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의 부동산 '패닉 바잉'이 언급될 때마다 혼란스럽다. 어떻게 20~30대가 그렇게 비싼 아파트를 살 수 있는지 의아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든든한 부모의 조력을 받았거나 '영끌'이라는 과도한 대출을 감행했다는 것인데, 어느 쪽이든 씁쓸하다. 40대에 집 장만하는 게 상식이었고, 그렇게 집을 마련했던 세대인 필자로서는 상당한 인지부조화를 겪는 세상이다.
 
서른 살 조카가 독립 주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 모은 돈에 많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어도 살 만한 전셋집 구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방이 아니라 집인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급하게 올라가는 전세 비용을 생각하면 2년이라는 한시적인 안도지만 말이다.

겨우 집을 얻고 계약을 치르면서 세상이 참 별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기함했다. 조카처럼 30대인 임대인은 자기 돈은 십 원도 없이 조카의 전세 비용 전액으로 집을 구매하고 동시에 전세 계약을 진행했다. 이런 계약은 난생처음 보았다. 전세금 보증보험으로 안전망을 치지 않았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거래였다. 조카의 30대 임대인은 '패닉 바잉'이 아니라 '갭투자'를 하고 있었다. 30대 임대인이 된 그는 과연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세상은 바뀌었는데, 여전히 구태한 설정들
 
 JTBC 드라마 <월간 집>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월간 집>의 한 장면. ⓒ JTBC

 
JTBC 드라마 <월간 집>의 주인공 유자성(김지석)은 아마도 조카의 임대인처럼 부를 축적해 나갔을지 모르겠다. 자칭 '개룡(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그는 집은 오직 돈을 벌어들이는 투자의 대상이지 안식처가 아니라는 투자 제일주의자다. 스스로 "돈밖에 모르는 놈"이라 말하는 자성은 수백억의 자산을 일군 '개룡'이고 보면, 피도 눈물도 없을 듯하지만, 그에게도 눈물겨운 스토리가 있긴 하다. 이 사연이 그를 냉혈한 수전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드라마는 전제하는 듯하다.
 
'개룡' 유자성이 경영하는 <월간 집> 잡지사에서 일하게 된 나영원(정소민)은 유자성과 이미 악연이 있다. 악연도 인연인지 자성은 자신의 공실 오피스텔을 영원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세놓는다. 살던 집이 경매로 처분돼 오갈 데 없게 된 영원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만한 임대조건의 셋집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반지하 원룸을 전전하던 영원이 서울 와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당분간이지만 반지하방에서 피어나던 궁핍의 냄새와 결별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산다고는 했지만, 형편 어려운 엄마를 조력해가며 '흑수저' 청춘이 서울 하늘 아래 내 집을 마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영원에게 "그 나이에 그 꼴로" 사느냐는 자성의 폭언은 뼈를 저리게 한다. 게다 집 마련하기 위해 나처럼 살아봤느냐, 나처럼 노력해봤느냐는 자성의 다그침에 영원은 자괴감에 휩싸이고 마침내 피나는 노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장대한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하루 만 원 쓰기로 버티는 영원의 노력은 눈물겹다. 이렇게 아껴서 영원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면,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일 게다.
 
문득 배우 정소민이 연기하는 가난한 임차인 역할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듬어 보니 그는 몇 년 전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도 가난한 여성 임차인 지호를 연기한 적이 있다. 지방 출신이라는 점과, 비싼 도시 서울에 집을 구하기 어려운 궁핍한 처지라는 설정도 영원과 비슷하다. 빈부 격차가 심각하게 양극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흑수저' 젊은 싱글 여성이 가난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드라마 속 가난한 임차인이 한결같이 지방 출신의 비정규직 젊은 여성으로 표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걸까?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지호는 하우스 메이트 계약을 맺은 임대인이 남자인 것을 모르고 들어가 월세를 살게 된다. 그러다 한집에 살게 된 임대인이 젊은 싱글 남자인 것을 알게 되지만, 가진 보증금에 비해 이만한 집이 없다는 계산 아래 남자 임대인과 한집에 동거하게 된다. 흥미진진한 설정이긴 하지만, 성폭력이 매우 위험한 수위에 있는 이 사회에서, 게다 지호가 성폭행을 당할 뻔한 처지에서 낯선 남자와 동거한다는 설정은 위태롭고 비현실적이다.
 
지호의 임대인 세희(이민기)는 자성만큼 자산가는 아니지만 재력 있는 부모와 번듯한 집을 가진 정규직 직장인이다. 평생 갚을 대출금을 받아 집을 샀더라도 집을 구매할 자격을 갖춘 기득권 남성이다. 반면 남해 출신 지호는 명문대를 졸업했어도 드라마 보조 작가라는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출로 집을 구하고 싶어도 대출이 불가능한 비정규직 직장인이다.

<월간 집>의 영원 역시 춘천 출신으로 박봉인 잡지사 에디터다. 보조 작가나 출판 에디터가 고용이 불안정한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드라마에 공식처럼 차용되는 이미지 즉 번듯한 임대인엔 괜찮은 직업의 남성이, 초라한 임대인엔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여성이 표상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게다 이 드라마들은 결국, 집으로 상징되는 계급과 젠더의 차이를 사랑으로 넘어선다는 로맨스를 제시함으로써 고질적인 젠더와 계급의 위계를 의뭉스레 눙치고 있다.
 
나쁜 남자를 저주에서 풀어주는 여자다움?
 
 JTBC 드라마 <월간 집>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월간 집>의 한 장면. ⓒ JTBC

 
두 드라마에 등장하는 젊은 남자 세희와 자성은 모두 까탈스런 성격의 소유자다. 세희는 냉담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자성은 안하무인이다. 둘 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들의 성숙하지 못함은 더 나은 시민이 되도록 지적되고 개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덜 자란 사내아이를 보듬듯이, 늘 이해되고 수용되도록 설정된다.

한 국회의원이 "남자는 엄마 경험 못해 철없다"며 남자를 지적하는 척하면서 두둔하는 발언에서 감지되듯이, 남자란 무릇 세심하지 않아도, 눈치가 없어도, 게을러도, 마침내 무례하고 비인격적이어도 봐주어야 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이 부족한 부분이 바로 로맨스의 단초가 된다는 것은 어이없지만, 세희와 자성의 미성숙은 헌신과 사랑을 탑재한 지호와 영원에 의해 사랑받음으로써 보충되고 완성된다.
 
지호와 영원은 온기 없는 집에 훈기를 불어 넣고, 집을 살뜰히 가꾸고, 결정적으로 남자들에게 집 밥을 제공함으로써 허기진 남자들에게 훈기를 불어넣는다. 지호와 영원이 나름 캐리어를 쌓은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밥을 짓고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가정의 여자가 됨으로써 마침내, 얼음장처럼 꽝꽝 얼어붙어 쩍쩍 벌어진 남자들의 상처 난 마음을 해동시키고 아물게 한다. 영혼의 밥을 짓는 여자다움이야말로 나쁜 남자를 저주에서 풀려나게 하는 묘약이라 믿어지는 것이다. 제법 훈훈해 보이는 이 러브스토리는 정말 아름다운 것일까?
 
세희와 자성은 인격적으로 부족한 남자지만, 대신 이를 상쇄할 집(재력)이 있다. 가난한 지호와 영원은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자원인 것이다. 이 부분이 이들의 로맨스가 은폐하고 있는 젠더와 계급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미성숙한 남자여도 집(재력)이 있다면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유능해도 가난한 여성은 여성다움을 탑재한다면 이런 남자에게 간택되고 사랑받는다는 불순한 거래를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여자의 가난이 멋진 부자 남자를 경유해 비로소 구원된다고 믿는 유구한 주술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여자의 가난을 낭만화하고 로맨스를 상품화하는 이런 구태한 연애 서사에 과연 지호와 영원을 아우르는 젊은 여성 세대가 얼마나 공감할까?
 
드라마의 자성처럼 2030 남성만 재테크에 능한 것은 아니다. 온 나라를 광풍에 휩싸이게 한 부동산 열풍이 바람직한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행렬에 남성들만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를 하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고, 이런 이들을 주축으로 재테크 정보를 교환하는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지식을 알기 쉽게 전수하는 짱짱한 여성 유튜버들도 상당하다.

이런 시대에 영원과 같은 똘똘한 젊은 여성이 면박주기를 일삼고 귄위적이기만 한 자성에게 기대 재테크를 연마한다는 설정은, 드라마가 여성 재테크 시류에 지나치게 둔감함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재테크를 포기했던 영원이 새로운 부동산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경제 상황을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노력을 쉼 없이 이어가길 바란다. 이런 서사들이 빈번이 생성되고 유통되어 이윽고, 클리셰로 굳어진 임대인=부자 남자, 임차인=가난한 여자라는 낡은 구도를 낙후시키자. 
 
이처럼 재테크에 열심인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대안적 주거 공간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여성들도 있다. 집을 공동출자해 소유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경제 활동을 도모하기도 한다. 주거와 경제를 공유하는 삶이다. 또한 집을 사기 어려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주거 공간을 임대하는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수용하는 움직임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지호나 영원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고군분투가 가난을 낭만화하는 남자 구원 판타지 서사에 머물 일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등을 기꺼이 내어주는 연대와 상호 돌봄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서사가 이제 쏟아져 나와야 하는 때다. 젊은 여성들의 시선과 기준이 변했는데, 이들을 둘러싼 현실과 이를 반영한 서사는 변하지 않을 때, 이들은 지치고 실의에 빠진다. 새로운 길에 나선 젊은 여성들의 진취적인 서사가 시급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됐습니다.
<월간 집> <이번 생은 처음이라> 여성 빈곤 가난의 낭만화 로맨스의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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