장한 세대다.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한류 스타들과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장한 이들이다. 때문에 한국의 방송 콘텐츠는 물론 대중문화전반에 걸쳐 스스로 거리낌이 없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에 맞춰 퀸을 좋아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뉴트로가 아닌 레트로의 태도일 뿐이다.

뉴트로 세대는 지금의 정서와 감성으로 이해할 뿐이고 그것에 부합하면 문화적으로 수용한다. 오히려 문화적 수용이 늦은 것은 레트로세대일 수 있다. 옛날이 좋았다고 하면서 문화를 강박하거나 수동적 우월의식에 빠져든다면 꼰대로 규정될 것이다. 당연히 레트로에 함몰되는 방송 콘텐츠 환경이라면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야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통제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뉴트로의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것이 방송국들이 지향해야할 바라고 보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월간 방송 작가 11월호에 실린 글이자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뉴트로 지코 김연자 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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