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는 살아남았고, 이들을 위협하던 '영건'들 가운데 일부는 고배를 들어야 했다. 시즌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오스트레일리아 오픈(AO)이 중반에 이른 가운데, 25일 16강 진출자가 모두 가려졌다.
 
페더러는 극적으로 3회전을 통과했고, 나달과 조코비치는 무난하게 4회전에 안착했다. 그러나 세계 랭킹 4~8위에 포진한 20대 초중반인 5명의 젊은 선수들 중 치치파스(6위)와 베레티니(8위)의 이름은 16강 대진표에 없었다.
 
그랜드 슬램 대회 본선 진출자는 128명이다.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7번을 이겨야 한다. 16강 진출자끼리 겨루는 4라운드는 결승에 이르는 7번의 경기 가운데 딱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4강에 오를 확률이 높은 선수, 나아가 결승전에서 만날 두 명의 선수를 그럴 듯 하게 어림잡아 볼 수 있는 시점인 것이다.
 
 나달이 스매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달과 페더러 조코비치를 위협할 것으로 지목되는 메드베데프, 팀, 츠베레프가 모두 나달 쪽 대진표에 몰려 있어 4강 진출까지는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달이 스매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달과 페더러 조코비치를 위협할 것으로 지목되는 메드베데프, 팀, 츠베레프가 모두 나달 쪽 대진표에 몰려 있어 4강 진출까지는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나달에게 쏟아질 젊은 피들의 집중포화]
 
"초반 2~3 경기를 잘 치르는 게 중요하다." 페더러는 AO 개막에 앞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AO가 사실상 시즌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대회인 탓에 실전 감각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예상은 최소한 그 자신에게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1,2회전을 가볍게 통과한 그는 3회전에서 랭킹이 한참 아래임에도 천적과도 같은 존 밀먼을 만나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왔다. 세트 스코어 2대2 상태에서 맞은 마지막 5세트 슈퍼 타이브렉에서 두 포인트만 넘겨주면 탈락할 수 밖에 없었는데, 4-8로 뒤지다가 10-8로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은 것이다.
 
'초반 2~3경기'의 의미가 불행하게 현실화한 다른 예도 있다. 2회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베레티니와 3회전에서 좌절한 치치파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치치파스는 일부 전문가들이 페더러보다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본 선수여서 이번 대회 초반 가장 큰 이변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올해 AO 16강 대진표. 메드베데프, 팀, 츠베레프 등 각각 세계 4, 5, 7위인 젊은 선수들이 나달 섹션에 몰려 있다. 반면 조코비치와 페더러 쪽은 눈에 띄는 강력한 상대가 없는 편이다.

올해 AO 16강 대진표. 메드베데프, 팀, 츠베레프 등 각각 세계 4, 5, 7위인 젊은 선수들이 나달 섹션에 몰려 있다. 반면 조코비치와 페더러 쪽은 눈에 띄는 강력한 상대가 없는 편이다. ⓒ 김창엽

 
나달과 조코비치는 큰 어려움 없이 16강에 올라앉았지만, 남은 대진표는 나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형국이다. 빅3에 이어 차순위 우승 후보로 꼽히는 영건 5명 가운데 살아 남은 3명이 모두 나달쪽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각각 세계 랭킹 4, 5, 7위인 메드베데프, 팀, 츠베레프가 그들이다.
 
물론, 메드베데프, 팀, 츠베레프가 16강 전이나 8강 전에서 다른 선수에게 져 고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아니더라도 나달로서는 한결 같이 걸끄러운 선수가 나달 섹션에 포진해 있다.
 
당장 16강 전 상대인 키리오스가 그렇다. 나달은 키리오스와 전적에서 4승 3패로 우위가 근소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좀 불편한 사이이다. 키리오스를 꺾는다면 확률적으로 팀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메드베데프와 츠베레프는 랭킹대로 경기가 풀린다면 서로 8강전에 맞붙을 가능성이 있다. 나달이 4강에 진출한다면, 이 둘 중 하나와 대결이 불가피하다. 나달에게 최선은 메드베데프와 츠베레프 둘 다 16강전에서 탈락하는 것인데, 이 경우 바브링카와 최근 서너 달 사이 가장 무서운 신예로 급부상한 루블레프 둘 중 하나와 맞닥뜨려야 한다.
 
랭킹이 낮으면 낮은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나달에게는 험로를 예고하는 대진표이다. 나달에게 유일한 행운이라면, 빅3 중에서 랭킹 3위로 '스윙 맨' 역할을 하는 페더러가 조코비치 쪽에 있다는 점이다. 조코비치와 페더러는 결승 아니면 만날 일이 없다는 게 나달로서는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조코비치-페더러 결승 같은 준결승 치를까]
 
조코비치는 기량이나 나이 등을 고려할 때, AO 우승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점쳐졌다. 만 32세인 조코비치는 이번 AO에서 어딘지 미묘하게 체력이 예전만 못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우승컵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선수임에 틀림 없다.
  
 조코비치가 페더러의 서브를 받으려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테니스 사상 두말이 필요 없는 하드코트의 절대 강자이다. 이번 AO에서는 4강 맞대결이 유력하다.

조코비치가 페더러의 서브를 받으려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테니스 사상 두말이 필요 없는 하드코트의 절대 강자이다. 이번 AO에서는 4강 맞대결이 유력하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16강 상대는 3승 무패로 조코비치가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슈워츠먼이고, 8강은 칠리치나 라오니치 인데, 이들에 대해서도 전적은 조코비치가 압도적이다. 4강에 이르러서야 어쩌면 페더러를 만나게 되는데,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인 페더러는 크게 체력이 달리는 데다 3회전에서 4시간이 넘는 경기를 치르는 등 에너지가 상당히 고갈된 상태이다.
 
페더러는 시드를 받지 못했던 푸소비치스와 16강 대결이 예정돼 있다. 그는 16강에 오른 선수가 가운데 샌드그렌(100위)에 이어 세계 랭킹이 67위로 가장 순위가 낮다. 페더러는 8강에 가면 포니니를 대적할 가능성이 큰데, 포니니에게는 4전승으로 전적만 따지면 어쨌든 유리한 고지에 있다.
 
페더러의 나이와 체력 문제가 아니라면, 조코비치-페더러 준결승이 성사될 경우 사실상 결승이나 다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선수는 하드 코트를 분점해 왔고, 실제로 AO를 조코비치는 7차례, 페더러는 6차례 우승하는 등 단 한 번 AO 트로피를 들어 올린 나달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AO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블락버스터 준결승이 충분히 가능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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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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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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