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고 이영호군의 유괴사건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유괴 사건의 특성상 범인이 금방 자신을 드러냈고 43일 동안 무려 60여 차례나 협박전화가 걸려 왔음에도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이영호군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공개수사로 전환했지만 이 역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검거 작전 과정에서 경찰의 실책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크게 망신을 샀다.

같은 해 3월에는 대구에 사는 초등학생 5명이 인근 산으로 도롱뇽 알을 채집하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 언론이 도롱뇽 알을 개구리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이들은 '개구리 소년'으로 불리며 유명해졌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군인과 경찰이 총동원된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벌어졌지만 아이들은 끝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아이들의 유골은 사건 발생 11년이 지난 2002년 9월에 발견됐다.

이영호군 유괴 사건과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각각 2007년과 2011년 <그놈 목소리>와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돼 또 한 번 대중들에게 경각심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이 두 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으로 꼽히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2019년 검거)은 이미 2003년 한 신예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아카데미 영화제 4개 부문을 휩쓸 정도로 세계적인 거장이 된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흥행작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의 감각이 관객들과 접점이 맞았던 첫 번째 영화였다.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의 감각이 관객들과 접점이 맞았던 첫 번째 영화였다. ⓒ CJ 엔터테인먼트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는 천재감독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봉준호 감독은 1993년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로 입학해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단편 영화 연출과 선배 감독들의 조연출, 각본 작업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던 봉준호 감독은 2000년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플란다스의 개>는 신선함과 썰렁함 사이에서 방황한 끝에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고 서울 관객 5만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2003년 차기작 <살인의 추억>으로 데뷔작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냈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연극 <날 보러 와요>를 각색한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속에 전국 5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통해 대종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비롯해 4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신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봉 감독은 학창시절 한강에서 직접 목격한 괴생명체를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써 대작 영화 <괴물>을 완성했다. 당시 한국영화로는 너무 많은 제작비(110억 원)가 투입됐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괴물>은 1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제목처럼 괴물 같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화려한 볼거리와 적절한 풍자, 유머코드가 담겨 있는 <괴물>은 청룡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2009년 한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던 김혜자 배우를 영화계로 소환해 문제작 <마더>를 선보였고 2013년에는 제작비 400억 원이 투입된 또 하나의 대작 <설국열차>를 만들었다. 크리스 에반스와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스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가 캐스팅돼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설국열차>는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한국 영화'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에 대한 영화계의 믿음이 강하다는 뜻이다.
 
2017년 넷플릭스 영화 <옥자>를 선보인 봉준호 감독은 2019년 7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을 연출했다. <설국열차> <옥자>와 달리 한국배우들만 출연해 해외 관객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거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독식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봉준호 감독은 현재 미출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영화 최고의 콤비 봉준호-송강호
 
 송강호(왼쪽)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괴물>,<설국열차>,<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과 4작품을 함께 했다.

송강호(왼쪽)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괴물>,<설국열차>,<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과 4작품을 함께 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모 다큐 프로그램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데 무명 시절 송강호는 영화 <모텔 선인장> 오디션에서 탈락 후 의기소침했다. 이때 송강호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조감독 봉준호가 삐삐 음성 메시지로 송강호의 연기를 칭찬하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에 감동한 송강호는 훗날 그 조감독이 연출을 하는 영화에 캐스팅 제의가 오면 무조건 출연하겠다고 생각했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에서 '인생연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 엄청난 호연을 선보였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밥은 먹고 다니냐?"를 비롯해 상당 부분을 애드리브로 준비해 올 정도로 캐릭터 연구에 몰두했다. <살인의 추억>을 통해 3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송강호는 한국 영화의 대체불가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에게도 송강호에게도 <살인의 추억>이 남다른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봉준호 감독의 별명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봉테일'이다. 흔히 지나치기 쉬운 부분도 섬세하게 캐치해 영화 속에 녹여 내는 연출이 돋보인다는 뜻이다(정작 본인은 그 별명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가 <수사반장> 타이틀 음악을 따라 부르며 "노래가 좋아, 노래가"라고 감탄하는 장면은 시골 형사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노래'로 할까 '음악'으로 할까 한참 고민한 끝에 나온 대사라고 한다.

사실 <살인의 추억>은 개봉 당시 미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조금만 사전 정보를 아는 관객이라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결말을 알고 보는 스릴러 영화만큼 시시한 장르도 없지만 <살인의 추억>은 여러 장치들을 통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특히 구타로 자백을 받아내는 전근대적인 수사방식과 유전자 정보 분석 기술이 없어 샘플을 외국으로 보내는 1980년대의 수사는 관객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연극 <날 보러 와요>는 1996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20년 넘게 공연되고 있는 대표적인 스테디 셀러 연극이다. 2003년 <살인의 추억>이 인기를 얻은 후에는 대학로에서 진행된 연극 공연이 전회 매진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 3명의 용의자 역할을 각각 다른 배우들이 맡았던 것과 달리 연극에서는 용의자 역할을 한 명의 배우(영화에서 2번째 용의자를 연기했던 류태호)가 전담한다.

형사부터 용의자까지, 버릴 캐릭터가 없다
 
 <살인의 추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김뢰하는 여러 영화에서 개성파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김뢰하는 여러 영화에서 개성파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 CJ 엔터테인먼트

 
<살인의 추억>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박두만 형사와 서태윤 형사(김상경 분)지만 실질적으로 박두만 형사와 같이 움직이는 파트너는 김뢰하가 연기한 조용구 형사다. 언제나 군화를 신고 다니면서 용의자를 구타해 자백을 받아내는 다혈질 형사 조용구는 백광호(박노식 분)가 휘두른 (못이 박힌) 각목에 맞고 파상풍에 걸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다. 형사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결말을 맞는 인물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아카데미 졸업작품 <지리멸렬>부터 봉 감독과 인연을 맺은 김뢰하는 <플란다스의 개>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까지 봉준호 감독과 세 작품(장편 기준)을 함께 했다. 주로 주인공의 라이벌이나 악역 연기에 특화돼 있는 배우지만 의외로 대학 시절 도예학을 전공한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킹덤: 아신전>에서 아신(전지현 분)의 아버지이자 조선에 뿌리 내린 여진족 번호부락의 수장 타합을 연기했다.

경찰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용의자 3인방 중에 가장 유명해진 배우는 단연 박해일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용의자 배우는 첫 번째 용의자 백광호 역의 박노식이었다. 어릴 적에 입은 화상으로 얼굴에 큰 흉터가 있고 정신도 온전치 못해 동네 바보 취급을 받는 백광호는 박두만에 의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물증이 없어 영장이 기각됐다(알고 보니 사건의 목격자였음이 뒤늦게 밝혀진다).

이향숙 사건을 목격한 백광호는 "향숙이 이뻤다", "향숙이 이쁘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데 백광호 캐릭터가 유명해지면서 이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배우가 본명보다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박노식처럼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인 백광호도 아닌 '향숙이'로 기억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박노식은 봉준호 감독 최고의 히트작 <괴물>에 이어 2014년에는 1700만 영화 <명량>에도 출연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송강호 김뢰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