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방송국 다닌 햇수를 세어보았다. 갑자기 왜 세어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생각이 났다. 올해로 15년이었다. (올해 2월 1일의 일기)
 
나는 올해 방송작가 15년 차다. 어쩌다 보니 15년이 되었다. 2월 1일 그날 아침 나는 '15년'이라는 숫자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참으로 오래 다녔구나 싶었다. 몇 살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그때 마침 울린 섭외 전화를 받으면서 금세 잊었다.
 
'갑자기 왜 세어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썼지만 실은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최근 2~3년의 일이다. 나는 부쩍 후배작가들의 손편지를 많이 받았다. '언니 고마웠어요. 많이 배웠어요. 안녕히 계세요'라는. 하나같이 이별의 편지였다. 어쩌다보니 나는 고참 선배가 되어 있었고, 오래도록 방송국에 살아 남은 장수(?) 작가가 되었다.
 
내 주변 작가들은 모두 방송국을 떠났다. 정말 하나같이 다들 떠났다. 작년 초에 나는 잠시 우울증을 앓았다. 후배들이 떠나간 빈 책상을 보면서 나는 내가 남아서 일을 한다는 게 노욕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무능하다는 생각도 했다. 비겁하다는 자조도 했다. 그래도 만들어야 할 프로그램은 있었고, 해결해야 할 일들은 삼시세끼 끼니처럼 돌아오는 법이어서 나는 꾸역꾸역 일을 했다.
 
바쁜 일상에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면, 떠난 후배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이 선물로 준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편지를 읽어보면서 왜 그들이 떠나야만 했는지,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반추해 보았다. 이유를 몰라서는 아니었다.
  
그들의 노동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선배인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없었는지 자책하는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가 무능하다는 생각에 괴로웠고 화가 났다. 답이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나는 그만 '에잇~ 차라리 잘 됐어. 잘 간 거야'라며 쉽게 생각의 꼬리를 놓아버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나는 15년간 방송국에 몸담으면서도 방송계의 불공정, 모순, 부조리에 대해 쓰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나는 15년간 방송국에 몸담으면서도 방송계의 불공정, 모순, 부조리에 대해 쓰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 pixabay

 
그 많은 방송작가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이은혜 작가의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첫 장을 읽으며 나는 빛과 같은 속도로 후회했다. 이 책을 읽으면 뭔가 후련하고 통쾌할 줄 알았다. 놀랄 것도 없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 이은혜 작가의 목소리는 내 동료, 후배작가들의 목소리였다. 가시같이 내 마음 속에 더 깊이 꾸욱 박히는 아픔. 그래서 읽기가 더욱 괴로웠다.

나는 이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 지 참으로 애매한 위치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언제 해직될지 모르는 (아직까지는) 살아남은 '장수'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다시 민낯의 나를 바라봐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고통은 곧 분노와 의문으로 변했다. 왜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어야 되지? 이게 오로지 작가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가? 
 
내가 다니는 방송국 내부에서도 작가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이야기는 아주 이따금 거론됐다. 매번 작가들이 먼저 시작했다(방송국에서는 절대 먼저 작가의 처우 개선을 언급하지 않는다). 3년 전의 일이다. 멀쩡한 매거진 프로그램을 하루 아침에 없애, 몇몇 작가며 리포터 등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작가들은 단체로 항의했고, 그 일을 계기로 작가들의 페이와 막내작가의 페이 문제를 제대로 조정해보자는 이야기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조율은 지난하기만 했고 지루했고 더디게 진행됐다. 문제를 다시 상의하기 위해 회사 측과 날짜를 잡거나 장소를 정하는 것 등도 작가들이 먼저 꺼내고 서둘러야 했다. 일은 도통 진행되지 않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격이었다. 겨우겨우 막내작가의 페이 5만 원 인상하는 것을 끝으로 지난한 협상(?)은 마무리되었다.
 
그 여세를 몰아 이제 작가들의 계약서 문제까지도 함께 싸우고 쟁취해야 했건만, 우린 너무 지쳤다. 그리고 작가들은 방송국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이은혜 작가처럼 모두 방송을 너무 좋아해서, 방송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던 후배들이었다.
 
무력감을 제대로 체감한 것은 그 때였다. 아무리 구성을 잘하고 글을 잘 쓰면 뭘 하나 싶었다. 섭외를 잘하고, 문제의식을 가진다 한들 남아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방송을 통해 사회 정의나 공정을 이야기하고 비정규직 노동환경 개선을 주장하며 위험의 외주화를 고발하며 공동체 회복을 부르짖은들, 그게 진짜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동료, 후배들조차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일하자고 생각했다. 영혼을 갈아넣는 프로그램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영혼 없는 프로그램은 만들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타협했다. 밥벌이를 위한 자위였으며 변명이었다.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괴감이 또 스멀스멀 나를 덮치려 들 테니.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곧 싸우는 길
 
 이은혜 시민기자가 펴낸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관련 이미지.

이은혜 시민기자가 펴낸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관련 이미지. ⓒ 꿈꾸는인생

 
나는 15년간 방송국에 몸담으면서도 방송계의 불공정, 모순, 부조리에 대해 쓰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나 자신이 제대로 싸우고 있지 못하다는 부끄러움과 자책 때문이었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으면서 쓰는 글은 비겁했고 실없는 넋두리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을 읽으면서,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곧 싸우는 길의 시작임을 알게 됐다.
 
오늘은 방송작가의 현실이 어이없고 기가 막힌 근무 환경에 분노하고 개탄하지만 내일은 또 촬영을 하고, 섭외를 하고, 그 외 여러 가지를 할 것이다. 그러다 또 새벽에 잠이 깨면, 떠난 후배들과 남은 후배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할 것인가'를 또 잠꼬대처럼 생각할 거다. 아니 그보다는 왜 이런 문제들로 오랫동안 싸울 수밖에 없는가 반문한다.
 
방송국 관계자들이 절대 하지 않는 이야기. 알면서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이야기. 그중 가장 최악은,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결국 '목마른 사람'이며 '절이 떠나기 싫은 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계속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싸움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방송작가 꿈꾸는 인생 이은혜 작가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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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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